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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쌩 하고 화살 날 듯...
신맛이 빠르게 혀를 때렸다

by조선일보

서울 인사동 '간판 없는 김치찌개집'

쌩 하고 화살 날 듯... 신맛이 빠

/정동현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릴 적, 특히 부산 영도 살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매일 김치찌개를 먹었다. 조리법은 간단했다. 찌그러진 양철 냄비에 김치, 두부, 그리고 어묵. 간혹 돼지고기를 넣기도 했지만 그것은 주말 특식에 가까웠다. 어묵은 요즘도 그렇지만 특히 쌌다. 돼지고기 반의 반도 안 되는 값이면 한 식구를 먹일 만한 양이 나왔다. 우리 형제는 단 한 번도 어묵에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김치찌개에 든 어묵 때문에 싸우기 일쑤였다.

 

나의 전략은 간단했다. 밥을 먼저 먹어 그릇에 공간을 만든 뒤 어묵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퍼오는 것이다. 밥 반, 어묵 반이 될 정도가 되면 느긋이 먹을 수 있었다. 동생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부모님에게 "형아가 다 가져갔단 말이야!"라고 불평했지만 그쯤이면 다시 퍼 넣기도 애매했다. 나는 비난 어린 눈빛을 피해 밥그릇에 집중하면 끝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어묵 넣은 김치찌개가 뜸해졌다. 애초 집에서 밥을 먹는 횟수가 크게 줄었던 것이다. 서울로 대학을 다니면서는 아예 잊힌 음식이 됐다. 집에서 김치찌개를 끓여도 어묵 대신 돼지고기를 넣었다. 어묵 넣은 김치찌개를 파는 곳이 인사동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반은 흘려들었다.

 

'서울에서 김치찌개를 끓여봤자'라는 생각이 절반, 옛날 먹던 그 맛이 되돌아오지 않으리란 회의가 나머지 절반이었다. 어쨌든 먹어야 할 한 끼, 동향 출신 형과 함께 인사동 어귀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봤다. 낙원상가를 지나 라이언스회관 바로 옆, 대로 어귀였다. 이 집 이름은 따로 없다. 그저 '김치찌개/ 칼국수/ 콩국수 전문'이라는 간판이 전부다. 그 말 그대로 부를 수는 없으니 사람들은 이 집을 '간판 없는 김치찌개집'이라고 말한다.

 

날이 좋아 골목 어귀까지 상을 편 이 집 초입에 들어서자 모두가 한 가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어묵을 가득 올린 김치찌개<사진>였다. 1인분 5000원. 2인분부터 시작하는 상차림은 간소함의 극치다. 버너 위에 올라간 김치찌개, 그리고 넓적한 그릇에 담은 김치뿐이다. 욕심을 내 라면 사리(1000원)와 어묵 추가(2000원)를 했다. 그래 봤자 2인분에 1만3000원이었다. 버너에 불을 켜고 슬쩍 김치 맛을 봤다. 초여름 장밋빛을 한 김치는 맛도 그 색을 따랐다. 젓갈 내는 쿰쿰하고 매운맛은 혀를 타고 찌릿하게 신경을 거슬러 올라왔다. 느낌이 왔다. 김치찌개가 끓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됐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쌩하고 화살이 날 듯 신맛이 빠르고 정확하게 혀를 강타했다. 그때 나는 식욕이 통제력을 잃으리란 것을 알았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라면 사리를 건지고, 끓으며 부풀어 오른 어묵도 한 국자씩 접시에 퍼 담았다. 분명 멸치 육수를 따로 냈을 국물은 어묵에 감칠맛을 얹고 간간이 섞인 돼지고기에 무게감을 더했다. 요즘 유행하듯 돼지고기를 있는 힘껏 넣어 묵직하다 못해 부담스러운 국물은 이곳에 없었다. 대신 말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말하는 담담한 경지를 맛본 것 같았다.

 

형과 나는 국물을 앞에 두고 무력하게 앉아 냄비 바닥이 보일 때까지 숟가락질을 했다. 밥을 추가하고 마지막 남은 어묵까지 건져 입에 넣었다. 둘은 뒤로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형이 말했다. "옛날에 먹던 딱 그 맛이네. 1퍼센트도 비켜나지 않아. 100퍼센트야."

 

정동현 대중식당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