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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디테일추적

'朴 전 대통령 때문에 홧병 났으니 50만원 배상하라' 가능한 얘기인가

by조선일보

“모든 게 다 朴 탓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문에 고통받았다는 시민 9577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선 시민 5001명이 1차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이 열렸다. 5001명은 1인당 50만원씩 모두 25억원을 박 전 대통령에게 청구한 상황. 곧 2차(4160명), 3차(416명) 소송도 시작된다. 이번 집단 소송을 기획한 변호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다. 과연 ‘朴 때문이야’ 소송은 법리적으로 가능한 얘기일까. 특정 정치인 때문에 얻은 홧병·스트레스를 금전으로 보상 받을 수 있을까. <디테일추적>은 조선일보 양은경 법조전문기자에게 물어봤다. 

'朴 전 대통령 때문에 홧병 났으니

/조선DB

‘박 때문이야’ 소송이 뭔지 설명 해주세요.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국민적 스트레스’가 법의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대통령의 권력행사가 과연 국민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불법행위가 되는지에 대한 최초 판단이 나올 듯 합니다.

 

발단은 이 소송의 대리인이자 원고로서도 참여하고 있는 곽상언 변호사입니다. 그는 국정농단 사태 후 한 지인이 ‘국민들이 받은 스트레스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소송이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말에서 이 소송을 착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원고단을 모집한 것이죠. 총 세 차례로 나눠 소송을 냈고 어제(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기일이 진행됐습니다. 나머지 두 사건은 아직 기일이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법정에서 양쪽은 날카롭게 대립했습니다. 원고측 주장에 대해 피고인 박 전 대통령을 대리한 도태우 변호사는 “정당한 민사 소송이라기보다는 정치 투쟁과 선전전의 연장”이라며 “국민 전체를 피해자라고 하는데 정확히 누구인지 특정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그러나 법정 밖에서는 원고 측이 압도적인 기세였습니다. 원고 중 한명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재판이 열린 중앙지법 동관 366호 앞에서 “국민적 관심이 이렇게 높은 사건을 작은 법정에 배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흥분했습니다. 법정 경위가 “이 재판부(민사 16부)전용 법정이 여기라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지요. 법정을 나서는 원고측 도태우 변호사를 향해 “도대체 뭘 얼마나 더 특정하란 말이냐” “자기가 아직도 실세인 줄 아냐”는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법정 주변이 아주 그냥 시끌시끌 했겠네요, 그런데 이런 소송이 예전에도 있었나요?

 

유례없는 소송이기는 합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지요. 곽 변호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배상 사건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중앙정보부 소속 공무원에 의해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금됐다 풀려난 사람이 30년이 지나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 즉 대통령의 권력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만 지고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과만 보면 ‘국가배상이 안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곽 변호사는 오히려 이 판결을 역으로 해석해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즉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고도의 정치성을 띈 게 아니라면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라고 본 거죠. 박 전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권한을 사인(私人)인 최순실씨와 나눴으므로, 그 행위가 헌법에 근거했다고 볼 수 없고 직위를 이용한 범죄행위에서 고도의 정치성을 띈 행위도 아니라는 겁니다.

 

시민이 주장하는 피해 상황이 다양합니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같은 정신적 피해, ‘집회 탓에 장사 망쳤다’는 물질적 피해, 박 전 대통령으로 인해 ‘음주가 늘어 건강을 해쳤다’는 신체적 피해까지 다양하더라고요. 이 모든 피해가 朴 때문이라는 ‘인과 관계’는 과연 인정이 될까요?

 

’구속까지 된 전직 대통령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은 제쳐 두더라도, 우선 이런 소송에서 이기려면 ‘고의 또는 과실에 기한 위법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는 것을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 소장에서는 ‘위법행위’로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행위, 연설문 유출 등 공무상 비밀누설, 현대·기아자동차에 대한 KD코퍼레이션 납품 개입 행위, 최순실씨 소유 회사 플레이그라운드의 광고 수주 개입행위 등을 불법행위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삼성 뇌물수수 및 블랙리스트 관련 행위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곽 변호사는 “검찰 수사발표 등으로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자료만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만큼 ‘위법’ 여부에 대한 판단은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듯 합니다.

 

좀더 핵심적인 부분은 ‘인과관계’, 즉 분노와 모욕감으로 소화가 안 돼 위장병에 걸리고 음주량이 늘어난 것을 박 전 대통령의 책임으로 볼 수 있는지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려요. 한 손해배상소송 전문 변호사는 “이런 식으로 인과관계를 넓게 인정하다 보면 아무나 ‘화풀이’ 소송을 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공직자의 수뢰사건 뉴스를 접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국민도 소송을 내 배상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판례가 취하고 있는 ‘상당인과관계론’, 어떤 원인이 있으면 통상 그런 결과가 발생할 것이 인정되는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또 ‘손해’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한 중견 법조인은 “국민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이 과연 법적인 손해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때리거나, 교통사고를 내 다치게 하거나 하는 것처럼 권리침해가 명백한 경우와는 달리 직접 관계가 없는 공직자의 행위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배상을 받을 수 없는 사실적 손해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반면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 중심에 있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법조인으로서는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곽 변호사는 “공무원의 직무범위 및 직무위반의 내용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앞으로 관련 기록을 검토하면서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증명하겠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상당인과관계론은 불분명한 개념”이라며 “대부분 국가들이 인정하는 방식대로, 원인이 아닌 것을 하나씩 제거시켜 나가면 결국 원인으로 박 대통령의 행위가 남을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면, 1인당 50만원 받는 건가요? 오호….

 

일단 청구 액수는 1인당 50만원입니다. 손해에는 재산적 손해와 비재산적 손해가 있는데 후자에 해당하는 위자료를 청구한 것이지요. 재산적 손해는 계산 근거가 명확하지만 위자료는 ‘제반 사정을 고려해’적절한 액수로 정해집니다. 곽 변호사도 소장에서 “소 제기 경위와 향후 수사결과 등을 종합해 결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만 원고가 50만원을 구하는데 법원이 그 이상으로 줄 수는 없습니다. 원고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게 민사소송의 대원칙이랍니다.

 

곽 변호사가 인지대·송달료는 어찌 부담했을지 궁금하네요.

 

소송에 참여할 원고단을 모집하면서 소송비용으로 5000원 이상을 자발적으로 입금할 것을 안내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자발적 모금 방식인데요, 그러다 보니 적자가 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곽 변호사는 “모금비용보다 소송액이 많이 소요돼 개인적으로 조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곽 변호사가 2014년부터 낸 ‘전기료 누진제 폐지’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그는 한전을 상대로 ‘부당하게 받아 온 전기요금을 돌려 달라’며 총 12차례에 걸쳐 원고단을 모집해 소송을 냈습니다. 현재 한전은 주택용 전력에 한해 6단계로 누진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소비자들은 이런 공급약관에 대해 제대로 들은 적도 없고,내용도 불공정하므로 공급약관이 무효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누진제에 따라 부당하게 받은 전기요금을 돌려달라는 것이지요

 

지난해 10월 2년 2개월만에 중앙지법에서 첫 판결이 나왔습니다. 패소했는데요. 산업용 전기료와 요금 차등을 두는 것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것이고 관련 법규정도 있으므로 약관이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이후에도 패소 판결이 판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당하게 받은 요금’이라는 원고 주장에 대해 “전기요금의 원가가 얼마인지 알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가 정상적인 전기 요금인지 입증이 안됐다”는 것이 패소의 핵심 이유였습니다.

 

이에 대해 곽 변호사는 “전기요금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한전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유”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7건의 사건이 남아 있고 승소가능성도 꽤 있다”고 합니다.

 

소송이 ‘정치적 의사 표시’의 수단이 되는 건 어떻게 봐야할까요.

 

그가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라는 점에서, 제기한 소송들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정치적 성격도 강하다는 점에서 그의 소송에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소송 자체가 아니라 소송을 통해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게 목적 아니냐’ ‘별로 가능성도 없는 소송을 계속 내는 것은 이슈화를 목표로 하는 일종의 소송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모든 사람이 그렇듯, 저도 어르신(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인격체”라며 “제 판단으로, 제 행동에 따른 위험을 부담하며 산다”며 정치적 연관성과는 선을 그었습니다. 또 소송 결과에 대해서는 “모든 소송이 절반은 패소한다”며 “가능성을 보고 앞길을 열어야 세상이 열린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송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해석될 것이고, 입장에 따라 찬반이 극명하게 갈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으로 지금까지 없던 주제에 대한 법적 문답(問答)이 생기는 공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받아간 전기요금을 돌려달라’ ‘국정농단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배상하라’는 주제들은 정해진 답을 찾는데 익숙한 보통의 법조인으로서는 쉽게 법원에 물어보기 힘든 것들이니까요.

 

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