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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퇴근 후 미술학원 가고
학습지 푸는 직장인들

by조선일보

피아노·발레 학원도 발길

아이같은 취향 가진 '키덜트'… 여가·자기계발 분야로 확산

 

"선생님, 색칠 다 했어요!"

 

서울 잠실에 사는 직장인 김송현(33)씨는 요즘 일요일마다 친언니와 미술 학원에 간다. 김씨는 인물화를 연습 중이고 언니는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풍경 사진을 따라 그린다. 김씨는 "색연필을 잡거나 물감을 고르다 보면 학창 시절 미술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고 잡념이 사라진다"고 했다. 이 학원은 3~4년 전 회원 수가 30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6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증가한 회원 대부분이 20·30대 직장인이다.

퇴근 후 미술학원 가고 학습지 푸는

어렸을 때 배웠던 그림이나 피아노, 태권도를 다시 배우는 성인들이 늘고 있다. 귀여운 장난감이나 캐릭터용품을 수집하던 '키덜트(아이와 같은 취향·감성을 가진 어른)' 문화가 여가·자기계발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이 다양해졌지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 예전에 배웠던 취미들을 다시 찾는다. 직장인 김혜정(30)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만뒀던 미술 학원을 최근 다니고 있다. "어렸을 때는 미술 학원에 다니고, 그림으로 평가받는 게 싫었다"며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그림을 원하는 만큼 그릴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예체능 학원들은 직장인 맞춤형 수업을 내놓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문모(36)씨는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일대일 개인 수업과 간단히 태권도를 체험할 수 있는 하루 과정 수업을 만들었다. 문씨는 "회원들이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은 재미가 없고 어렸을 때 했던 태권도를 다시 배워보고 싶다며 찾아온다"고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예능(미술·음악·무용 등) 학원 수강자는 2013년 4만2462명에서 2016년 19만3258명으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어른이 됐지만, 어렸을 때 했던 놀이나 학습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고 있다"고 분석한다. 발레 학원에 다니는 한 직장인은 "음악과 몸짓에 집중하다 보면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놀이 문화가 예전에는 세대별로 뚜렷하게 나뉘어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어른은 이래야 한다'는 규범이 점점 허물어지면서 '키덜트' 문화가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던 아동용 학습지로 공부하는 성인도 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최정민(26)씨는 요즘 퇴근 후 집에 돌아가 30분씩 일본어 학습지를 푼다. 최씨는 "학원에 다닐 수도 있지만, 옛날 공부했던 방식으로 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했다. 구몬학습 성인 회원 수는 2013년 대비 173% 증가해 5만명을 넘어섰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한 공무원은 "요즘 학창 시절 수학 문제집을 다시 사서 풀고 있다"며 "잡념이 없어지고,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백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