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다랭이마을 출렁이는 초록물결… 쪽빛바다 건너 봄이 찾아 왔어요

by조선일보

남녘의 봄… 경남 남해

 

다랑이논

산비탈 깎고 돌담 쌓아 계단식으로 만든 논

파릇파릇한 마늘·시금치 푸른 남해 바다와 조화

 

섬이정원

다랑이논을 유럽식 정원으로 길고 좁은 계단식 지형 활용

숨어있는 정원 발견하는 재미… 방향·높이 따라 풍경 달라져

 

비단 둘렀다고 해 '錦山'

탁트인 하늘 아래 기암절벽 한려해상 국립공원 한눈에

해수관음상 있는 보리암3대 관음성지로 손꼽혀

다랭이마을 출렁이는 초록물결… 쪽빛바

경남 남해 보리암에 오르면 탁 트인 하늘과 그림 같은 한려해상 국립공원, 금산의 기암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봄 햇살에 반짝거리는 푸른 바다, 싱그러운 초록 물결 일렁이는 다랑이논까지 발길 닿는 풍경마다 봄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남해의 푸른 바다가 봄 햇살에 반짝거린다. 따스한 봄바람에 산기슭 따라 층층이 이어진 다랑이논(사투리로 '다랭이논'이라 부른다)에선 초록 물결이 춤을 춘다. 긴 겨울 이겨내고 싹을 틔운 마늘, 시금치가 봄꽃보다 먼저 남녘의 봄을 싱그럽게 물들이고 있다. 경남 남해,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낀 수려한 바다와 비경을 품은 산이 어우러진 육중한 섬은 풍경마다 움트는 계절이 반겨주고 있었다. 가속도를 붙이며 본격 북상하기 시작한 봄을 남해에서 먼저 만났다.

초록빛 짙어가는 다랭이마을의 봄

바다를 향해 뻗은 가파른 능선 따라 초록 물결이 출렁인다. 봄을 재촉하는 매화, 산수유꽃이 피고 지는 사이에도 산과 들엔 아직 초록빛이 이른 시기. 그런 풍경 사이 눈에 띄는 초록의 정체가 궁금했다. 남해에서도 남쪽 끝, 남면 홍현리 바닷가 다랭이마을에 그 답이 있었다. 가파른 산비탈을 깎고 돌담을 쌓아 계단식으로 만든 다랑이논에는 추위를 견뎌낸 마늘과 시금치가 쑥쑥 자라고 있다. 푸른 바다와 싱그러운 초록의 작물들이 어우러진 풍경마다 봄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은 포구도 들어설 수 없을 만큼 지형이 가파르다. 바다 대신 땅을 일궈야 했던 선조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억척스레 산을 깎고 논을 일궜다. 길고 좁은 모양이 제각각, 100여 층이 넘게 이어지는 다랑이논은 곡선의 향연이다. 여전히 소와 쟁기, 인력으로 짓는 농사지만 부지런한 손길에 벼와 마늘, 시금치가 번갈아 자란다. 2005년 명승 제15호로 지정됐을 만큼 다랑이논과 산, 바다와 어우러진 다랭이마을의 풍경은 이색적이면서 아름답다. 오르내리는 길이 수고롭긴 해도 깎아지른 듯한 절경이 펼쳐지는 해안가 풍경도 놓치면 아쉽다. 마을 사람들이 지게 지고 땔감과 곡식 나르던 길을 복원한 '다랭이 지겟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을의 숨은 풍경도 만나게 된다.

다랭이마을 출렁이는 초록물결… 쪽빛바

산자락을 계단식으로 깎아 만든 다랑이논이 인상적인 다랭이마을. 마늘과 시금치가 초록 물결을 이룬다.

다랭이마을 출렁이는 초록물결… 쪽빛바

다랑이논을 유럽식 정원으로 가꾼 섬이정원.

다랭이마을이 아니라도 다랑이논은 남해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섬이정원(010-2255-3577)은 흔한 남해의 다랑이논을 유럽식 정원으로 가꿔 이국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남면 평산리의 다랑이논 1만6000여㎡(5000여 평)의 길고 좁은 계단식 지형을 그대로 활용해 비밀의 숲처럼 숨어 있는 정원을 따라가는 재미가 새롭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식으로 꾸민 테마 정원에는 수선화, 물망초, 금어초 등 200여 종의 꽃과 후박나무, 은목서 등 나무 50여 종이 자라고 있다. 2016년 6월 문을 연 섬이정원은 차명호(56) 대표가 10년간 가꾼 개인 정원이다. "다랑이논을 따라가다 보면 방향에 따라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볼 수 있어 색다르죠." 손수 가꾼 정원에선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도 다르다는 차 대표의 말처럼 정원 곳곳엔 의자가 놓여 있다. 천천히 걷다가 또 가만히 앉아 꽃망울 터트리기 시작한 꽃과 상록수를 바라보며 봄기운을 느껴본다. 여수가 바라다보이는 바다 풍경도 운치가 넘친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입장료 성인 5000원, 어린이 2000원.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열리는 예술마켓 '돌장'도 함께 즐겨볼 만하다.

남해가 빚은 풍경에 취하다

보리암으로 향하는 길은 가파르다. 산 중턱까지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차로 올라 주차장에서 다시 1㎞의 급경사로를 올라야 한다. 보리암에 도착해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리는 금산의 기암 절경과 탁 트인 하늘, 쪽빛 같은 바다에 점점이 섬들이 떠 있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수고로움을 몇 배로 보상받는 기분이다. 금산 정상 아래 자리 잡은 보리암은 683년 원효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난 뒤 수행하던 초당을 보광사라 칭한 것에서 유래했다. 해수관음보살상이 서 있는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손꼽힌다.

다랭이마을 출렁이는 초록물결… 쪽빛바

전통 어로 방식으로 멸치를 잡는 죽방렴이 일몰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다랭이마을 출렁이는 초록물결… 쪽빛바

독일식 주택들이 모여 있어 이국적인 독일마을.

원래 보광산이었던 산 이름이 금산으로 바뀐 사연도 재밌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소원이 이뤄지면 온 산을 비단으로 둘러주겠노라 약속했는데, 비단 대신 산 이름에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이 됐단다. 보리암까지 갔다면 금산 정상에 올라 절경을 만끽하고 산속에 자리 잡은 금산산장 명당에 앉아 컵라면과 해물파전 먹는 쏠쏠한 재미도 즐겨보자.

 

지족해협에선 남해만의 독특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창선면과 삼동면 사이 지족해협 일원엔 멸치를 잡는 죽방렴(竹防簾)이 설치돼 있다. 물살 좁은 물목에 나무 말뚝을 세우고 대나무로 말뚝과 말뚝 사이를 발처럼 엮은 함정 어항을 설치해 물때에 맞춰 들어온 고기를 가두어 잡는 전통적 어로 방식이다. 지족해협은 시속 13~15㎞의 거센 물살이 지나는 좁은 물목으로 여전히 죽방렴을 설치해 멸치를 잡고 있다. 이곳 멸치는 남해를 대표하는 특산품이다. 명승 제71호로 지정된 지족해협 죽방렴은 해안가를 따라 볼 수 있으며 일몰과 어우러지면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이국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독일마을로 향한다. 1960~70년대 산업 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됐던 광부, 간호사들이 고국에 돌아와 정착한 마을로 삼동면 물건리와 봉화리 일대 10만㎡ 규모다. 독일에서 건축자재를 직접 가져와 전통적인 독일 양식으로 지은 집들이 모여 있어 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독일로 여행 온 기분이 든다. 독일식 소시지와 맥주 등 먹거리 파는 가게들과 숙박 가능한 독일식 주택도 많아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마을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푸른 바다와 해변을 병풍처럼 두른 천연기념물 제150호 물건 방조어부림도 눈에 담아보자.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파독전시관에는 꼭 한번 들러볼 것. 월요일 휴무, 오전 9시에서 6시. 입장료 1000원.

돌창고에서 즐기는 예술 산책

다랭이마을 출렁이는 초록물결… 쪽빛바

버려진 돌창고를 문화 공간으로 활용한 돌창고프로젝트.

다랭이마을 출렁이는 초록물결… 쪽빛바

한적한 자연 속에서 예술 산책 즐기기 좋은 바람흔적미술관./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남해에서 즐기는 예술 산책도 색다르다. 삼동면 영지리 돌창고프로젝트(055-867-1965)는 버려진 돌창고가 문화 공간으로 변신해 주목받는 곳이다. 1960년대 만들어진 돌창고는 남해대교가 놓이기 전 섬이었던 남해에서 양곡이나 비료를 저장하던 시설이다. 귀한 시멘트나 건축자재 대신 돌을 깨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돌창고 자체의 분위기도 독특하지만 돌창고 안에서 만나는 미술 전시는 더 새롭다. 버려진 돌창고를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한 건 이영호(46), 최승용(33)씨다. 최근엔 서면 대정리에도 돌창고를 활용한 예술 공방을 열었다.

 

다음 달 22일까지 고진수 작가의 '우리에게 남아 있는 사랑들' 전시가 계속된다. 목요일 휴무,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관람료 3000원. 돌창고에서 전시를 감상하고 난 뒤엔 '어머니 미숫가루'(5000원), '보늬밤 라테'(6000원), '보늬밤빵'(2000원) 등 카페의 인기 메뉴도 즐겨보자.

 

바람도 쉬어갈 것만 같은 한적한 산속에 자리 잡은 삼동면 봉화리 바람흔적미술관도 예술 산책을 즐기기 좋다. 미술관 이름처럼 바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빨간 바람개비가 내산저수지를 배경으로 휘휘 돌아간다. 바람개비를 비롯해 설치미술가 최영호 작가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평면공간과 입체공간, 조각공원으로 구성된 공간은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다. 무인으로 운영되며 화요일 휴무.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무료 관람.

다랭이마을 출렁이는 초록물결… 쪽빛바

남해=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