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전쟁', '대륙의 설전'으로 판 커졌다

[이슈]by 조선일보

할리우드 배우 출신 왕자비 메건 마클

영국선 "미들턴 질투해 너무 튄다"

CNN 등 미 언론 "英언론의 이간질"


요즘 영국인들이 두 여성을 놓고 갈라져 있다. 왕실의 큰며느리인 케이트 미들턴(37) 왕세손비와 둘째 며느리인 메건 마클(38) 왕자비의 팬들 사이에 ‘막말’ 싸움이 심해지고 있다. 서로를 비방하는 거친 언사가 소셜 미디어에 홍수를 이룬다.


미들턴과 마클은 뚜렷하게 대조적이다. 미들턴이 전형적인 영국의 요조숙녀라면, 미국인인 마클은 흑인 혼혈이자 이혼녀였고, 영화 배우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상반된 캐릭터다.


두 왕실 여성의 팬들끼리 온라인에서 난타전을 벌이자 급기야 지난달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켄싱턴궁이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두 소셜 미디어 회사에 악성 댓글을 차단해달라고 협조를 구한 것이다. 특히 마클을 겨냥한 인종차별적이거나 성적으로 모욕하는 댓글을 차단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켄싱턴궁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어가 700만명이 넘기 때문에 매일 댓글도 엄청난 숫자로 붙는다.


온라인 비방전이 가열된 것은 미들턴과 마클의 갈등설이 터져나온 작년 11월부터다. 특히 마클에 대한 ‘안티팬’이 확 늘었다. 요즘 켄싱턴궁은 홈페이지에 마클을 원색적으로 비하하는 악성 댓글을 지우느라 바쁘다. 워낙 팬들끼리 다툼이 거칠게 벌어지자 영국언론들은 ‘이 싸움을 진정시키자’며 캠페인까지 벌이는 상황도 벌어졌다.

'며느리의 전쟁', '대륙의 설전'으

2018년 6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92세 생일 기념 근위병 퍼레이드에 나란히 참석한 케이트 미들턴(왼쪽) 세손빈과 메건 마클(오른쪽) 왕자빈. /RPE 연합뉴스

흑인·배우·이혼녀 출신 영국 왕실 며느리 연일 화제

왕실의 두 며느리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마클이 기존 왕실 여성들과 이력이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외국인, 흑인 혼혈 이혼녀’가 하루 아침에 왕실의 ‘신데렐라’가 됐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된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여성 인권 운동에 참여한 마클의 이력도 전형적 ‘현모양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며느리의 전쟁', '대륙의 설전'으

‘왕실 일가는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국인들 눈에 메건 마클의 ‘파격’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연합

실제로 마클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언행을 보이고 있다. 최근 만삭의 몸으로도 거의 매일 대외 일정을 소화하는 중인데, ‘D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몸에 붙는 원피스에 아찔할 정도로 높은 하이힐을 고수하고 있다. 임신을 했지만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로 ‘배우’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마클의 ‘임신부 패션’은 연일 잡지에 사진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집중 조명되고 있다.


마클 특유의 옷차림에 대해 영국에서는 못마땅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마클은 약혼식에서 맨다리로 대중 앞에 서거나 왕실 결혼식에서 반짝이 스타킹을 신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영국 왕실에서는 여성이 공식석상에서 스커트를 입을 때는 피부 톤에 맞는 스타킹을 신는 것이 관례다.


여왕과 함께 참석한 행사에서 왕실 여성들이 쓰는 패시네이터(화려한 장식의 모자)를 일부러 쓰지 않아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지난 연말 한 행사장에서 마클은 검정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나타났는데, 영국 왕실 여성이 전통적으로 누드톤의 매니큐어만 사용하는 것에 반하는 행동이다. 일각에서 마클에 대해 ‘자유분방하고 깨어있다"는 호평을 내놓지만 영국에서는 ‘왕실의 전통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다’는 혹평이 좀 더 많은 편이다.


화제나 구설이 끊이지 않으면서 마클의 일거수 일투족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마클은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올해의 검색어’ 6위에 이름을 올렸다. 해리 왕자와의 연애 사실이 공개된 2017년부터 2년 연속 영국의 ‘올해의 검색어’ 인물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결혼식부터 손윗 동서 미들턴 왕세손비와 갈등 심각

영국 언론은 미들턴과 마클을 사사건건 비교한다. 그러면서 은근히 마클이 전통을 모르고 제멋대로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작년 2월 두 사람이 처음 공식행사에 나란히 참석했을 때 "마클이 서열을 무시하고 먼저 마이크를 잡고 자기 할 말을 다 해버렸다"고 했거나, "마클이 미들턴의 옷 입는 방식을 따라한다"고 하는 식이다. 왕실의 일원이 되기에는 함량 미달이라는 뉘앙스를 은근히 보여준다.


게다가 영국 언론은 두 왕실 여성끼리의 신경전을 자세히 보도하며 싸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작년 11월 일간 텔레그래프, 더선 등은 "지난 5월 해리 왕자의 결혼식 리허설 당시 미들턴의 딸 샬럿 공주가 입을 드레스에 대해 마클이 도 넘게 참견했고, 이에 미들턴이 스트레스를 받아 몸을 부르르 떨며 울었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마클을 향한 온라인 공격이 거세졌다. 갖가지 욕설이 쏟아지는 가운데 마클을 비판하는 요지를 압축하면 ‘미국에서 온 유색 인종인 마클이 건방지게 군다’는 것이다.


여기에 영국 언론은 "결혼식에서 마클이 에메랄드로 장식된 티아라를 쓰고 싶어했지만 여왕의 반대로 뜻을 꺽어야 했다"고 하거나, "결혼식장인 윈저성의 퀴퀴한 냄새를 없애야 한다며 마클이 공기 청정제를 뿌리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고 보도했다. 마클에게 ‘까다롭고 성격 나쁜 여자’라는 이미지를 씌우고 있는 것이다. 마클이 에메랄드 티아라를 고집한 데 대해 엘리자베스 여왕이 "재혼인 주제에 왜 근본없는 티아라를 마음대로 고르려 하느냐"며 해리 왕자를 불러 야단쳤다고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마클이 켄싱턴궁 사람들과 마찰을 빚는다는 지적은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리 왕자와 마클 커플의 개인 비서 역할을 맡은 서맨서 코헨이 작년 11월 켄싱턴궁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마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호주 출신인 코헨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비서를 맡는 등 켄싱턴궁에서 17년을 일한 인물이다. 여왕과 찰스 왕세자의 심복이었다. 그런 코헨이 갑작스럽게 그만두겠다고 하자 왕실 안팎에선 마클의 까칠한 성격이 원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영·미 간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영국 언론이 마클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잦아 논란을 일으키자, 미국 언론은 마클을 옹호하는 기사를 내보내며 측면 지원을 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 간의 자존심 대결까지 벌어지는 양상이다.


데일리메일·미러 같은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마클이 할리우드 일터처럼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참모진에게 ‘문자 폭탄’을 퍼붓는다"거나 "마클이 해리의 사촌 유지니 공주 결혼식 날 임신 소식을 발표하더니 피로연에 불참해 유지니가 잔뜩 화가 났다"는 식의 보도를 계속 내놓고 있다. 마클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며 흑인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는 점을 강조하거나, 백인 아버지와 이복 형제들을 추적한다. 마클로서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까발리는 것이다.


영국 왕실의 논란을 가십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는 미국 언론들은 마클이 영국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기 시작한 작년말부터는 마클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CNN은 "영국 언론이 마클을 괴롭히고 있다"고했다. CNN은 "마클이 얌전히 있으면 ‘미국 신부가 새바람을 일으킬 줄 알았더니 게으르다’고 했을 영국 언론이 (마클이 대외 활동을) 열심히 하니까 ‘설치는 여자’로 매도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해리 왕자가 (마클에 대한) 선정적 보도를 무시하는 바람에 왕실과 영국 언론의 사이가 더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가 마클에게 공개적인 조언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미셸은 한 영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마클에게) 보내는 조언은 시간을 갖고 무슨 일을 하면서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라며 "나의 경우 백악관에서 첫 몇 달간은 딸들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도록 하는 데 매진했다"고 했다.

왕실 들어가더니 ‘변절’했다는 논란도 일어

마클이 연일 파격 행보를 벌이지만 정작 여성 운동가들은 "마클이 왕실에 들어가더니 더 이상 여성 인권에 관심이 없다"며 비판한다. 영국 사회학자인 로라 클랜시와 해나 엘린은 작년말 논문을 통해 "마클이 해리 왕자를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는 여성 문제 등에 관해 목소리를 높이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지만, 결혼 이후 여성 운동가로서 침묵을 지키거나 왕실에 의해 정해진 발언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마클이 배우 생활을 마감했고 켄싱턴 궁에 의해 계산된 온라인 활동만 하고 있다"며 "페미니스트였던 마클이 순종적인 왕실 여인으로 변신하면서 전체 페미니즘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2019.02.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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