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치즈버거가 아이언맨을 구했다

[푸드]by 조선일보

볼이 터지게 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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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먼저 하지. 하나는 아메리칸 치즈 버거, 또 하나는 기자회견. 일단 치즈 버거부터(Cheese burger, first)!"


영화 '아이언맨'(2008년)에서 미국의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신형 무기 사업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군기지에 갔다가 테러 단체에 붙잡힌다. 온몸에 파편이 박히고 물고문까지 당하지만 극적으로 탈출, 깁스 신세로 귀국한다. "병원부터 가자"는 비서 페퍼 포츠(귀네스 팰트로)에게 스타크는 말한다. "3개월 동안 갇혀 지냈어. 지금 필요한 건 버거야." 결국 스타크는 치즈 버거를 쥐고 기자회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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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54)의 아이디어로 완성된 것이다. 그가 어릴 때부터 유독 좋아했던 음식이 치즈 버거였다. 1993년 영화 '채플린'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만큼 재능을 일찍 인정받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약물에 손을 대면서 그의 삶도 무너져 갔다. 마약소지죄로 영화 촬영장에서 체포된 것만 여러 번이다. 치즈 버거는 이렇게 마약에 찌들어 지냈던 그를 돌이키게 만든 음식이다. 햄버거 가게에 들러 치즈 버거 한입을 깨물고 그는 당황한다. 버거 맛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어서였다. '내 혀와 신경이 이 정도로 망가졌구나.' 충격을 받은 그는 이후 재활 치료를 받는다. 2002년엔 영화 '고티카'의 프로듀서 수전 레빈과 결혼해 새 삶도 찾았다. '아이언맨'의 치즈 버거는 결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오랫동안 잊고 지낸 일상의 기쁨, 망가진 감각을 회복하고 느끼는 희열의 맛을 보여주는 장치였던 셈이다.


아이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고 나온 지난 주말 햄버거 가게에 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이는 볼이 미어터져라 치즈 버거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마시쩌!" 짧고 명징한 감탄사였다. 부모란 이 세 음절을 들으려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아이의 '맛있어'가 음식과 함께 입안에서 쪼개져 '마시쩌'가 되는 걸 들으며, 문득 토니 스타크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떠올렸다. 그들 역시 '이게 인생이지' '이보다 행복할 순 없어'라고 말하는 대신 목구멍으로 버거를 넘기며 외쳤을 것이다. "맛있어!"


[송혜진 기자]

2019.05.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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