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시들지 않는 꽃'… 이곳에 오면 볼 수 있습니다

[컬처]by 조선일보

궁중꽃박물관


인간문화재 황수로 궁중채화장… 명맥 끊긴 궁중채화 잇기 위해 양산에 박물관 설립, 21일 개관

조선 왕실 의례에서 쓰이던 꽃, 송홧가루와 꿀 묻혀 만들기에 진짜 벌과 나비가 날아들었죠


팔작지붕 건물 안에 희고 붉은 오얏꽃잎이 풍성하게 열렸다. 벌과 나비, 봉황과 공작새가 꽃나무 가지 위에 군데군데 앉아 있다. 꽃도 나비도 진짜가 아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장(宮中綵花匠) 보유자인 황수로(83) 동국대 석좌교수가 손으로 일일이 자르고 묶고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경남 양산시 매곡동에 조선왕조 궁중채화를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이 들어섰다. 황 교수가 사재를 털어 세운 '한국궁중꽃박물관'이다. 채화란 궁중의 연희나 의례 때 장식용으로 쓰기 위해 비단·모시 등으로 만든 꽃. 생화(生花) 장식을 금하던 조선왕실에서 널리 쓰였다. 명맥이 끊긴 궁중채화를 복원해 50여년간 만들어온 황 교수는 "채화는 천연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온·습도 등 환경에 민감하고 보존이 쉽지 않다"며 "후손에게 채화의 아름다움을 계속 전하고 싶어 박물관까지 짓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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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로 채화장이 사재를 털어 만든 '한국궁중꽃박물관'이 21일 개관한다. ①밀랍으로 만든 매화 '윤회매' 옆에 선 황 장인. ②궁중채화 전수관 '비해당' 내부. ③특별전 '왕조의 신비'가 열리는 '수로재'를 정문에서 바라본 풍경. ④고종 정해년 신정왕후의 팔순 잔치를 재현한 작품. ⑤황 장인이 비단으로 만든 꽃. /김동환 기자·한국궁중꽃박물관

대지면적 5041㎡, 연면적 1394㎡. 전통 한옥과 현대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비해당(匪懈堂)'과 '수로재(水路齋)'로 구성됐다. 특별전시실을 비롯해 조선왕조 궁중채화 작품과 문헌, 제작 도구, 서화류가 전시된 상설전시실, 체험실이 두 건물에 나뉘어 있다. 건물 설계는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문화재위원장)과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소장이 맡았고, 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 이재순, 제48호 단청장 동원스님, 대목장 이수자 조재량 등 장인들이 공사에 대거 참여했다. 땅을 매입하고 완공에 이르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설치미술가로 활약하던 그는 "어느 날 가위로 꽃줄기를 잘라내는데 붉은 액체가 주르륵 흐르는 것이 피 같았다. '이것도 살생이구나' 문득 깨달음이 왔다"고 했다. "더 이상 생화를 자르지 않고, 꽃을 만들며 살겠다고 부처님께 약속을 했어요." 동아대 석·박사 과정으로 역사학을 전공하며 고려사 번역에 참여한 게 채화 입문의 계기가 됐다. 복원 작업은 쉽지 않았다. 궁중채화는 200년 넘게 명맥이 끊겨 있었다. 사료는 희귀했고, 유물도 거의 없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을 뒤져가며 채화 양식을 조금씩 복원했다.


황 교수는 "궁중에선 살아 있는 꽃을 단 한 송이도 꺾는 법이 없었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에서였다"며 "장식용 꽃은 모두 직접 만들어 썼다"고 했다. 꽃은 손으로 비단을 일일이 자르고 묶어서 완성한다. 수술은 한 가닥 한 가닥 모두 송홧가루와 꿀을 묻혀 만든다. "이 향기를 맡고 진짜 벌과 나비가 날아들기도 한다"고 했다. 2004년 덕수궁에서 세계박물관대회 특별전으로 전시했을 땐 채화를 실제 꽃으로 착각한 나비가 날아드는 모습에 관람객들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만 해도 채화가 뭔지 사람들이 몰랐어요. 처음 인간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을 때 문화재위원들이 '동대문시장에서 조화를 사온 것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였지요." 2013년 프랑스 파리 '세계문화유산 박람회', 2016년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 개관 100주년 초대전 등 국내외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2017년 7월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한 청와대 국빈 만찬장에 전시된 궁중채화도 그의 작품이었다.


개관식은 오는 21일 오후 2시에 열린다. 개관 기념 특별전 '왕조의 신비'는 고종 정해년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팔순 잔치를 경축하기 위해 열린 '고종정해진연의(高宗丁亥進宴儀)'를 재현했다. 잔칫상 양쪽에 놓인 꽃항아리(花樽·화준) 두 점에만 오얏꽃 2만 송이가 달렸다. 밑작업부터 송홧가루와 꿀을 묻혀 완성하기까지 1년 이상 걸렸다. 상설전시실에선 조선 후기 북학파 문인들이 즐겨 제작하고 감상한 밀랍 매화 '윤회매(輪廻梅)'를 볼 수 있다.


양산=허윤희 기자

2019.09.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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