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서 5000만원에 사온 소똥구리 200마리… 말똥 구해 먹이며 애지중지

[이슈]by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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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경북 영양에 있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직원들이 소똥구리가 든 통을 땅에 묻고 있다(왼쪽 사진). 겨울잠을 잘 수 있게 돕는 것이다. 통마다 소똥구리 8~9마리가 들어 있다(오른쪽 위). 소똥구리는 평소에는 곤충 증식실에서 생활한다(오른쪽 아래). / 남정미 기자

'급구. 이름: 소똥구리. 몸값: 50마리 5000만원. 특징: 소똥을 데굴데굴 굴리는 습성.'


2년 전 환경부가 낸 공고 하나가 전국 농촌을 발칵 뒤집었다. '우리 동네에서 매일 보는 게 소똥구리인데….' 여기저기서 소똥구리를 잡았다는 연락이 환경부로 쇄도했다. 확인 결과 99%가 보라금풍뎅이. 보라금풍뎅이는 소똥구리와 닮았지만 파란빛 광택이 돈다. 소똥구리는 무광택. 나머지 1%는 제주도 등지에서 발견된 애기뿔소똥구리. 같은 과(科)긴 하지만 엄연히 종(種)이 다르다.


소똥구리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란 세대들이 끝까지 안 믿었다. '그 흔하던 소똥구리가 진짜 없다고?'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1971년 이후 소똥구리는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경북 영양에 있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와 양평 곤충박물관을 제외하곤 만나볼 수 없다.


몽골에서 200마리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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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에 나눠 소똥구리 200마리를 몽골에서 들여왔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김홍근 박사가 직접 몽골로 가 소똥구리를 채집해왔다. 전체 몸 크기가 1.6㎝인 소똥구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진드기를 하나하나 핀셋으로 제거했다. 이를 기내 반입용 아이스박스에 담아 비행기로 고이 모셔왔다. 소똥구리 몸값, 인건비, 이동 경비 등으로 총 5000만원이 쓰였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장금희 팀장은 "저 역시 풍뎅이만 보다가 소똥구리는 이때 처음 봤다"며 "(몽골에서 한국까지) 오는 길이 멀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까 걱정했는데 적응을 잘 해줬다"고 했다.


소똥구리는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Ⅱ급이다. 방목이 감소하고, 구충제와 항생제 대중화, 사료 보급 등 축산업 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요즘 사료를 먹은 소의 똥에는 수분이 너무 많아 소똥구리가 똥을 경단 모양으로 굴릴 수 없다고 한다.


몽골에서 데려오고 나서 6마리가 자연사하고 194마리가 남았다. 소똥구리는 수명이 2~3년이기 때문에 복원센터는 채집 당시 일부 노화한 소똥구리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장 팀장은 "환경이 맞지 않았다면 더 많은 소똥구리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말똥으로 애지중지 키워


지난 29일은 소똥구리가 겨울잠을 자러 가는 날이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3층에 있는 곤충증식실 3번 방문을 여니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에어컨이 19도에 맞춰져 있었다. 김 박사는 "동면에 들어가기 전 소똥구리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실내 온도를 낮췄다"고 했다.


소똥구리 키우기는 5~6명의 박사급 전문가들이 전담하고 있다. 이들은 소똥구리가 잘 먹고 잘 잘 때가 제일 좋다고 한다. 삼파장 램프를 이용해 낮과 밤을 만들어주고, 제주에서 자연 방목하는 말의 똥을 공수해 먹인다.


소똥구리는 말똥도 소똥만큼 잘 먹는다. 소똥구리 8~9마리가 일주일에 말똥을 1~2㎏까지 먹는다. 소똥구리가 사는 통을 여니 은은한 말똥 냄새가 났다. 한 통에 어른 주먹 크기의 말똥이 두 덩어리씩 들어 있다. 방목하는 말의 똥은 냄새가 고약하지 않다.


평소 소똥구리들은 김치냉장고 김치통만 한 크기의 통에서 8~9마리씩 생활한다. 이런 통이 24개 있다. 동면을 위해 통을 땅 60㎝ 아래에 묻는 것이 이날의 과제. 박사들이 직접 삽으로 땅을 판 다음 통을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볏짚을 올렸다.


자연 상태에서 소똥구리는 2~7도 정도에 겨울잠을 잔다. 동면을 해야 에너지를 많이 비축해서 교미와 산란을 활발하게 할 수 있다.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박사들은 내년 4월 다시 이 통을 꺼낼 예정이다.


호주 소고기 만든 일등공신 소똥구리


지난 7월 환경부가 소똥구리 수입 결정을 하자 일각에선 '소똥구리까지 세금으로 데려와야 하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장 팀장은 "차라리 호랑이나 표범이면 사람들이 공감할 텐데, 사람들이 소똥구리가 왜 중요한지는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소똥구리는 생태계의 대표적인 분해자다. 가축의 분변을 빠른 시간에 분해해 생태계 물질 순환을 돕고, 분변으로 인한 온실가스를 감소시킨다. 소똥구리가 똥을 경단 모양으로 굴리면서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토양에 다양한 영양 물질이 전해진다. 토양 속 유기물질 서식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질(質) 좋은 소고기로 유명한 호주에서 처음 소를 키울 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소똥으로 파리와 기생충이 크게 늘었다. 비위생적인 환경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소가 없었던 호주에선 캥거루 똥을 먹는 곤충은 있었지만, 소똥을 먹는 곤충은 없었던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소똥구리를 수입한 후에야 문제가 해결됐다. 장 팀장은 "소똥구리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점점 더 많은 돈과 화학 약품을 들여 이를 해결해야 한다"며 "분해자가 없는 생태계는 벽돌이 하나 빠진 건물과 같다"고 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의 최종 목표는 소똥구리 개체 수를 안정적으로 증가시킨 뒤 적합한 서식지를 확보해 자연 서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김 박사는 "한국 땅에 다시 소똥구리를 살 수 있게 하고 싶다"며 "소똥구리들을 한번 잘 키워 보겠다"고 했다.



[영양=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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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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