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130명을 자살로 몰고간 '흰긴수염고래 게임'을 아십니까?

[컬처]by 조선일보

곽정 감독 첫 장편영화 '서치 아웃'

2013년 러시아에서 유행한 게임이 모티브

조직적 범죄의 실체 풀어가는 미스터리

n번방 처음 폭로한 '추적단 불꽃' 연상케

‘첫 번째 미션, 하룻밤 동안 공포 영화 보기.’‘세 번째, 24시간 동안 외부와 소통을 단절하기.’‘다섯 번째, 스스로 상처를 낼 것.’

2013년부터 러시아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한 ‘흰긴수염고래 게임’의 미션들이다. 가상의 게임 그룹에 가입한 청소년들은 50일 동안 관리자가 내준 과제를 수행했다. 매일 해시태그 ‘#BlueWhalechallenge’와 인증 사진을 올리는 미션. 게임 관리자는 최종 미션인 자살까지 점점 더 강도 높은 미션을 수행하도록 이들을 협박했다. 러시아 언론에선 ‘흰긴수염고래 게임’을 하다 자살한 청소년을 130명으로 추정했고, 붙잡힌 범인은 10대 소녀 16명의 자살을 부추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흰긴수염고래 게임’ 모티브로 한 소셜미디어 범죄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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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와이 취업준비생 준혁(김성철)과 성민(이시언), 흥신소 해커 누리(허가윤)는 고시원 자살 사건을 계기로 SNS 범죄를 추적한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서치 아웃’은 SNS 범죄 ‘흰긴수염고래 게임’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경찰 지망생 ‘성민’(이시언)과 취업준비생 ‘준혁’(김성철)이 사는 고시원에서 자살 사건이 벌어진다. 준혁에게 죽은 학생의 ID로 수상한 메시지가 도착하고, 의문을 품은 두 사람은 조직적인 SNS 범죄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피해자들의 SNS에 올라온 흰긴수염고래 사진, 목에 고래 문신이 그려진 의문의 남자,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여신의 이름을 딴 ID ‘에레슈키갈’, “삶의 진짜 의미를 찾고 싶지 않나요?”라는 철학적인 인스타그램의 메시지 등 흥미로운 단서를 곳곳에 뿌려놓는다. 단서가 하나씩 연결되며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장르적 재미가 있다. 이야기가 썩 매끄럽지는 않다. 범죄를 파헤치러 갔다가 도리어 범죄의 대상이 되는 과정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몇 번의 반전을 거듭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소셜미디어에선 인플루언서, 현실은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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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와이 준혁(김성철)은 매번 취업에 실패하지만 SNS에서만큼은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자존감을 높인다.

배우 이시언이 주인공인 줄 알았으나, 사실 ‘준혁’ 역할을 맡은 배우 김성철이 극을 이끈다. 이시언이 맡은 열혈 경찰 지망생 ‘성민’은 기시감이 드는 캐릭터지만, ‘준혁’은 현실에 있을 법하면서도 입체적인 인물이다. 준혁은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지만 소셜미디어 안에서만큼은 인플루언서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들이 자신이 낸 미션을 성공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지기’로 활동한다. 이삿짐 옮기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자선 행사를 무료로 홍보해주기도 한다. ‘흰긴수염고래 게임’의 정반대 버전인 셈. 별 볼일 없는 현실 대신 소셜미디어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자존감을 높인다. 인기 뮤지컬 배우에서 드라마·영화로 진출한 배우 김성철은 선과 악의 얼굴이 섞여 있는 ‘준혁’ 역할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안 봤으면 모를까, 이미 봤는데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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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와이 준혁(김성철)과 성민(이시언)이 범죄 조직을 쫓기 시작한 뒤부터 그들도 누군가의 감시를 당하게 된다.

소셜미디어 범죄가 더욱 지능적으로 변하는 지금의 현실을 떼놓고 볼 수 없는 영화다. 익명의 괴물들은 자꾸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 물으며 대단한 철학이라도 있는 듯 범죄를 포장한다. 하지만 구질구질해도 현실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삶의 의미 따윈 모르지만 흘러가는 대로 대충 살 순 없다고 말한다.


흥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자 해커로 범죄 추적을 돕는 ‘누리’(허가윤)도 그렇다. 준혁은 중간에 내키지 않으면 범인 쫓는 일을 그만두라고 하지만 누리는 이렇게 말한다. “(피해자들을) 안 봤으면 모를까, 이미 봤는데 어떻게 그래.” 텔레그램 속 성범죄를 보고 피해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N번방 취재단 ‘추적단 불꽃’이 떠오르는 대사다.


‘서치 아웃’으로 첫 장편을 선보인 신예 곽정 감독은 “‘흰긴수염고래 게임’에 대해 다룬 기사를 접하고 소셜미디어의 이면을 파헤치는 영화를 만들었다. 몇 년 새 우리나라의 소셜미디어 범죄는 더 악랄해졌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지 곱씹게 된다.


백수진 기자

2020.04.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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