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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토트넘 엑소더스 조짐… 우승컵 없이 전성기 끝날수도

by조선일보

케인 이어 베르통언도 "강팀 갈거야"

2008년 리그컵 우승이 마지막 더 이상 우승 기록 없어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 홋스퍼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통틀어 현재 두 번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토트넘의 ‘원 클럽 맨’ 빌 니콜슨이 선수와 감독으로 각각 리그 우승을 한 번씩 이뤘던 1950~1960년대 이후, 우승 트로피를 노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게 됐다. 토트넘에서 데뷔해 리버풀 ‘레전드’가 된 그레엄 수네스 전 리버풀 감독도 지난 2016년 “나는 현재의 토트넘이 빌 니콜슨 시대 이후 최고의 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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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케인과 손흥민

토트넘 엑소더스

그러나 토트넘의 역사상 두 번째 전성기가 트로피 하나 없이 끝날 위기에 처했다. 프리미어리그(EPL) 중위권 팀이었던 토트넘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4위)까지 끌어올린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사령탑 부임 6년 만인 지난 2019년 팀을 떠났다. 토트넘은 ‘스페셜 원’ 조제 모리뉴 감독을 데려왔다. 감도은 교체됐지만 선수들은 이미 제 갈 길을 찾는 분위기다.


포체티노 아래서 ‘데스크(DESK)’ 라인을 이루며 수퍼스타로 발돋움한 델레 알리(D), 크리스티안 에릭센(E), 손흥민(S), 해리 케인(K) 중 에릭센이 지난 1월 가장 먼저 인터밀란으로 이적했다. 그러자 케인도 “토트넘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팀이 옳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며 “우승할 수 있는 팀이 다른 팀이라면 옮길 것”이라고 선언했다. 토트넘 유스팀 출신으로서 EPL 최고 공격수 반열에 오른 케인이 친정팀을 등질 수 있다고 선언한 건 구단에 큰 파장을 일으킬 만 했다. 이어 올 시즌 종료와 함께 자유계약 선수가 되는 중앙 수비수 얀 베르통언까지 “야망있는 부자 클럽에서 뛰고 싶다. 토트넘일 수도 있고, 다른 클럽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손흥민과 알리의 이적설만 나오지 않을 뿐 가히 ‘엑소더스(대탈출)’ 상황인 셈이다. 문제는 빌 니콜슨 시대와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전력을 자랑했던 이 팀이 우승 트로피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토트넘의 마지막 우승은 2008년 리그컵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 팬들에겐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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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케인 인스타그램 허탈한 해리 케인

짠돌이 구단주?

포체티노 전 감독에 이어 팀의 대들보인 케인까지 떠나려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EPL득점왕을 두 차례(2016·2017) 차지한 케인은 팀 내에선 주급 순위 1위(20만파운드)지만, EPL 내에선 10위다. 아스널의 메수트 외질(5위·27만파운드), 맨유 공격수 앙토니 마르시알(6위·25만파운드)보다 기량이나 상품가치 등 모든 면에서 월등히 앞서는 케인이 매우 박한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탕귀 은돔벨레(공동 10위·20만파운드)에 이어 팀 내 세 번째 고액 연봉자인 손흥민(14만파운드)도 EPL 내에선 28위다. 토트넘은 ‘풋볼 런던’이 조사한 구단 전체 주급 순위에서도 6위 에버튼(62억원)에 밀려 7위(60억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케인이나 손흥민 등의 토트넘 내 수퍼스타들은 자신의 연봉만 올려준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게 아니다. 나 말고도 다른 포지션의 동료들까지 짭짤한 연봉을 받는 ‘A급’ 선수들로 채우지 않으면 우승은 계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케인과 베르통언이 “우승할만한 팀에서 뛰고 싶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포체티노 감독이 떠난 것도 구단이 핵심 선수로 자리잡은 에릭센을 지키지 못하면서 특급 미드필더를 데려오는 것에 주저하면서 갈등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대니얼 레비 토트넘 구단주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새롭게 문을 연 새 홈구장을 짓는 데에 10억파운드(1조5000억원)나 써서 이적 및 선수단 연봉 자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 클럽의 3대 수입원인 TV중계권, 유니폼 판매, 입장권 수익이다. 경기장을 신축하면 장기적으로 입장권 수익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경기장에 걸맞게 빅클럽으로 성장한 팀이 유니폼 판매나 중계권에서도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레비 구단주는 생각했다.


그러나 빅클럽으로 거듭나기도 전에 핵심 선수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차범근과 박지성을 넘어 한국 최고의 선수로 남고 싶은 손흥민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기 위해 언제든지 빅클럽으로 이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영국 현지 언론들은 “포체티노 감독이 휴식을 끝내고 바이에른 뮌헨 같은 톱클래스 팀 사령탑으로 부임할 경우 손흥민을 데려오려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토트넘이 선수 이탈을 막고 빅클럽으로 자리잡을지, 경기장 신축에 따른 딜레마로 다시 중위권으로 내려갈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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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 손흥민 알리

[윤동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