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부캐’ 전성시대

[컬처]by 조선일보

트렌드가 된 ‘멀티 페르소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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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방영된 KBS1 ‘아침마당’의 ‘명불허전’ 특집에 트로트 신인 가수 김다비가 나왔다. 그는 “나는 과거 늦은 나이에 아이돌 그룹 멤버로도 활동했다”며 “신곡 ‘주라주라’는 근로자들의 캐럴송”이라고 소개했다. 진행자가 “코미디언 김신영과는 어떤 관계냐”고 묻자 “가족관계 확실하다. 신영이는 신영이고 나는 둘째 이모 김다비”라고 답했다. 한껏 부풀린 머리 모양과 반테 안경, 레이스 장갑으로 치장했지만, ‘김다비=김신영’이란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침마당 진행자와 다른 출연진은 김다비를 김신영의 둘째 이모이자 신인 가수로 자연스럽게 대했다.


김신영의 둘째 이모라고 우기는 김다비는 김신영의 '부캐'. 부캐는 '다음' 혹은 '둘째'를 의미하는 '부(副)'와 캐릭터를 합쳐서 줄인 말이다. 게임에서는 자기 캐릭터가 아닌 다른 캐릭터 계정으로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한 인간이 원래 가진 캐릭터가 '본(本)캐'라면, 본캐 이외의 다른 캐릭터가 부캐다. '짜고 치는 다중 인격'인 셈이다.


모르는 척 속아 넘어가는 부캐


부캐는 대중문화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캐릭터다. 지난해 유재석은 김태호 PD가 연출하는 '놀면 뭐하니'에서 여러 개의 부캐를 선보였다. 라면을 끓이는 요리사일 땐 '라섹(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 하피스트일 땐 '유르페우스(유재석+오르페우스)' , 드러머일 땐 '유고스타'(유재석+링고 스타) 등 총 6개다. 가장 잘 알려진 부캐가 '사랑의 재개발' '합정역 5번 출구' 같은 인기곡을 낸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 진짜 신인처럼 지방 공연까지 다니다가 연말에 MBC 연예대상에서 신인상 트로피까지 받았다. 데뷔 29년 차 유재석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상이지만 그의 부캐가 신인(유산슬)이기에 수상이 가능했다.


가수 중에는 래퍼 매드 클라운의 부캐 '마미손'이 인기를 끌었다. 마미손은 힙합 예능 '쇼미더머니 트리플 세븐'에 분홍색 고무장갑을 연상케 하는 가면을 쓰고 나와 정체를 밝히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은 목소리와 랩만 듣고도 매드 클라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미손은 "매드 클라운을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고, 매드 클라운도 "나는 마미손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마미손의 노래가 인기를 얻자 동명의 고무장갑 브랜드에서 그에게 제품을 선물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가요계에서 음원 사재기 문제가 터졌을 때 마미손은 이를 풍자하는 발라드 노래를 냈다. 매드 클라운이었다면 못했을 시도를 마미손이란 캐릭터로 실현하고 있다.


1인 몇 역까지 가능할까?


부캐가 성공하려면 대중이 기쁘게 속아 넘어가야 한다. 성공한 부캐에는 본캐가 뻔히 드러날 만큼 어설프고 조잡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교묘한 거짓말은 속아 넘어가 줄 수가 없다. 지금의 부캐는 B급 문화를 즐기는 놀이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부캐를 인정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까닭은 대중이 부캐라는 개념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미 1990년대부터 온라인에서 '아이디(ID)'라는 부캐가 존재했다. 아바타, 게임 캐릭터는 물론이고 SNS에서 보이는 모습은 대부분 현실과 다른 부캐에 가깝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상과 현실, 직장과 퇴근 후 등 인간이 적응해야 할 환경이 많아지면서 거기에 맞는 캐릭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20년 소비 트렌드 10개 중 하나로 제시한 ‘멀티 페르소나’는 ‘다중적 자아’라는 뜻이다. 상황에 맞게 가면을 바꿔 쓰듯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현대인을 일컫는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제는 한 사람의 캐릭터가 얼마나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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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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