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바다 인생 끝… 아덴만 영웅의 '두 번째 제대'

[이슈]by 조선일보

석해균 前 삼호주얼리호 선장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 기지 발휘해 '여명 작전' 성공시켜

하사 생활한 해군서 안보교육 8년 "간절한 용기가 냉철한 이성 낳아"


"8년간 해군 교관으로 강의실에서 용기를 강의하다 보니 다시 배를 탈 용기가 생겼네요. 퇴직하면 배도 타보고 '용기 전도사' 생활을 계속 할 생각입니다."


석해균(67) 전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8년간 몸담은 해군을 오는 27일 떠난다. 2011년 1월 15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배는 엿새 뒤 해군 청해부대의 이른바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구출됐다. 석 선장을 포함한 승조원 21명이 일부러 조타기를 고장 내 운항 속도를 늦추는 기지를 발휘해 작전 성공에 기여했고, 그는 '아덴만의 영웅'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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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석해균 전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동만에서 힘차게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군무원으로 8년 동안 근무한 해군을 오는 27일 떠난다. /김동환 기자

구출 과정에서 네 발의 총알을 맞은 석 선장은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수술을 받고 10개월 만에 퇴원했다. 이후 2012년 6월부터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해군 교육사령부 충무공교육센터에서 3급 군무원인 안보교육담당관으로 근무하며 군 장병과 회사원, 공무원에게 '해양 정신'을 강의했다. 1970년 4월부터 1975년 8월까지 해군 보급 하사로 근무한 이후 두 번째 군 생활이다. 해군 관계자는 "해군에서는 석해균 선장을 '교수님'이나 '부이사관님'이라고 하지 않고 여전히 '선장님'이라고 한다"며 "석 선장이 고령으로 퇴직하지만 더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는 분위기가 많다"고 했다.


석 선장은 19일 전화 통화에서 "부사관 경력까지 합치면 바다 생활 50년"이라며 "이름의 '해'자가 바다 해(海)라서 그런지 바다랑 인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8년간 해군 생활을 하면서 '용기 전도사'가 됐다고 했다. 석 선장은 "납치 당시 두려웠고 당황했지만 해적들이 우리를 깔보고 때리는 걸 보며 용기와 침착함이 생겼다"며 "해군 교관으로서 강의한 핵심은 간절한 용기가 있어야 냉철한 이성이 생긴다는 것과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리더의 용기도 강조했다. 석 선장은 "침몰한 타이타닉호 선장인 에드워드 스미스는 마지막까지 승객을 탈출시키고 목숨을 잃었고 이준석 세월호 선장은 승객을 버리고 탈출해 감옥에서 살아 있지만, 이준석 선장은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스미스 선장은 아직까지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다"고 했다.


8년간 500번이 넘었던 강의 중에서는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석 선장은 "화재 현장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불 속에 갇혀 있거나 동료, 시민이 목숨을 잃는 모습을 지켜본 소방관들이 트라우마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며 "'저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겠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납치 사건의 트라우마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인공 고관절로 버티는 불편한 왼쪽 다리 때문에 목발을 짚은 채 충무공교육센터에 부임한 그는 "내년 1월 1일엔 세 발이 아니라 두 발로 출근하겠다"고 부대원들에게 선언했고 부대 내 대운동장에서 꾸준히 운동한 끝에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지금은 산을 탈 수 있을 정도로 다리가 좋아졌고, 심리적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났다는 석 선장은 "이제는 배를 탈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8년을 근무하면서 배 한 번을 못 탔어요. 퇴직하면 아내와 함께 여객선을 타고 제주도를 가보려고 합니다."


석 선장은 "아무나 겪을 수 없는 일을 겪는 사람의 의무인 것 같다"며 퇴직하고도 용기 전도사 생활을 계속 하겠다고 했다. 국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소말리아 해적 네 명에 대해서는 "교도소에서 기술을 배워 고국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저지른 일을 용서한다"고 했다.


[정석우 기자]

2020.05.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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