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코로나로 무대사라진 배우들, 무엇으로 버티나?

[컬처]by 조선일보

코로나19는 문화예술계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코로나로 예정된 공연이나 전시들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여기에서 일하는 업계 종사자들도 생계를 걱정해야할 처지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연극의 해’. 연극의 해를 맞아 준비했던 공연과 행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무대가 닫혀있는 요즘, 연극배우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최저시급 알바도 경쟁자가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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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한(24) 씨는 고교 1학년 때 동아리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군 제대 후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재작년 겨울부터 서울 대학로 극단에서 배우를 하고 있다. 집도 대학로에서 가까운 곳에 월세로 산다. 김 씨가 속한 극단은 올해 봄에 연극 세 개를 8주에 걸쳐서 올리려고 했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2개만 2주로 축소해서 공연했다. 밀폐된 소극장에서도 관객들은 객석을 한 칸씩 띄어 앉아서 연극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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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최근까지 서울 종로구의 한 pc방에서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알바(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로 청소나 카운터를 보고 간단한 음식도 만들어서 팔았다. 연극배우로 연습이나 공연에 지장이 안 가는 시간을 피해 구한 알바였다. 최저시급인 시간당 8천5백90원을 받고 pc방에서 5개월간 일했다. 최근에 pc방을 그만둔 그는 다른 알바를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어렵다. “대학생들이 집에 있다 보니까 경쟁자가 많아져서 인지 연락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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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 알바를 하면서 배우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김씨는 “공연 시작할 때 조명이 켜지기 전 캄캄한 무대의 어둠이 긴장이 되면서도 너무 설레인다”고 했다.


“내 별명은 ‘알바의 신’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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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면서 11년 동안 해마다 2편 이상씩 공연했던 배우 손난희(35) 씨는 부업으로 해오던 필라테스 강사 일마저도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두 달간 일을 못하다가 최근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되면서 수업을 재개했다. 지난 4월에는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올릴 연극에 캐스팅이 되어 출연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이미 대관까지 끝난 공연이 취소되면서 무기한 연기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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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대에 서고 싶었던 손 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했다. 백화점이나 극장 매점, 호프집 서빙 등을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뒤늦게 뮤지컬 전공의 대학을 나와서 지금까지 배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여태 해본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로 2017년 <브라보마이라이프>와 2018년 <망원동 브러더스>를 꼽았다. 하나는 돈 많고 부족함 없이 자란 부잣집 딸 윤이나 역과 자신의 인생처럼 안 해본 일 없이 열심히 살았던 가난한 청춘 선화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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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선화의 대사는 이랬다. “제 별명이 알바의 신이거든요. 어릴 때 우유 배달부터 시작해서, 커피숍 서빙, 서점 매대 직원, 매표소...아! 또 핸드폰 판매, 녹즙 판매, 불판닦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9년 동안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알바는 쉬지 않고 하면 하루에 몇 개씩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한 만큼 버니까요” 손 씨는 자신이 경험한 인생과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제대로 연기하고 나서 배우로서 뿌듯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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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필라테스, 요가, 중국어, 스킨스쿠버 등 자격증만 15개가 있다. 자격증만으로도 남들처럼 살 수 있어도 자신은 배우로 살고 싶다고 했다. 무대에 올라 다른 배우들과 연기하고 박수를 받고 공연이 끝나면 멍하게 있다가 다른 배역이 오면 또 몰입하는 배우로 사는 게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코로나가 빨리 끝나길 바란다며 서둘러 필라테스 강의를 하러 떠났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버티는 것. 유명해지는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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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의 한 도매전문 의류상가 커피가게에서 일하는 정겨운(30)씨는 양손에 커피 10잔을 들고 위 아래층을 오가며 배달한다. 주로 저녁 7시부터 새벽까지 문을 여는 상인들이 주문하는 이곳에서 정씨는 하루 3시간씩 알바를 한다. 손에 쥔 커피를 모두 배달하고 가게로 돌아와도, 그사이 들어온 주문이 쌓여 다시 커피를 타고 배달을 반복한다. 가게 문을 열면서 커피를 시키는 상인들이 많아 출근하자마자 주문이 쏟아지고, 1시간 반 정도 지나야 겨우 숨을 돌린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는 오전 시간에 시청 주변 빵집에서도 알바를 시작했다. 하루를 몇 개로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뛰는 정씨의 본업은 연극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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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엔 배우보다 조연출 등으로 일했다. 연극을 포기하고 2년 간 다른 일을 하려고 준비했다가 결국 작년 7월에 다시 극단으로 돌아왔다. 연극배우로는 거의 새내기인 셈이지만, 정씨는 노(老)배우로 무대에서 연기하며 늙어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공연을 준비했던 작품이 계속 미뤄져서 내달 초가 되어야 배우로 무대에 오를 것 같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연극 작품을 물었다. 정씨는 안톤 체홉의 <갈매기>에서 니나라는 삼류 여배우의 마지막 대사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룬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유명해지는 것보다 버티면서 계속하는 게 중요하죠.”


체홉의 <갈매기>에 니나의 대사는 이렇다.

“전 이제 당당한 여배우죠. 무대에 서면 취해버려서 제 자신을 아름다운 여자라고 느껴요.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마찬가지죠. 당신이 창작을 하시든 제가 무대에서 연극을 하든 중요한 건 참아낸다는 거예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믿음을 가져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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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원 기자


(** 주: 배우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했지만 촬영을 위해 잠시 벗었습니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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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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