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테일' 봉준호 감독, 서양음식에는 유독 허술하네?

[푸드]by 조선일보

27. '기생충'과 음식으로 본 봉준호의 영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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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장 가족이 캠핑 간 틈을 타 자축 파티를 벌이는 기택과 가족. 이들이 박사장네 집에서 찾아 마시는 술은 중산층이 '상류층은 이런 술을 즐길 것'이라고 믿을 수준의 것들이지, 진짜 상류계층이 선호하는 술로 보이지 않는다./CJ엔터테인먼트

드디어 때가 되었다. 인터넷포털에서 영화 ‘기생충’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본 칼럼에서 ‘기생충’을 다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지난 1년 내내 이 기회를 기다려 왔다. 개봉하자마자 보았고 음식의 차원에서 흥미로워 당장 다루고 싶었으나 여건이 안됐었다. 초반부 이후로는 이미지도 공개되지 않았고 줄거리에 대한 언급도 어려웠다. 속절없이 VOD 출시만을 기다렸으나 아카데미 작품상 및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터져버린 대박에 반비례해 집에서 찬찬히 뜯어볼 기회는 더디게 다가왔다.


나는 대체 어떤 음식에 흥미를 느낀 걸까? 이야기를 꺼내려면 전전작인 ‘설국열차’(2013년)까지 되살펴 봐야 한다. 꼬리 칸 사람들의 바퀴벌레 추출 단백질이 가장 큰 관심을 끌었는데, 내가 진짜 흥미를 느꼈던 대상은 따로 있었다. 절정에서 기차의 창조자인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가 먹는 스테이크이다. 혼자 맨 첫 칸에 앉아 오롯이 즐기는 스테이크가 어찌 저렇게 보잘것없고 맛도 없어 보일까? 설국열차라는 국가의 왕이 먹는 식사치고 너무 질박한 동시에 서양인이 즐길만한 양태가 전혀 아니었다. 서울 강남의 중급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가성비’ 좋기로 입소문 난 스테이크 같달까? 우리의 눈에는 괜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서양 특히 상류층에게 어울릴 설정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스테이크 탓에 영화의 절정에 몰입하는데 실패했다.


얼어붙은 지구의 피난처에서 그 정도면 양반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꼬리 칸부터 찬찬히 올라오며 보여주는 환경으로 알 수 있다. 설국열차는 독립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태계이고 위칸으로 올라갈수록 먹고 사는 형편은 나아진다. 게다가 멀쩡한 스시(생선초밥)도 있다. 소위 ‘현지인’을 차출해 요리사로 쓰는 설정에 실제로 내놓는 음식도 상류층과 격이 잘 맞도록 고급스럽다. 그런 가운데 스테이크만 눈엣가시처럼 어설퍼서 괴리감을 자아낸다. 내가 느끼는 괴리감이 진짜라면 원인은 서양과 상류층, 두 대상 가운데 어느 쪽의 몰이해 탓일까? 서양 환경에서 서양 배우 위주로 찍은 설국열차의 맥락에서는 둘을 분리해서 보기가 어려웠기에, 나는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하고 일단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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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창조자 윌포드가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 이 열차의 최고권력자가 먹는 스테이크라기엔 너무 보잘것없고 맛도 없어 보여 괴리감을 자아낸다./CJ엔터테인먼트

‘옥자’(2017년)도 개봉 당시 부지런히 보았지만 실마리를 얻지 못하고 결국 ‘기생충’까지 넘어왔다. 기택(송강호 분)의 네 식구는 소득이 없이 반지하에서 살아간다. 어렵지만 가족끼리 사이는 좋은 가운데 어느 날, 아들 기우(최우식 분)의 명문대생 친구 민혁(박서준 분)이 자신의 과외 자리를 물려준다. 과외집인 박사장(이선균 분)네가 엄청난 부자이면서도 일견 순진하다는 걸 깨달은 가족들은 각각 미술치료사, 기사, 가정부로 위장해 박사장네 모르게 그들의 삶에 침투해 뿌리를 내린다. 침투가 성공했다고 믿은 가족들은 박사장네가 아들 다송(정현준 분)의 생일 축하 캠핑으로 집을 비우자 자축 파티를 연다.


영화의 진면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보니 사실 음식은 소품 혹은 배경 역할이나 할 뿐이다. 그래서 대체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서도 의외로 많은 게 보인다.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눈을 부릅뜨고 하나하나 훑었는데 진짜 상류계층이 찾을 만한 것보다 중산층이 그렇다고 믿을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술이다. 일단 블렌디드 위스키인 ‘발렌타인’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 국내에서 인기가 많아 30년산이 인천공항 면세점 판매 1위라고 하지만 40만원 수준이다. 같은 연식의 싱글몰트(single malt), 즉 블렌디드의 바탕술 역할을 하는 위스키가 적어도 두 배 이상 비싼 현실을 감안하면 기생충이 그리려는 부자의 현실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정(박소담 분)이 소파에 누워 병나발을 부는 데킬라 ‘파트론(Patron)’도 마찬가지다. 숙성 기간에 따라 색이 진해지며 가격이 오르고, 영화속 기정이 마시는 건 최고 숙성 등급 ‘아녜호(añejo)’지만 가격은 20만원을 밑돈다. 술 한 병에 20만원이라면 서민에게는 충분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최상위층의 삶을 누리는 젊은 사업가가 집에 두고 마실만한 수준은 아니다. 영화 막바지의 비극 직전 생일 파티에 등장하는 케이크며 미트볼 같은 음식도 형편은 다르지 않다. 어린 아들의 생일 파티에 현악 4중주며 성악가를 동원하는 계층이 찾을만한 음식이라기에 케이크는 평범한 기성품 같고, 미트볼은 우악스럽게 크기만 할 뿐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한국인 배우만 등장하는 한국 영화에서도 봉 감독은 유독 서양 음식만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춰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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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 아들 생일에 등장하는 미트볼과 케이크. 미트볼은 크기만 할 뿐 맛있어 보이지 않고, 케이크는 평범한 기성품 같다. 부유한 상류층이 선호할 음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CJ엔터테인먼트

직접 그린 스토리보드며 배우들의 경험담을 통해 세부사항 챙기기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인데, 유독 서양 음식에 느슨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음식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봉 감독의 영화 일곱 편에서 음식은 나름의 방식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가장 인상적인 ‘괴물’을 비롯, 일곱 편 가운데 해피엔딩인 세 편 모두에서 식사 장면이 갈등 해소와 새롭게 찾아온 평화를 보여주는데 쓰인다.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는 정체된 수사의 답답함을 불어터져 소스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짜장면으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낮지만 이 괴리가 부와 권력을 풍자(satire)하는 도구로 쓰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결론은 아무래도 봉 감독의 차기작을 본 뒤에 내려야 할 것 같다. 아카데미 작품 및 감독상을 동시 수상했다면 누군가는 다 이뤘다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은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음식문화, 요리세계(cuisine)가 발전 및 세계화되면 최종적으로 역수입 현상이 이루어진다. 요리 세계를 맛보고 좋아하게 된 외국인이 요리를 배워 해당 국가에 음식점을 열어 현지인을 먹이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일본으로 건너간 프랑스요리는 일본인 셰프들에 의해 다시 고향인 프랑스로 역수입 되었다. 태국 음식도 세계로 퍼져 인기를 누리다 못해 서양인이 방콕에 음식점을 여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을 영화에 빗대어 헤아려 보면 서양의 배우와 각본으로 영어 영화를 찍어 ‘기생충’ 같은 인기를 누리는 게 봉준호 감독의 다음 과제여야 한다. 나는 벌써 그의 차기, 차차기작을 기대하고 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2020.06.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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