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아무튼, 주말

온몸의 털을 잃었다, 새 삶이 싹텄다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김미리 기자의 1미리

전신탈모 정신과 의사 부운주


“나라면 자살한다.” 친구가 스치듯 한 말이 가슴을 벴다. “그 나이에 대머리라니…. 기가 막힌다.” 선생님이 뱉은 어설픈 위로는 상처에 부은 알코올이었다. 전교 1, 2등 다투던 고2 남학생은 갑자기 동정의 대상이 됐다. 누가 쥐어뜯은 것처럼 쑥대밭으로 변한 머리 때문이었다. 머리 감을 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샤워기 물소리에 울음을 파묻었다.


"공포, 그 자체였어요. 아침마다 화장실 바닥에 머리카락 공동묘지가 세워졌습니다." 부운주(27·필명)씨가 10년 전 얘기를 담담하게 꺼냈다. 부씨는 전신 탈모증을 앓는 정신과 의사. 탈모와의 10년 전쟁을 담은 책 '머리카락의 기쁨과 슬픔'을 최근 펴냈다.


무겁게 먹구름 드리운 여름날, 그의 일터인 한 지방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탈모는 전혀 숨길 일이 아니지만 의사로서 일거수일투족을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는 그의 뜻에 따라 실명과 병원은 밝히지 않는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점수보다 머리 한 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부씨가 나타났다. 진료가 끝난 밤, 그는 사복 차림이었다. 반소매 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은 아이 피부처럼 매끈했다. "모자 좀 벗을게요. 이건 찍으시는 거 아니죠?" 곁의 사진 기자를 보며 그가 양해를 구했다.


모자를 벗자 하얗다 못해 창백하기까지 한 얼굴과 머리가 드러났다. 털이 소멸한 얼굴은 나이와 성별이 모호했다. 속눈썹을 상실한 눈에 조심스레 시선을 맞췄다.


―전신 탈모증이 어떤 병인가요.


"흔히 아는 남성형 탈모는 노화와 질병의 중간 스펙트럼에 있어요. 자가 면역 질환으로 체모가 빠지는 질환이 원형(圓形) 탈모증입니다. 동전 모양으로 시작된다고 해서 그렇게 불러요. 원형 탈모증이 심하면 모발과 얼굴 털이 모두 빠지는 전두(全頭) 탈모증, 그보다 더 심하면 몸의 모든 털이 빠지는 전신(全身) 탈모증이 됩니다."


―지금 그러면….


"네. 머리카락, 눈썹, 속눈썹, 겨드랑이털, 콧구멍 털…. 체모가 다 빠졌어요. 수염만 아주 조금 있어요." 그가 덤덤하게 답했다. 심한 내상(內傷) 뒤 얻은 차분함일까. 접은 우유팩처럼 감정이 납작해진 듯했다. 그제야 샤프로 살짝 표시한 듯 희미하게 난 수염 몇 가닥이 보였다. "원래는 정말 몸에 털이 많았어요. 머리숱도 무척 많고, 구레나룻도 있었어요. 그때 사진을 보면 이젠 어색합니다."


―이상 증세가 어떻게 나타났나요.


"아무 증상을 못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10% 정도는 모발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작열감(타는 듯한 느낌의 통증)이라고 해요. 저는 후자였어요. 고2 여름에 머리 뒤쪽이 화끈거렸어요.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에 손가락을 살짝 가져다 댔는데 머리칼이 훅 빠지더라고요. 50원짜리만 한 구멍이 느껴졌어요."


무자비한 비극의 서막이었다. 뒤통수 언저리에서 시작한 탈모가 온몸을 집어삼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50원짜리만 했던 병변이 며칠 만에 100원짜리만 해졌다가 한두 주 지나니 500원짜리만 해졌어요. 화들짝 놀라 부모님과 동네 병원에 갔더니 원형 탈모증이라더군요. 스테로이드 주사를 몇 차례 맞았는데 차도가 통 없었어요. 몇 달 지나니 구멍이 1L 음료수 병 밑바닥만 해졌어요. 2주 뒤 대학병원에 갔을 땐 머리카락 절반이 빠졌어요. 발병한 지 3~4개월 만이었어요. 중간에 약효가 조금 있을 때도 있었지만 0.3㎜ 샤프 심처럼 건드리면 바스러지는 가느다란 털 몇 가닥이었어요. 1년쯤 됐을 때, 온몸의 털이 자취를 감췄어요."


그때 충격을 책에는 이렇게 표현했다. "인정머리 없는 원형 탈모증은 너무나 빨리 영토를 넓혀갔다. … 머리에 가해진 소리 없는 폭격에 마음은 풀 한 포기 안 자라는 척박한 땅이 돼 버렸다."


―고2가 감당하기엔 가혹한 시련이었겠어요.


"저는 그래도 어떻게 보면 운이 좋다고 볼 수도 있어요."


―운이 좋다고요?


"국내에 전신 탈모 환자가 1만~2만명 정도 있는데 절반 이상이 20세 이전에 발병했다고 해요. 대여섯 살 꼬마, 초등학생 환자도 많아요. 그 친구들에 비하면 저는 상대적으로 늦게 발병한 거니까요."


―대입 앞두고 한창 공부할 시기였을 텐데요.


"점수 오르는 것보다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나는 게 더 중요했어요. 머리가 빠질수록 친구들 시선이 불편해졌어요. 작은 말에도 상처받았고요. 수업이 끝나면 허겁지겁 집으로 왔어요." 초·중학교까지 조퇴를 딱 한 번 했는데 발병 이후엔 조퇴를 반복했다. 야간 자율 학습도 빠졌다. 방학 땐 꼼짝 않고 집에 붙어 있었다.


아주 가끔 외출할 땐 비니, 야구 모자, 외투 모자 '삼중 차단 장치'로 무장한 채 집을 나섰다. "탈옥수처럼 자신을 감추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몸부림쳤어요. 30년 탈모 앓은 환자도 가장 힘든 순간을 물어보면 초기 급격하게 탈모가 진행될 때라고 답해요. 머리카락이 단기간에 빠지면서 자아상이 훼손되는 건 신체 절단과 비슷한 충격을 준다고 해요."


치료가 반복됐지만 두피 아래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머리털이 싹틀 기미가 안 보였다. 희망 고문만 반복됐다. "모발이 급속도로 빠질 땐 '입스(yips)'에 걸린 운동선수 같았다"고 했다. 입스는 스포츠에서 실패를 경험한 뒤 두려움으로 발생하는 각종 불안 증세. "머리를 조금만 문질러도 머리카락이 후두두 빠지니 본능적으로 머리를 빡빡 문지르질 못하는 거예요. 점점 위축됐어요."


―가발의 도움도 받았는지요.


"재수하면서 가발을 맞췄어요. 재수학원은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문제는 그때부터. 하루 16시간씩 학원에서 공부하는데 피곤해도 엎드릴 수가 없었어요. 혹시 가발이 벗겨지면 안 되니까. 긴장하고 있으니 육체적으로 무리가 와서 초반에 몸무게가 7㎏이나 빠졌어요." 친구들과 MT 갈 땐 들키지 않으려고 가발 두 개를 가져갔다. 낮에는 새 가발을 쓰고, 밤에 잘 땐 가발이 손상될까 봐 헌 가발로 바꿔 썼다.


―투병하면서 의사를 꿈꿨나요?


"원래 의사가 꿈이었어요. 탈모가 생긴 뒤론 피부과 의사가 꿈이었지만 성적이 모자라 피부과는 못 가고, 정신과로 갔어요(웃음)." 그는 "발생학적으로 피부와 신경은 외배엽에서 기원한다. 까마득히 오래전 갈라섰지만 머리카락과 뇌는 같은 뿌리를 둔 사촌지간"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책으로 대면한 아픔


―책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4년 전, 대학생 때 탈모 책을 닥치는 대로 다 읽었는데 학술 서적 아니면 현실성 떨어지는 소설만 있었어요. 암 투병기는 많은데 '탈모 투병기'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어요. 그러다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는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문장을 만났어요. 당시 추리소설을 끼적이고 있었는데 아예 내 경험을 바탕으로 탈모를 다뤄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1년 공들여 쓴 원고를 들고 3년 전 출판사 수십 군데 문을 두드렸지만 관심 보이는 곳이 없었다. 원고를 다듬어 작년에 다시 출판사 몇 곳에 투고했고, 동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1000만 탈모인(대한탈모치료학회 통계)의 일원인 출판사 편집자의 선택이었다. 10여년 전 탈모를 앓았던 편집자는 원고를 읽은 다음 날 부씨가 일하는 병원으로 내려가 출간 계약을 했다.


―장르를 '탈모 심리 픽션 에세이'라고 했던데요.


"90% 정도는 제가 겪은 이야기, 10%는 상상을 덧댔어요. 에세이와 픽션 사이에 놓인 이야기, 자전적 소설이면서 허구적 에세이입니다."


―자전적 이야기인데 주인공이 왜 여중생인가요.


"전신 탈모증 환자의 남녀 비율이 1대1이에요. 발병 연령이 낮아 탈모 겪는 여중생도 많아요. 예민할 때라 못 견디고 학교에서 자퇴하는 친구도 많고 자살 시도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남자 환자들보다 훨씬 심리적 고통이 심해요. 전신 탈모증 배우로 알려진 윤사비나씨는 성희롱 발언도 들었다고 합니다. 여중생을 등장시켜 탈모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며 누군가에겐 상상 이상의 고통임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머리카락의 장기 침체' '원형 탈모의 땅따먹기' '머리카락의 학살'…. 기발한 비유에 배꼽 잡았다가 눈물이 찔끔 났다는 독자 반응이 많더군요.


"힘든 걸 대놓고 티 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문학적인 비유를 쓰고 싶었어요."


참고 서적을 뒤적이며 행간을 산책하고, 문장을 다듬는 사이 육체의 고민은 저만치 날아갔다. 구원(救援)이 또각또각 다가와 손내밀었다. "수백 번도 넘게 들쑤신 터라 하얀 천으로 닦은 유리구슬처럼 선명한 기억들과 대면했어요. 그 과정 자체가 치유였어요."


4년 난산 끝에 나온 책을 보러 서울에 올라와 대형 서점을 찾아갔다. "사람들 주목도 못 받고 매대 한쪽에 처박혀 초라하게 있더라고요. 잘 안 팔리고 있어 출판사는 속상할 텐데 저는 괜찮습니다(웃음)." 아직 가족에겐 출간을 알리지 않았다. "읽고 가슴 아파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부모님은 대입과 탈모 이중 스트레스에 시달린 아들을 대신해 아들의 벗어진 머리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셨다.


초고를 쓴 후 가발과도 작별했다. "가발이 불편하기도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탈모의 아픔도 옅어졌어요. 가발을 벗고 사람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머리카락 수는 제자리걸음이었지만, 탈모를 대하는 저의 자세가 변했어요." 진료할 때도 모자를 안 쓴다. 때때로 병원에서 만난 암 환자들이 "선생님도 암 투병 중이냐"며 물어와 머쓱하단다.


털에도 경중이 있다


―대머리, 머머리(대머리를 가리키는 신조어. '머'자가 '대'자와 비슷한 데서 착안) 등 탈모를 조롱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대머리가 표준어라고는 하지만 탈모인이 듣기에 기분 좋은 표현은 아니죠. 청각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귀머거리'도 표준어라고는 하지만 피하고 있잖아요. 대머리라는 표현도 듣는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는 만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사용을 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몇 해 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머리가 되면 생기는 매력이 '헤어(hair)날 수 없는 매력'이라고 했다가 비판에 부딪혀 사과한 적이 있죠. 점점 사회 인식이 나아지고는 있어요."


―누구는 털이 많아 고민입니다. 돈 들여 겨드랑이털, 다리털 제모하고 왁싱도 합니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글쎄요, 이들이 머리를 제모하는 건 아니잖아요. 인간에게 털은 99.9% 미(美)의 중요한 부속품으로 기능한다고 봅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털에도 경중이 있어요. 겨드랑이털, 다리털, 코털 등은 효용성이 적죠. 반면 머리카락, 눈썹, 속눈썹 세 가지가 지니는 의미가 커요. 탈모 환자들이 머리카락이 빠졌을 때 가장 큰 심리적 충격을 받고, 그다음이 눈썹 탈모라고 해요. 10만 개 가까운 머리카락에 비하면 눈썹은 수백 개밖에 안 되지만 눈썹까지 빠지면 털 없이 미끈한 양서류를 연상시키는 외형으로 변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다고 해요."


―전신 탈모에 비하면 남성형 탈모는 고민 축에도 못 낀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요.


"사자하고 고양이가 결국 같은 고양잇과에 속하듯 부분 탈모든 전신 탈모든 탈모는 결국 탈모라고 봅니다. 빠진 머리카락 개수만 다를 뿐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머리카락은 50%만 충전돼도 잘 작동되는 휴대폰과는 달라요. 100% 있어야 온전하다고 생각합니다. 5%만 빠져도 온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탈모 치료로 머리가 50% 났다고 해도 의미 없다고 여기죠."


―언젠가부터 툭 하면 항의 표시로 삭발합니다. 어떤 생각이 드나요.


"머리카락 깎는 것과 빠지는 것은 기본 전제가 다릅니다. 항의의 표시로 머리를 깎는다 함은 다시 난다는 보장이 100% 있는 상태에서 하는 일시적 행위예요. 탈모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빠지는 것인 데다 다시 나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이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발모제를 산 게 뉴스화됐어요.


"탈모가 그에게 정말로 큰 고민이라면 그런 활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전체 삭제된 머리, 다시 돋아난 삶


―탈모가 준 의외의 선물이 있을까요.


"의학도가 돼 탈모 고민이 더 깊어졌을 때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어요. 아우슈비츠 수용소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 정신과 의사의 체험담인데, 프랭클 박사가 인용한 니체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탈모 치료가 진전이 없더라도 그와는 별개로 절망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낙관론자인가요?


"어렸을 땐 심한 비관론자였어요. 의심도 많은 편이었고요. 병을 앓고 고통에 직면하면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기르게 됐습니다."


―책 만들면서 아팠던 기억을 들춰보니 터널을 완벽히 지난 것 같던가요.


"이젠 덤덤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주인공과 같은 병을 앓는 친구가 위로해주는 장면이 있어요. 진심을 담아 '정말 힘들었겠다'고 말하는 대목인데 감정이 출렁댔어요.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힘들었을 때 막상 두 눈을 쳐다보며 진심으로 힘들겠다고 말로 위로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게 공감의 정석인데 말이지요."


―열일곱 살 여름, 상실을 경험한 뒤 딱 10번째 여름을 맞았네요.


"온몸의 털이 다 빠졌을 때 삶이 'Ctrl+A(전체 선택)'+'Delete(삭제)'된 것만 같았어요. 일순간 전체 삭제된 듯한 절망이었죠. 그런데 지금 보면 '한/영 변환키'를 누른 거였어요. 삶이 지워진 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제 관점이 통째 바뀌었으니까요."


그가 조용히 입을 뗐다. "지난 10년 제 인생 그래프는 드라마틱한 희비 쌍곡선을 그렸어요. 쓰디쓴 슬픔을 맛봤기에 더 깊은 기쁨의 맛도 알게 됐습니다. 탈모가 없었더라면 평범한 삶이 펼쳐졌겠지만 지금보다 주관적 행복감이 100% 더 컸을지는 모르겠어요."


―천만 탈모인에게 할 말이 있다면요?


“머리카락의 슬픔을 아는 우리야말로 진정 머리카락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 아닐까요?”


[김미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