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비둘기 먹이 주면 포악해집니다

[테크]by 조선일보

몸무게 늘수록 서열 올라가고 공격성도 증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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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비둘기는 사람이 다가가도 잘 피하지 않고 먹이가 보이면 사납게 다툰다.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던 비둘기가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던져준 먹이 때문일지 모른다. 비둘기가 살이 쪄 잘 날지도 못하는 ‘닭둘기’가 되면 공격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대와 호주 모나시대 공동 연구진은 5일(현지 시각) 왕립학회가 발간하는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도시 비둘기는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서열이 높아지고 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밝혔다.


◇몸무게 늘수록 서열 높아지고 공격성 증가


인간과 동물 사회의 서열을 뜻하는 영어단어(pecking order)는 새들이 먹이를 쪼아먹는 순서에서 비롯됐다. 서열이 높은 동물은 먹이나 짝을 더 잘 얻는다.


연구진은 비둘기의 서열을 좌우하는 요인을 알기 위해 런던대 수의대에서 키우는 비둘기 17마리를 3년간 관찰했다. 암컷이 9마리, 수컷이 8마리였고 연구 당시 모두 6살이었다. 다른 새들은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모이와 물을 줬다.


관찰 결과 비둘기들은 몸집이 클수록 서열이 높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몸집이 가장 작은 새가 서열이 가장 낮았다. 또 몸집이 클수록 공격성도 강했다.


놀랍게도 몸무게가 바뀌면 바로 서열도 바뀌었다. 연구진은 연구 기간의 중간에 해당하는 19개월째에 몸무게가 가장 작은 비둘기에게 추를 달아 몸무게를 인위적으로 늘렸다. 그러자 당장 공격성이 증가하고 빠르게 서열이 올라가 결국 최고가 됐다.


연구진이 추를 없앨 때까지 이 비둘기는 서열을 유지했다. 추가 사라지자 비둘기는 공격성을 잃고 서열을 바닥으로 다시 떨어졌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몸무게 같은 물리적 특성을 변화시켜 동물의 공격성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공원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공격성을 더 증가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평화 상징에서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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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는 비둘기는 더는 ‘평화의 상징’이 아니다. 각종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어 잘 날지 못할 만큼 살이 쪘다고 '닭둘기'나 병원균을 옮기는 '쥐둘기'라고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됐다.


2009년 환경부는 비둘기가 악취와 배설물 등으로 시민과 건물에 피해를 준다며 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했다.


그럼에도 비둘기 개체수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대한조류협회에 따르면 전국에 서식하는 비둘기 개체 수는 약 100만 마리로 추정되며, 이중 절반인 50만 마리가 수도권에 분포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상황이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불임 성분의 약을 먹이에 섞어 뿌려 개체수를 조절하기도 한다. 영국은 아예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우리나라도 비둘기에게 같은 방법을 모색했지만, 동물보호단체 등이 반발해 무산되기도 했다. 비둘기가 닭둘기라는 오명을 버리고 본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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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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