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물고기 혀가 된 기생충

[테크]by 조선일보

피 빨다가 아예 혀 노릇하며 눌러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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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구실에서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무시무시한 괴물 사진이 찍혔다. 물고기의 머리를 찍은 X선 사진에서 혀 부분을 보면 쥐며느리처럼 생긴 갑각류(보라색)가 있다. 바로 물고기 ‘혀를 먹는 이’로 알려진 기생충 ‘시모토아 엑시구아(Cymothoa exigua)’이다.


미국 라이스대의 코리 에번스 교수는 지난 10일 트위터에 이 섬뜩한 사진을 올렸다. 그는 산호초에 사는 놀래기류 물고기들의 X선 영상을 찍어 두개골의 3D(입체) 구조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날도 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X선 영상에 무시무시한 밀항자가 발견된 것이다.


◇혀에 붙어 피 빨다가 아예 눌러 살아


에번스 교수는 라이브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물고기의 두개골을 비교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뉴질랜드산 한 놀래기류 물고기의 입 안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입안에 곤충 같은 게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곧 이 물고기가 해초를 먹고 사는 초식성 어류이므로 곤충을 삼켰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말로만 듣던 혀를 먹는 이인 시모토아가 찍혔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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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토아 엑시구아는 갯강구나 쥐며느리와 함께 등각류에 속하는 갈고리벌레과의 기생 동물이다. 380여종이 있다고 알려졌다. 아가미를 통해 물고기 입으로 침투하고 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고 산다. 이때 피가 굳지 않도록 항응고 물질을 분비한다.


시모토아는 피를 빠는 동안 일곱쌍의 다리로 혀의 아랫부분을 꽉 잡는다. 피가 잘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있는 피마저 다 빠져나가면 결국 혀가 떨어져 나간다.


악몽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시모토아가 혀가 잘린 자리에 들어가 나머지 혀 근육과 자신을 연결해 혀 구실을 하며 산다. 물고기는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다. 영화 ‘에어리언’에서 산 사람 몸에 외계생명체가 기생하던 모습과 흡사하다.


◇사람에 해 없지만 양식업에는 피해 가능


이 기생충은 어릴 때 물고기에 숨어들어와 같이 산다. 어릴 때는 모두 수컷이지만 자라면서 일부가 암컷이 된다. 혀를 대체하는 것은 모두 암컷이다. 물고기가 자라면 기생충도 같이 성장하고 그 안에서 짝짓기도 하다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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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에 붙은 이 커다란 기생충에게 계속 피를 빨리면 물고기가 금방 죽을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기생충도 숙주가 바로 죽으면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인지 치명적인 피해는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뉴질랜드 국립해양대기연구소의 스테파니 카이저 박사는 지난 2012년 ‘사이언스’를 발간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와 인터뷰에서 “물고기와 시모토아의 기괴한 동거는 수년간 이어진다”며 “대부분 물고기가 기생충보다 오래 산다”고 밝혔다.


시모토아는 보기에 무섭지만, 사람에게는 해가 없다고 알려졌다. 모르고 기생충이 들어있는 물고리기를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것. 다만 양식 어류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해 경제적 피해는 줄 수는 있다고 카이저 박사는 밝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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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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