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메뚜기 떼 모여!” 신호 물질 찾았다

[테크]by 조선일보

특정 페로몬 성분이 무리 형성 유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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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메뚜기 떼를 막을 새로운 방법이 나왔다. 홀로 사는 메뚜기가 무리를 짓게 하는 신호물질을 찾아낸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물질을 차단하면 메뚜기 떼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중국 과학원의 르 캉 박사 연구진은 1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사막 메뚜기가 무리를 이룰 때 분비하는 페로몬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페로몬은 곤충이 몸 밖으로 분비하는 신호물질이다.


◇메뚜기 무리 짓게 하는 신호물질 찾아


사막 메뚜기는 원래 혼자 사는데 어떤 상황이 되면 무리를 짓는다. 이러면 온순하던 메뚜기가 공격적인 행동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이동 중에 보이는 동식물을 모두 먹어 치운다. 아프리카 동부 지역은 올 들어 25년 만에 최악의 메뚜기 떼 피해를 보았다. 최근 인도와 중국도 심각한 메뚜기떼 피해를 보고 있다.


연구진은 무리를 지은 메뚜기들이 분비하는 페로몬 6종을 채집해 실험했다. 그 가운데 4-비닐아니솔(4VA)이라는 페로몬이 홀로 사는 메뚜기들을 무리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4VA는 홀로 사는 메뚜기는 물론, 무리를 이룬 메뚜기도 모두 끌어모으는 효과를 냈다. 이는 암수나 나이도 상관없었다.


르 캉 박사는 “메뚜기는 네댓 마리가 모이기 시작하면 4VA를 방출하기 시작한다”며 “무리 크기가 커질수록 4VA 농도도 급증한다”고 밝혔다. 큰 목소리로 동료를 불러 모으던 것이 전국 방송을 통해 집합 신호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는 셈이다.


연구진은 끈끈이 덫에 4VA를 발라 중국 북부의 메뚜기 번식처에 설치했다. 4VA를 바른 덫에는 다른 덫보다 더 많은 메뚜기가 달라붙었다. 메뚜기 서식처나 이동 경로에 같은 방법으로 덫을 놓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메뚜기떼 피해를 보는 나라들은 항공기로 살충제를 대량 살포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동식물이 농약 피해를 보았다. 이번에 중국 과학자들이 찾아낸 페로몬을 이용하면 합성 농약의 피해 없이 메뚜기만 골라잡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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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농약 가능성도 제시


르 캉 박사 연구진은 페로몬으로 메뚜기를 불러 모으는 유인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메뚜기가 페로몬을 아예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연구진은 사막 메뚜기의 더듬이에 있는 특정 감각털에서 4VA를 감지하는 단백질을 찾아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없애자 메뚜기는 4VA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유전물질인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마음대로 골라 잘라낼 수 있는 효소 단백질이다.


르 캉 박사는 메뚜기의 4VA 감지 단백질을 차단하는 물질을 살포하거나 유전자 가위로 감지 단백질 유전자를 없앤 메뚜기를 자연에 퍼뜨리면 메뚜기 떼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최근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를 막기 위해 불임(不姙) 유전자를 가진 모기를 퍼뜨리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다. 하지만 메뚜기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방제법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유전자 가위가 다른 유전자까지 건드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변형이 가져올 생태계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동료에게 안 먹히려 군집 행동 발달


사막 메뚜기가 무리를 짓게 하는 다른 요인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4VA가 메뚜기를 모은 단독 범행이라기보다 다른 물질이나 조건과 동시에 작용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메뚜기 무리를 차단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시에 써 방제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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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대의 스티븐 심슨 교수는 2009년 ‘사이언스’지에 사막 메뚜기의 뒷다리에 있는 감각털을 자극하면 온순하고 혼자 살던 메뚜기가 공격적인 무리로 돌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뒷다리를 자극하는 것은 동료 메뚜기였다. 먹이가 부족해지면 메뚜기는 동료에게 군침을 흘리기 시작한다. 심슨 교수는 동료가 다가오면 메뚜기 몸에서 세로토닌 호르몬이 나와 형태 변화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험실에서 세로토닌을 주자 독거 메뚜기가 군집 메뚜기로 변했다. 반대로 세로토닌 분비를 막자 계속 독거 메뚜기로 남았다.


중국 농업대 연구진은 지난 2014년 장내 세균으로 메뚜기 떼를 막는 방법을 제안했다. 연구진은 ‘파라노세마(Paranosema)’라는 세균에 감염된 메뚜기와 정상 메뚜기의 배설물을 각각 다른 용기에 담고 다른 정상 메뚜기의 반응을 관찰했다.


메뚜기는 배설물을 통해 동료를 부르는 페로몬을 퍼뜨린다. 메뚜기가 배설물에 보이는 관심은 세균에 감염된 메뚜기의 배설물의 경우 정상 메뚜기 배설물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배설물을 분석했더니 페로몬 성분도 세균에 감염된 메뚜기의 배설물에서 평소의 절반 정도로 줄어 있었다.


최근 기후변화로 메뚜기 번식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됐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6월 ‘네이처 기후변화’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아라비아반도 일대에 최근 이례적으로 많은 비가 왔다. 이로 인홰 생성된 ‘사막 호수’가 사막 메뚜기가 불어나는 데 최적의 여건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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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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