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길냥이를 구해라” 재개발 현장 고양이 구호작전

[이슈]by 조선일보

동물권단체의 ‘고양이 구출 작전’

재개발 현장 사는 길냥이

"철거 前 중성화·이주해야

집단 폐사 막을 수 있어"


지난 19일 오후 철거를 앞둔 서울 강남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이 떠난 단지는 고요했다. 곳곳에 간간히 고양이 울음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지는 이곳에 회색 봉고차에 진입했다. 남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남녀 여섯 명이 길이 80㎝의 철제 포획틀 30여개를 들고 내렸다. 철거 전문 용역인가. 아니었다. 이들은 단지에 사는 고양이들을 도우러 온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의 활동가들. 목적은 길고양이의 TNR(Trap-Neuter-Return·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다시 방사하는 것)이었다.


“고양이들은 습성상 사람이 안 사는 건물의 지하에 본거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요.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가 철거가 진행될 때까지 서식지에 남아있다 압사당합니다. 사람들이 남긴 쓰레기를 먹다 병에 걸리거나, 깨진 유리조각 등에 다치는 아이들도 많죠. 재개발 지역의 고양이 개체수를 미리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예요.”


카라 신주운 정책팀장이 말했다. 실제로 많은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 작업 중 고양이 사체가 발견된다. 주변 구역을 서식지로 삼고 살아가는 길고양이에게 재개발은 악몽인 셈이다. 주택정비사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진행 중인 곳은 서울에만 600여곳에 달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양이가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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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옹~” 고양이가 덫을 물었다


이 아파트 단지에는 길고양이 50여마리가 살고 있다. 카라 활동가들과 지자체가 이미 두 차례의 포획 작업을 통해 12마리를 중성화했다. 이외에도 아파트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중성화한 개체가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결국 주변 고양이를 일일이 포획해 중성화 여부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이날 목표는 고양이 스무 마리 이상 포획하기. 활동가들이 사료를 담은 철제 포획틀 30여개를 단지 곳곳에 설치했다. 고양이가 사료를 먹기 위해 포획틀에 들어가면 철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일종의 먹이덫인 셈이다. 이미 주변 고양이들에게 24시간 동안 먹이를 주지 않아 고양이들은 배가 고픈 상태. 그러나 고양이가 스스로 포획틀에 들어갈지 여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신주운 팀장은 “경계심이 심한 고양이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이 주변만 맴돌기도 한다”면서 “결국 고양이가 포획틀에 걸리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포획틀 설치 한 시간째, 드디어 ‘고양이가 미끼를 물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달음에 달려가보니 정말 길이 50㎝ 정도의 갈색 수컷 고양이가 한 철장 안에 갇혀 떨고 있었다. 냥생(?)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철창에 놀란 상황. 활동가들이 포획틀을 담요로 덮었다. 고양이 시야를 가려 진정시키기 위해서다. 30분쯤 후엔 다른 점박이 고양이도 포획틀에 걸려 들었다. 한 시간 반만에 두 마리를 포획한 셈이다.


활동가들은 이렇게 포획한 고양이를 인근 동물 병원으로 보내 중성화 수술을 진행한다. 다친 고양이는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치료도 병행한다. 고양이가 건강을 회복하면 그 자리에 다시 방사(放飼)한다. 힘들게 포획한 길고양이를 억지로 입양 보내거나 다른 구역에 풀지 않는 것은, 영역 동물인 이들의 거주권을 배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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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서식지 50m 옮기는 데 수개월 걸려”


이곳 재건축 구역에서는 중성화와 동시에 ‘길고양이 이주 작전’도 진행되고 있다. 곧 진행될 건물 철거 과정에서 고양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미리 주변 근린공원 등으로 이들의 서식지를 옮기는 것이다. 며칠만에 끝나는 중성화 수술과 달리, 서식지 이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된다. 고양이는 영역 다툼이 심해 억지로 이사를 시키면 해당 지역의 고양이와 영역 다툼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개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지역 캣맘·캣대디들이 급식소(밥통)의 위치를 조금씩 이동하는 식으로 몇개월에 걸쳐 이주를 유도한다. 주변 환경에 적응력이 뛰어난 고양이의 경우 하루에 10m를 옮기기도 하지만, 고양이가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면 며칠씩 이주 유도를 멈추는 경우도 많다. 이곳에서도 길고양이를 돌보는 지역 주민 여덟명이 모여 지역 모임 ‘캣츠 앤 프렌즈’를 꾸리고 고양이 이주를 돕고 있다. 인근 상가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홍성윤(48) 원장도 그 중 하나다. “경계심 많은 고양이는 하루에 1m만 밥통을 옮겨도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요. 눈앞에 이주지를 두고도 몇 주째 제자리 걸음이니, 속상할 때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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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목표는 아파트에서 50m 정도 떨어진 근린공원 두 곳에 고양이들의 새 안식처를 마련하는 것. 이를 위해 관할 구청과 재건축 조합, 주민 등을 설득했다. “‘나는 길고양이가 보기 싫다’며 민원을 넣는 주민들도 계시죠. 그분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길고양이들을 모두 압사당하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 지역 협의체를 통해서 그분들께 고양이 이주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중성화 수술 등을 통해 개체 수를 조절하겠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요.” 카라 최민경 활동가가 말했다.


◇지자체 지원 사업 없으면 활동가 사재 털기도


카라는 이 아파트 단지를 포함해 서울 시내 재개발·재건축 지역 세 곳에서 길고양이 200여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중성화 수술에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시가 지원한다. 시는 이를 통해 무분별한 개체 수 증가를 막고, 동물과 사람의 공존을 모색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의 이 같은 지원은 지난 1월 개정된 서울시 동물보호조례에 따른 것이다. 개정된 조례는 서울시가 정비구역 내 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서울시와 카라는 600곳이 넘는 주택정비사업 구역 중 철거가 예정돼 고양이 이주가 시급하고, 조합과 협의가 원만한 세 곳을 우선 선정했다. 7월부터 각 지역에서 활동이 시작됐는데, 연말까지 200여마리를 중성화하고 이들의 이주를 돕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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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지원사업에 선정된 세 곳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자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개발 지역은 지역 활동가들과 동물보호단체가 사비를 들여 고양이 구호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문동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800여마리를 보호하는 지역 프로젝트 ‘이문냥이’, 둔촌동 일대 고양이 250여마리를 구호하는 ‘둔촌냥이’ 등은 지역 캣맘·동물보호단체 등이 사재를 털어 진행했다. 고양이 한 마리를 중성화하는 데 수컷의 경우 20여만원, 암컷은 30여만원이 든다. 이들의 치료비와 사료값 등을 더하면 마리 당 드는 구호비용은 상상 이상으로 높다. 수원 시내 한 재개발 지역에서 길고양이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동물자유연대 박선화 선임은 “지역 활동가들의 손길마저 미치지 못하는 재개발 구역에서는 매년 셀 수 없을만큼 많은 고양이가 목숨을 잃고 있다”면서 “지자체 차원에서 구체적인 조례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도 지난 3월 재개발·재건축으로 터전을 잃는 길고양이 보호를 위해 길고양이 관리에 관한 사항을 조례에 담았고, 관내 고양이 중성화 비용을 일정 부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재개발 지역에 대한 구체적 지원사업은 아직 논의 중이다.


이날 길고양이 포획 작업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활동가 여섯 명이 7시간 넘게 투입돼 잡힌 고양이는 달랑 세 마리. 중간에 사료를 냄새가 강한 고등어캔으로 교체했지만 대부분 고양이들은 모습조차 비추지 않았다. “며칠째 주변에서 진행되던 토목작업에 고양이들이 놀라 지하로 숨은 것 같아요.” 최민경 활동가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다음 주에 다시 와야 할까봐요.”


“냐옹~냐옹~”


아파트 단지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애타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들은 밤이 새도록 우렁차게 울어댔다.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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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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