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는 하늘이 살리고, 원숭이는 인간의 동아줄이 살렸네

[테크]by 조선일보

[사이언스샷] 산사태로 분리된 숲을 밧줄 다리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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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에게 쫓기던 오누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 목숨을 구했다.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자연에서도 일어났다, 멸종 위기에 빠진 원숭이가 인간들이 만들어준 밧줄 다리 덕분에 고립 상태에서 벗어났다.


홍콩 카두리 농장식물원의 보스코 푸이 록 찬 박사 연구진은 1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하이난검은볏긴팔원숭이(Nomascus hainanus)가 숲 사이를 이어주는 밧줄 다리를 통해 고립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중국 하이난에 사는 하이난검은볏긴팔원숭이는 지구에서 가장 희귀한 영장류이다. 서식지 파괴로 3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밧줄 다리로 15미터 떨어진 숲을 연결


지난 2014년 하이난검은볏긴팔원숭이들이 살고 있는 바왕링 국립자연보호구역에 태풍이 지나가면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숲에는 원숭이들이 건너갈 수 없는 커다란 틈이 생겼다.


나무 높은 곳에 사는 원숭이들에게 숲에 생긴 틈은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계곡과도 같다. 몸집이 큰 긴팔원숭이 수컷은 나무 사이를 뛰어서 건너갈 수 있지만, 몸집이 작은 암컷이나 새끼들은 그러지 못해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동료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짝짓기도 불가능해진다. 결국 개체수가 줄어든다.


홍콩 연구진은 단단한 밧줄로 이 간격을 메우기로 했다. 전문 나무등반가들이 산사태로 숲에 생긴 15미터 폭의 소협곡에 두 줄의 밧줄을 연결했다. 밧줄은 아래로 약간 쳐져 협곡 직선 길이보다 긴 18미터에 달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긴팔원숭이들은 밧줄 다리를 이용해 산사태로 생긴 협곡을 건너다녔다. 연구진은 긴팔원숭이들이 모두 52차례 밧줄 다리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밧줄 다리를 이용하는 방법도 다양했다. 긴팔원숭이들은 대부분 밧줄 한쪽을 난간처럼 잡고 다른 밧줄 위로 걸어갔다. 또 나무늘보처럼 사지를 모두 밧줄에 의지하고 몸을 흔들기도 했다. 두 팔로 밧줄에 매달려 건너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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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서식지 복원 노력해야”


멸종 위기 영장류가 인공 다리의 도움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시 나무 위에 사는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오랑우탄과 자바늘보로리스도 밧줄 다리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연구는 하이난검은볏긴팔원숭이도 밧줄 다리를 이용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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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연구진은 그동안 하아닌검은볏긴팔원숭이를 멸종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보존 연구를 진행했다. 찬 박사는 “2003년 보호구역에서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단 두 집단에 13마리만 남아있었다”며 “이후 조금씩 숫자가 늘어나 2020년까지 5개 집단이 형성됐으며 개체수도 30마리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하이난검은볏긴팔원숭이가 천천히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밧줄 다리는 분리된 서식지를 연결하는 단기적인 해결책”이라며 “긴팔원숭이의 서식지인 숲을 다시 복원하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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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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