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짝 판 이익보다 남은 한짝 재고로 인한 손해가 더 크죠

[비즈]by 조선일보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장갑은 왜 한짝만 안 팔까


장갑의 계절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장갑 한 짝 때문에 많은 사람이 울분을 토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못 쓰게 된 한 짝을 보며 “장갑은 왜 한 짝씩은 안 팔까” 하고 의문을 던진다. 그러고 보면 양말이나 귀고리 등도 마찬가지다.


항상 짝을 이뤄 팔고 낱개로는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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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장수의 탐욕 때문일까. 한 켤레에 1만원 하는 장갑을 팔 때 1000원 이득을 본다고 하자. 그럴 경우 장갑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한 짝을 5000원에 팔면 이윤은 500원으로 줄어든다. 이 사람이 장갑 한 켤레를 다시 사게 만들면 1000원을 더 벌 수 있는데 말이다. 장갑 장수는 한 짝만 필요한 사람에게 한 켤레를 사도록 강요함으로써 500원 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장갑 장수는 한 짝만 팔되 6000원을 받으면 되지 않는가. 소비자 처지에선 1만원을 내고 한 켤레를 사느니 6000원을 내고 한 짝을 사는 편이 이득일 수 있으므로 이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가능성이 크다. 장갑 상인은 이윤을 오히려 1500원으로 높일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 왜 장갑을 낱개로 팔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더 흥미로워진다.


경제학자 눈으로 보기에 가장 그럴싸한 답은 ‘규모의 경제’와 연관된다. 만일 디자인이 같은 장갑을 하루에 수백 켤레 파는 상인이 있다면, 한 짝을 조금 비싸게 받으며 파는 것이 이문을 늘리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장갑 상인은 대부분 다양한 디자인의 장갑을 소량씩 구비해 놓고 팔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린 사람을 위한다며 ‘낱개 장갑’을 파는 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예를 들어 오른쪽 장갑만 팔고 나면 왼쪽 장갑이 남는데 그 디자인의 왼쪽 장갑을 잃어버린 손님이 자기 매장을 찾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면 장갑 상인은 팔리지 못한, 한 짝짜리 장갑 재고의 손해를 짊어져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장갑을 자주 잃어버리는 소비자가 자구책을 마련할 수도 있다. 앞뒤 구분 없는 같은 종류의 장갑을 여러 켤레 장만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갑을 살 때 무조건 두 켤레 이상을 사는 이가 세상엔 적지 않다. 한 철만 쓰고 눈에 잘 띄는 장갑과 달리 사시사철 신는 양말, 특히 눈에 잘 안 띌수록 좋은 짙은 색 양말 등은 묶음으로 파는 경우도 종종 본다. 온라인 쇼핑몰 쿠팡의 ‘묶음 양말’ 인기 순위 1~10위 중 8개는 디자인이 같은 양말 묶음이다.


장갑을 잃어버렸을 때 좀 창의적인 해결책도 가능하다. 요즘 일부 패셔니스타들처럼 과감하게 짝짝이 장갑을 끼는 것이다. 미국 NBA 선수 중엔 르브론 제임스처럼, 색이 다른 농구화를 즐겨 신는 이가 적지 않다. 장갑쯤이야 못 할 이유가 있을까.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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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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