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김선생] 맵고 구수한 ‘한국형 라면’이 탄생하기까지

[푸드]by 조선일보

[공복 김선생] ‘라면왕’ 신춘호 농심 회장 별세

라면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라면을 가장 사랑하는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세계 라면 판매량은 연간 1064억 개. 한국은 39억 개로 7번째로 큰 시장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1인당 소비량은 75.1개로 세계 1위입니다. 전 국민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해석이 가능하죠. 참고로 1인당 소비량 2위는 네팔로 57.6개, 3위는 베트남으로 56.9개입니다. 라면 수출액은 지난해 6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이 라면 대국(大國)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라면왕’ 신춘호 농심 회장이 지난주 토요일(3월 27일)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국내에서 롯데를 이끌었죠. 1965년 라면 사업 추진을 놓고 형과 갈등을 빚다가 롯데공업이라는 라면 업체를 차려 나왔고, 1975년 내놓은 ‘농심라면’이 히트하면서 아예 사명을 농심으로 변경했죠. 이후 56년간 농심을 이끌며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 등 히트 제품을 줄줄이 선보이며 라면왕이라 불리게 됐습니다.


별명 때문에 신춘호 회장이 국내에 라면을 처음 소개했다고 아는 이들도 많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국내 최초의 라면은 삼양식품에서 1963년 출시한 ‘삼양라면’입니다.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식량문제 해결 방안으로 라면을 생각했고, 1961년 삼양식품을 창업했습니다. 일본 묘조라면(Myojo Food)로부터 제조·생산 노하우를 이전받아 생산했죠.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양이 묘조로부터 라면 기술을 제공받을 수 있었던 건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가 제조법 특허를 독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10년 대만에서 태어난 사업가 안도는 47세가 되던 해 청탁 문제에 연루돼 자택 외 재산을 전부 잃게 됩니다. 추운 날 라멘 포장마차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뜨거운 물만 있으면 곧바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하면 좋을텐데…’라는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에 몰두합니다.


안도는 1년간 하루 평균 4시간만 잠 자면서 연구했고, 마침내 ‘치킨 라면’을 1958년 개발했습니다. 핵심 기술은 ‘순간유열건조법’입니다. 국수를 고온의 기름에 튀겨 수분을 급속도로 증발시키면 면발에 미세한 구멍이 무수하게 많이 생기기고, 이 구멍에 뜨거운 물이 스며들면 금방 면이 촉촉해지며 익는 원리입니다.


안도가 개발한 라면이 인기를 끌자 허접한 유사 제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안도를 불러 “라면업계를 정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자신의 특허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업계를 정리합니다. 덕분에 다른 라멘 업체들도 발전할 수 있었고, 라면업계 전체가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파이를 독식하지 않고 키워서 나눠 먹겠다고 생각한 대인배였던 거죠. 그는 96세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50여년간 라면을 매일 먹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신라면 버스 광고

한국 라면은 고추의 얼큰한 매운맛과 소고기 국물의 진한 감칠맛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러한 한국적 라면이 탄생하게 된 데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도 한 몫 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간식으로 라면을 종종 끓여 먹었는데, 라면 회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라면 맛이 싱거우니 스프에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고 맵게 만들어달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까지 국내 라면을 일본처럼 담백한 또는 밋밋한 맛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입에는 덜 맞았던 거죠. 이후 매운 라면이 차츰 등장했고, 한국식 라면의 완성형이랄까 표준이랄 수 있는 신라면이 1986년 등장했죠.


한국인 입맛을 고스란히 살린 라면은 한식 세계화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조리하기 쉽고 저렴한 라면으로 한식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많죠. 신춘호 회장은 수출을 하면서도 현지인 취향에 맞춰 현지화하는 대신 ‘한국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로 가져간다’는 원칙을 고집했습니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을 만족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 것이죠.


여기에 고급 이미지도 더했습니다. 신라면은 미국에서 일본 라면보다 3~4배 비싸지만 월마트 등 미국 주요 유통채널뿐 아니라 정부 시설에까지 라면으로는 최초로 입점돼 판매되고 있습니다. 2018년 중국 인민일보는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신라면 블랙을 세계 최고 라면 1위로 뽑기도 했습니다.


고(故) 신춘호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라면과 한국 라면의 탄생·진화에 기여한 인물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봤습니다. 라면왕의 명복을 빕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21.04.10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