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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책상이 사람이다

by조선일보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건축가·교수 '3인3색 책상'

미니 정원 꾸미고, 亭子 만들어 책상 놓고… 숨 쉴 공간도 있어야죠

'제2의 내 방' 책상 꾸미는 데서 소소한 행복 얻는 데스크테리어族 늘어

先정리·後인테리어… 3월, 공부·업무 효율성 높이는 책상 정리부터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데 어디선가 시체 썩은 듯한 쿰쿰한 냄새가 났다. 수상한 냄새의 진원지를 따라가 보니 옆자리 선배가 먹다 내버려둔 커피가 썩어 걸쭉한 상태로 말라 있었다. 치우다 돌아가실 뻔."

 

"청순한 외모로 사내 남자 직원 여럿 울린 인기녀 A 대리. 뭇 남성들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의 책상에 애벌레 같은 게 있어 깜짝 놀라 자세히 봤더니 며칠째 안 버려 곰팡이까지 낀 육포였다!"

책상이 사람이다

집보다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들에게 사무실의 책상은 ‘제2의 내 방’이 된다. 제2의 내 방을 가꾸며 다시 시작하기 좋은 ‘3월’이다. 촬영 협조=마켓엠

"'책상 정리가 곧 일의 능률'이라며 말끝마다 '좀 치우지' 연발하시는 우리 부장님. 그런데 부장님 키보드엔 자판 사이마다 몇 년 묵은 허연 먼지가 덕지덕지. 키보드는 눌러지는지."

 

사내 익명 게시판,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장식한 웃지 못할 '책상 괴담'들이다. 툭하면 야근이다 보니 '책상귀신'(책상에 붙어 지내는 사람)의 주 무대 '책상'에 얽힌 괴담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

 

지난해 OECD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 연평균 노동 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35개국 가운데 둘째로 길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업 일수는 190일, 순 수업 시간은 656시간으로 OECD 평균치라지만 대입 수험생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하루 평균 11시간이나 된다. 여기에 각종 고시·취업 등을 준비하는 '고시생' '취준생'들까지 가세해 책상귀신들이 여기저기 출몰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몇 년 전엔 책상(desk)과 인테리어(interior)를 조합한 '데스크테리어(deskterior)'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어수선한 세상 속 아담한 책상에서라도 소소한 행복과 위안을 느껴보겠다며 책상을 꾸미는 '데스크테리어족'도 그새 많아졌다. 잡코리아가 지난달 직장인 788명을 대상으로 '데스크테리어족'에 관해 설문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3명이 책상 위를 꾸미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스크테리어를 하는 이유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서'(47.7%)가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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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테리어족들은 책상 한 쪽을 '제 2의 내 방'처럼 생각해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 소품, 장난감, 그림엽서 등을 장식해 자신만의 개성 있는 공간을 꾸민다. 이런 추세에 맞춰 '데스크테리어 소품'이 속속 출시되고, 온라인 몰에서는 관련 기획전도 열고 있다.

 

정리 전문가들은 '선(先)정리, 후(後)인테리어'를 강조한다. 책상은 결국 공부나 업무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정리부터 해야 한다는 것. 정리컨설턴트 레지나 리즈는 저서 '직장 생활 정리 플래너'(나무발전소)에서 "2월에는 책상 위 잡동사니를 버린 뒤 책상 위를 비우고, 3월에는 오래된 서류를 과감하게 버리고 서류 정리 시스템을 만들어 꿈을 키울 공간으로 만들라"고 했다. 레지나 리즈뿐만 아니라 다수의 자기계발서는 책상 정리가 성공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조언한다.

 

누군가에겐 밥벌이 공간, 누군가에겐 도전과 미래를 꿈꾸는 공간, 누군가에겐 아이디어를 얻는 공간이면서 유일하게 허락된 나만의 '한 평 공간'이기도 한 책상. 하지만 방치했다간 당신도 책상 괴담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바야흐로 책상 꾸미기 좋은 계절 3월, 책상을 삶의 중심점으로 삼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우리 시대 '프로'들의 책상을 살펴봤다. 업무·학습 능률 높이는 책상 정리 노하우는 덤이다.

 

책상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책장이 책 주인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라면, 책상은 책상 주인의 업무 스타일·취향·꿈을 엿볼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 건축가, 심리학자로 활약하는 전문가 3명의 삼인삼색(三人三色) 책상을 들여다보고, 나만의 책상 꾸미는 팁을 들었다.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 윤숙경의 ‘가든형 책상’

책상이 사람이다

탁상용 식물과 미네랄 광물이 놓여 있는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 윤숙경 베리띵즈 대표의 책상.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마블링 패턴이 들어간 고급스러운 느낌의 대리석 책상인가 했더니 “대리석 무늬 타일이에요. 인테리어 공사 하다 남은 걸 얹었죠” 한다. 자세히 보니 대리석 모양의 큼지막한 타일을 몇 개 얹은 형태. “대리석 타일은 대리석에 비하면 저렴해요. 나무나 플라스틱 책상 상판이 지겨울 때 위에 얹으면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식물 디자인 전문 회사 ‘베리띵즈’ 윤숙경 대표의 책상은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란 직함에 걸맞게 개성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대리석 문양 상판 위엔 애플 데스크톱이, 오른쪽엔 금색 필기구와 가위 등 디자인 문구가 가죽 케이스 안에 담겨 있다.

 

탁상시계나 캘린더가 있어야 할 자리엔 틸란드시아와 생화를 툭툭 잘라놓은 유리컵과 화분 안 흙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아크릴 큐비즘 화분이, 그 앞엔 아주말라카이트라는 신비로운 미네랄 광물 덩어리들이 차지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탁상에 ‘반려 식물’을 놓아 나만의 미니 가든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면 올해는 이렇게 미네랄 광물과 같은 색감이 신비롭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들을 곁들여 놓는 추세예요.” 심심한 모양의 화분 대신 삼각 또는 오각기둥 모양의 큐빅 화분을 1~2개 곁들여 생기를 줬다.

 

책상은 영감을 ‘회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땐 선 채로 책상 위 책과 사진을 휘리릭 넘겨본다. 그래서 널찍한 책상을 선호한다. “책상에 해가 잘 드는데, 굳이 시계를 보지 않고도 햇살만으로 시간을 가늠해 보는 게 참 좋아요.”

Tip. 책상 위 ‘나만의 정원’ 테라리엄 만들기

 

테라리엄(terrarium)은 유리 화병에 식물을 넣어 자신만의 초미니 정원을 가꿔보는 가드닝 방법. 투명 유리 화병에 흙, 색자갈, 이끼 등을 적당량 깔고 그 위에 선인장이나 다육식물을 심으면 된다. 여기에 좋아하는 작은 피규어를 곁들이면 아기자기한 맛을 더할 수 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기만 하면 돼 관리도 쉽다.

괴짜 건축가 문훈의 ‘작은 건축’이 된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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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물건들이 정확하게 4열에 맞춰져 있는 건축가 문훈의 책상.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건축가 문훈은 톡톡 튀는 건축 스타일로 괴짜 건축가로 통한다. 혼돈과 무질서가 공존할 것만 같지만 의외로 그의 책상은 ‘정갈’한 모습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 안 책상은 2개. 실내 한가운데 한국식 정자(亭子)를 콘셉트로 만든 공간 안 책상과 회의 테이블로 쓰는 책상이다.

 

“‘정자’ 안에 책상을 배치한 것은 일과 동시에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모든 게 저를 중심으로 손 닿기 쉽게 최적화돼 있습니다. 우주선 같지 않나요?”

 

그의 말대로 정자 안 책상에 앉은 그의 모습은 우주선을 조종하는 조종사 같다. 책상엔 데스크톱 2대와 스케치 노트가, 책상 주변으로 책과 좋아하는 소품이 병풍처럼 둘려 있다. 컴퓨터 화면을 모니터로 크게 보고 싶을 땐 정자에 설치한 스크린을 내린다. 4면을 모두 내리면 책상은 자신만의 휴식 공간이 된다. 업무를 위해 애용하는 공간은 사무실 중심에 있는 커다란 회의 테이블. 직사각형 형태의 나무 테이블 한쪽 면을 아예 그의 책상으로 쓴다.

 

책상 위 물건들은 각 잡은 듯 반듯하게 놓여 있다. “‘정리된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좋아해요. 책상에 놓인 것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좌우 대칭 구도예요. 배치도 기능적으로 해두었어요.” 위에서 내려다보면 총 4열로 정리돼 있다. 1열은 스케치 노트·수첩·필기구, 2열은 키보드와 계산기, 3열은 프로젝트 서류·영수증 파일, 4열은 건축 잡지가 놓여 있다. 스크린 리모컨, 클립 하나도 트레이에 담겨 있거나 열을 맞추고 있다.

 

“책상 위 모든 물건은 눈을 감고도 잡을 수 있도록 제자리가 있어요. 어쩌면 건축이라는 것 자체가 규칙을 찾고 균형을 맞추는 것인데 제 책상도 건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Tip. 문훈식 책상 활용 아이디어

 

1. 검정과 빨강을 좋아해 2가지 색상으로 통일했다. 책상 위 물건들을 좋아하는 색상 1~3가지로 통일하면 한결 깔끔해 보인다.

 

2. 책상에 이동식 ‘철판’을 설치했다. 식사할 시간이 없을 때 책상 앞으로 철판을 옮겨 그 위에 도시락을 놓고 먹는다.

 

3. 서류는 파일에 끼워 정리한다. 정리도 되고, 종이 한 장 때문에 아이디어가 유출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심리학자 곽금주 교수의 ‘피로 회복’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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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자석 보드에 명화 자석, 그림, 일러스트 등을 붙여놓은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의 책상.

“침대보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가 편해요. 해야 할 일을 못 했을 때 침대에 누우면 불안하잖아요. 책상에 앉았을 땐 그 불안감이 사라지죠.”

 

‘워커홀릭’으로 통하는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시간을 보낸다는 책상은 어떨까.

 

“이 정도면 역대 최고로 깨끗한 컨디션”이라는 책상 한쪽엔 각종 논문이 수두룩 쌓여 있었다. “평소엔 논문들이 책상에 쫙 펼쳐져 있어요. 정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리를 할 수 없는’ 책상이에요. 나만 아는 질서가 있어서 누가 치워주기라도 하면 되레 혼란에 빠지죠.”

 

책상의 화룡점정은 데스크톱 뒤편 벽면에 걸린 커다란 자석보드. 강의 시간표부터 해외 유명 맛집 명함, ‘Never ever give up’이란 문구가 쓰인 일러스트 프린트 등이 붙어 있다. 이것들을 고정하는 건 명화(名畵) 자석. 클림트의 ‘유디트’ ‘키스’, 모네의 ‘두 자매’, 한스 마카르트의 ‘오감’ 등 해외 학회 때 짬짬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러 기념으로 사 모은 자석이다.

 

“일하다 고개를 들어 명화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여행 갔을 때 생각도 새록새록 떠오르고요.” 곽 교수는 “오래 집중해서 생긴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환경을 ‘회복 환경’이라고 한다. 숲을 산책하거나 자연을 바라보는 게 가장 좋지만 여의치 않을 땐 책상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느끼는 것도 회복 환경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여러 가지가 붙어 있어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으나 성향의 차이란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지만 심리적으로 약간의 ‘방해’가 있을 때 그것을 이겨내려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집중력이 높아질 수 있어요. 공부하면서 음악 듣는 것, 혼자 있는 집보다 부스럭거리는 소음이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가 더 잘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저는 완벽하게 정리된 공간보다는 어질러진 환경에서 집중력이 높아지는 성향이고요.”

Tip. 곽금주식 ‘피로 회복 환경’ 책상 꾸미기

 

1. 좋아하는 그림이나 사진, 피규어, 꽃 등 자신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책상 잘 보이는 곳에 둔다.

 

2. 즐거운 한때를 추억할 수 있는 가족사진도 좋은 아이템.

 

3. 때론 음악이나 조명도 ‘회복 환경’이 될 수 있다.

책상이 사람이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책상에 힐링 요소들을 적당히 배치해 두었다. 왼쪽부터 윤숙경 베리띵즈 대표, 건축가 문훈, 곽금주 서울대 교수의 책상.

박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