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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The Table]

왜 모두 비우기만 하죠?

by조선일보

미니멀에 반기 들다… '이케아 코리아' 인테리어 디자인 총괄 안톤 허크비스트

 

한국 집 120곳 가본 안톤의 훈수

패브릭 얹은 소파소품 가득한 장식장…일단, 저질러 보세요

 

집이 너무 환하면 좁아 보여

여러개 조명으로 다양한 분위기 연출

 

'미니멀', 스웨덴에선 1990년대 유행

쿨하다고? 내 눈엔 차갑고 지루해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맞게 살기

스웨덴 '라곰'스타일에 도전을

왜 모두 비우기만 하죠?

외국 집이 아니다. 서울 한복판, 방배동 서래마을에 있는 안톤의 집 거실이다. 안톤은 “집은 곧 나”라며 지난 12년 간 시드니, 도쿄, 상하이, 서울을 거치며 모은 추억 깃든 소품들로 거실을 장식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요새 한국 집은 '비우기' 열풍이다. '미니멀 라이프'가 화두니 너도나도 덩그러니 비운 인테리어에 동참한다.

 

"비운다 쳐요. 그런데 모두 비우면 결국 똑같아지는 거 아닌가요. 개성은요? 집은 나예요. 똑같은 내가 여기저기 있다면 싫지 않나요?" 샛노란 머리칼 매만지며 반기(反旗) 휘날리는 이 스웨덴 남자. '인테리어족 성지' 된 이케아(IKEA) 광명점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안톤 허크비스트(48) 이케아(IKEA) 코리아 인테리어 디자인 총괄이다. 한국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반영해 광명점에 있는 64개 쇼룸을 꾸미는 게 안톤의 일이다. '미학적 에스페란토(만국 공통어)'(문화학자 안드레아스 베른하르트)라는 이케아의 명성에 걸맞게 광명점엔 개장 첫해인 2015년에만 650만명이 다녀갔다.

 

'이케아의 한국 방' 64개를 꾸민 인테리어의 신(神)이 사는 집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 안, 화보에서 쏙 튀어나온 듯한 그의 집을 찾아갔다.

왜 모두 비우기만 하죠?

① 안톤은 자칭 ‘패브릭 마니아’. 여러 가지 천을 침대 봉에 늘어뜨리고, 벽에도 붙여 침실을 연출했다. 도배보다 편하게 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다. ② 너른 업무용 책상 대신 좁은 폭 책상과 화려한 장식으로 꾸민 서재. ③ 안톤이 강조하는 인테리어 키워드는 ‘즐거움(Joy)’. 싱글이지만 손님방을 어린이방처럼 경쾌하게 꾸몄다. ④ 액자는 벽에 걸기보다 아래에 겹쳐 두고 기분에 따라 위치를 바꾼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현관 정면엔 빨강 2단 신발장이, 바닥엔 노랑 배경 아트 포스터가 놓여 있다. 물감 풀어놓은 듯 알록달록한 풍경은 거실로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 색색깔 패브릭으로 감싼 소파, 작은 소품 가득한 장식장, 치맛단처럼 길게 수 늘어뜨린 조명…. 시선 머무는 곳마다 감각 넘치고, 취향 한 아름이다.

 

안톤이 한국에 산 지는 3년 반. 이케아 광명점이 2014년 12월 문 열기 1년 전쯤 미리 와 서울과 광명에 있는 집 120군데를 돌며 한국 집을 연구했단다. 여느 한국 사람보다 한국 집을 더 많이 구경했다. 이쯤 되면 한국 집 전문가다. 그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식 인테리어에 질문 던지고, 한국식 빌라에 3년 반 살며 난제(難題)를 해결한 노하우를 들려줬다.

'TV 월' 없애고 소파 벽에서 떼어보라

안톤은 한국에 오기 전 12년간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호주 시드니 이케아의 인테리어 총괄이었다. 나머지 세 나라와 비교해서 한국은 '거실'을 유독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한국 거실에서 그가 당황한 것이 있었으니, TV 붙이는 용도로 쓰는 'TV 월'과 육중한 소파였다.

 

"거실이 좁다면서 한쪽 벽엔 TV 한 대 달랑 걸고 너른 벽을 휑하니 남겨둬요. 맞은편 벽엔 3m짜리 가죽 소파가 떡 하니 붙어 있죠. 집 크기에 비해 소파가 너무 커요. 그런데 종종 바닥에 앉아 TV를 보니 거금 들여 사놓은 소파는 등받이용이 돼버려요."

 

직접 고른 지금 집에도 대리석 TV 월이 있었다. 고심 끝에 내린 그의 해법.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원하는 크기로 프린트해주는 업체를 발견해, 스웨덴 화가 안데르스 소른의 그림을 대형 천에 프린트해 대리석을 덮었다. 그림 속 배경은 안톤의 고향인 순스발(Sundsvall)이다. 그 앞 노란 장식장 위에 TV 모니터를 올려 두고, 옆엔 벤치를 뒀다. TV만을 위한 벽이 새 삶을 얻었다.

 

"서양에선 거실이 주로 손님 접대 공간인데 한국에선 다목적 공간이더라고요. 부모님 오시면 주무시고, 아이들 놀고 숙제하는 공간! 하나같이 거실이 좁고 수납할 데가 없다고 불평하더군요. TV와 소파 사이는 휑하니 비워놓고선요." 안톤은 "소파를 집 크기에 맞춰 과감히 줄이고 벽에서 떼 소파 뒤를 활용해라"고 했다. 그렇게 생긴 소파와 벽 사이 공간에 수납함이나 책장을 두길 권했다. 안톤의 경우 낮은 장식장을 뒀다. 가죽보다 천 소파를 선택해 여러 가지 천을 돌아가면서 덮어보길 권했다. 소파 몸체에 맞춰 천을 딱 맞게 씌우는 게 아니라, 특별한 재봉 없이 천을 자연스럽게 덮는 방식이다.

밝은 조명 하나면 끝? 작은 조명 여러 개로 분위기를 바꿔라

왜 모두 비우기만 하죠?

안톤은 뉴욕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배우 생활을 했다. 배역을 연구한 경험이 한 사람의 삶을 상상하며 쇼룸을 꾸미는 데 도움이 된단다.

한국 집의 첫인상은 '동굴' 같았단다. 천장 낮고, 짙은 원목 가구가 많아서였다. 한국 아파트 천장 높이(2m30㎝ 정도)는 스웨덴 집 천장 높이(2m60㎝)보다 훨씬 낮았다. 안톤이 답답함을 해결하는 데 쓴 열쇠는 '조명'. "한국에선 환한 천장 조명만 쓰는데 너무 집이 환하면 좁고 차가워 보이죠. 펜던트·탁상 조명·플로어 조명·리딩(reading) 조명 등 여러 가지 조명을 쓰면 공간이 깊게 보여요. 시시각각 분위기(mood)도 달라지고." 한정된 공간을 풍요롭게 쓰는 노하우란다. 안톤은 방마다 10여 개의 크고 작은 조명을 둔다.

미니멀은 너무 차갑고 지루해… 스웨덴에선 철 지난 유행

요즘 우리 인테리어엔 '미니멀'이 대세다. 가구는 되도록 줄이고, 회색·흰색 등 간결한 무채색을 쓴다. "모든 게 한 세트 같은 스타일이죠. 튀는 것보단 조화를 중시하고. 제 눈엔 '쿨'을 넘어서 차갑고 지루해요. 스웨덴에선 1990년대 유행한 스타일이에요." 안톤이 고개를 저었다. 추억 묻은 물건, 안목으로 건져낸 소품 진열하는 소소한 재미가 삶의 기쁨 아닐까, 되묻는다.

 

문제는 청소 아닌가. 먼지 싫어 진열장 안으로 소품 밀어 넣는 게 한국 스타일이다. "스웨덴에서도 예전엔 '쓸고 닦기'가 유행이었어요. 저희 어머니는 하도 청소 많이 해서 '테니스 엘보'에 시달렸어요. 그런데 90년대 후반 스웨덴 과학자들이 너무 청결한 게 도리어 건강에 안 좋다고 하면서 인테리어도 바뀌었어요. 텅 비우기보다는 '적당히' 가구 두고 먼지 쌓이는 게 보이도록 하는 걸로요. 먼지도 삶의 일부로 보는 거죠."

 

집 구조상 한국 사람은 치우는 데 더 예민한 것 같단다. 서양 집이나 일본 집은 현관에서 거실이 바로 보이지 않는데, 한국 아파트는 대부분 현관문 열면 거실이 보인다. 집을 안 치우면 한눈에 '들통' 난다. "한국 사람들이 집으로 손님을 잘 초대하지 않더라고요. 집은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너무 깨끗한 집은 오히려 손님을 안절부절못하게 하지 않나요? (웃음)" 한·중·일 세 나라 모두 "어떤 게 예쁜 공간인가만 생각하지 어떤 공간을 사람이 편하게 느끼느냐는 잊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비싼 것과 싼 것 조화… 스웨덴식 '라곰' 스타일

안톤이 강조하는 인테리어 원칙이 있다. "덴마크식 삶의 방식 '휘게(Hygge)가 인기인데, '스웨덴식 삶의 방식'으로 '라곰(Lagom)'이 있어요.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맞게(just enough)' 살자는 의미예요. 집을 꾸밀 때도 그래요. 비싼 것 몇 개와 저렴한 걸 섞어 조화 이루는 게 중요해요." 비싼 핀란드 마리메코 제품과 저렴한 이케아 천을 색감이 어울리도록 나란히 벽에 붙인다. 욕실은 생화와 조화(造花)를 섞어 장식했다.

 

그러나 감각이 문제 아닌가. 섞는 것도, 모으는 것도 타고난 감 없이 어디 가능한가. "인터넷, 잡지, 신문 부지런히 보고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감각 기르는 '운동'을 해야 해요. 그래야 감각의 '잔 근육'이 생겨요." 안 어울리면 어쩌지 걱정할 필요 없단다. "스웨덴에선 부모들이 '누구나 하는 건 하지 마라'고 교육해요. 그 덕에 소비자로서 나만의 선택을 자신감 있게 하지요. 한국 사람들이 과감한 색을 인테리어에 안 쓰는 것도 남과 다른 선택을 하는 데 주저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안톤이 인테리어 담당 부서 직원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인테리어 계획에 시간 허비하지 말고 일단 시도해라. 안 어울리면 다시 하면 되니까. 안 하면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조차 알 수 없다."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물잔을 쏟았다. 당황하니 안톤이 눈 찡긋한다. "걱정 말아요. 방수되니까!" 가만 보니 테이블 덮개 끝에 봉을 꽂는 구멍이 보인다. 욕실에서 쓰는 샤워 커튼 무늬가 맘에 들어 테이블을 덮었단다. 머릿속 고정관념이 와장창 깨졌다.

안톤의 인테리어 팁! 벽에서 TV 떼고, 소파 뒤 공간을 활용… 거실이 넓어질걸요

벽에서 TV를 해방해라

왜 모두 비우기만 하죠?

대리석으로 된 ‘TV 월’을 스웨덴 화가 안데르스 소른의 그림을 대형 천에 프린트해 덮었다. 그림 속 풍경은 안톤의 고향 지역.

 

샤워 커튼을 테이블 덮개로

왜 모두 비우기만 하죠?

쓰임을 달리해 나만의 방식으로 쓰자. 호주에서 산 음식 그려진 샤워 커튼을 테이블 덮개로 썼다. 방수 코팅이 되니 닦기도 편하다.

 

소파 뒤를 띄워라

왜 모두 비우기만 하죠?

소파를 벽에 딱 붙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소파 뒤를 벽에서 띄워 배치하면 수납 공간, 장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쌓는 것도 인테리어

왜 모두 비우기만 하죠?

왼쪽은 책, 오른쪽은 패브릭을 쌓아둔 것이다. 패브릭을 감추기만 할 게 아니라 그 자체의 색감이 보일 수 있게 투명 장에 담았다.

 

한 카테고리 소품을 여러 개

왜 모두 비우기만 하죠?

쿠션도 소품도 하나보단 여러 개가 예쁘다. 덴마크산 진짜 달라하스트(말 모양 나무 인형)와 중국산 모조품을 섞어 진열했다.

 

김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