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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디테일 추적

‘4개월 무급’에 감정노동시키고, 90%를 해고한 직장이 있다면?

by조선일보

#1. 이런 회사가 있다. 정년은 보장되지 않지만, 누구나 다 아는 기업인데다 자랑할만한 연봉이라 ‘뽑힐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지원자들이 줄섰다. 이 회사는 최근 인턴 100명을 모집했다. 이 중에는 이미 어디엔가 입사했다가 사회의 쓴 맛을 본 중고 신입도 있고, 평생 한 번도 일자리를 가져보지 못한 사회 새내기도 있다. 이들은 약 4개월 간 무급으로 일하며 회사에 10년 이상 재직한 실무진에게 역량을 평가받는다. 두 달 뒤에는 이들 중 절반이, 한 달 뒤엔 그 절반이 탈락한다. 결국 뽑히는 건 10명 남짓이다.

 

#2. 회사 실무진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만, 최종 선발은 고객들이 한다. “너를 위해 일 할 사람을 직접 뽑으라”는 의도다. 하지만 고객들은 인턴 사원을 직접 만나볼 수 없다. 오직 실무진을 통해 받은 정보로 매주 투표해 1등부터 꼴찌까지 점수를 매긴다. 이 기록은 매주 전 사원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표된다. 인턴들의 단체복 앞자락에 이름표와 등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붙는다.

 

#3. 어떤 인턴이 있다. 그는 어느날 우연히 자신의 정보가 고객들에게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팀의 다른 인턴은 ‘실력도 좋고 인성도 뛰어나다’며 매주 A4용지 수십장 분량의 정보가 전달돼 평가 1,2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선 이름과 직무를 적은 한 두문장만 전달됐단다. 결국 퇴사조에 속한 그는 네 달간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졌지만 조용히 합숙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항의할 수 없다’는 조항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악덕 기업’으로 소문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 것이다. ‘인권 침해’,‘취업 갑질’ 등의 논란으로 결국 평가과정에 대한 전면 수정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4개월 무급’에 감정노동시키고, 9

/Mnet '프로듀스101' 캡쳐

Mnet의 ‘프로듀스101’ 이야기다. ‘프로듀스101’은 전국의 평범한 시청자들이 ‘국민 프로듀서’가 되어 101명의 연습생 중 최종 11명을 뽑아 아이돌 가수로 데뷔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누적 투표수는 5500만표를 넘어서 역대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 수 신기록을 세웠다. 마지막 평가를 받을 20명 멤버를 선발한 지난 9일 방송에서는 최고시청률 4.4%로 두 시즌을 통틀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과거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당장 데뷔 가능한 ‘프로 같은 아마추어’의 무대였다면, ‘프로듀스101’은 ‘숨은 떡잎’에 표를 던지는 프로그램이다. 당장 실력이 부족해도 포기하지 않고 매 회 발전하는 모습이면 충분하다. 연습은 어떻게 하는지, 친구 관계는 어떤지, 연습생 개개인의 ‘스토리’에 집중한다. 그러나 수십명에 달하는 연습생의 수 일간 이어진 연습 과정이 매주 2시간으로 요약될 수는 없다. 결국 ‘어떤 모습’을 선택해서 ‘어떻게’ 내보낼지의 문제다.

 

그 결정은 온전히 PD의 몫이다. 연습생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방송 분량’은 논란의 핵심이다. 101명의 연습생 중에는 전체 회차를 통틀어 분량이 5분도 안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어떤 연습생은 매 회 3분 이상씩 얼굴을 비춘다. '악마의 편집'도 문제다. 잠깐 스치는 표정, 말 한마디로 인성에 문제가 있다”, “열정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잠시 쉬는 모습을 두고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는 OOO연습생…’이란 자막이 붙어도 어쩔 수 없다.

 

반면 어떤 연습생은 방송 1회로 순위가 25위에서 3위로 뛰어 올랐다. “제가 해보겠다”며 손 들고 나선 연습생에게 “너는 100% 잘 될거야”라고 칭찬한 댄스 강사의 모습이 방송된 직후다. 마치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은 제작진의 의도대로 결정된다. 2시간 분량의 잘 짜여진 드라마를 보고 인기 투표를 하는 셈이다. 긍정적인 분량이 많은 연습생들에 ‘PD의 선택을 받았다’는 뜻의 ‘PD 픽(pick)’ 이라는 별명이 붙는 이유다.

 

그동안 이들의 대사는 점점 간절해진다. 최선을 다해 무대를 펼치고도 머리를 싸매며 “국민프로듀서님 너무 못했어요 죄송해요(배진영 연습생·7화)”라고 자책하는가 하면 마이크를 쥔 손을 덜덜 떨며 시청자들을 향해 “저희 다 한 번만 살려주세요(주학년 연습생·9화)”라고 빌기도 한다. 사실 이들이 ‘살려달라’고 비는 건, 시청자가 아니라 담당 PD와 제작진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한동철 PD는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상대적으로 대형 기획사 출신이 중소형 기획사 출신들보다 유리할 수 있지만 이것을 이겨야 이겨내는 것이다. 출발점이 다른 것도 인정해야된다.” “경쟁에서 이긴 친구가 방송에 많이 나가는 것이 그렇게 불공정한 경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같은 말을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상대적으로 부자 부모를 가진 지원자가 가난한 부모를 가진 지원자보다 유리할 수 있지만 이것을 이겨내야 한다”, “출발점이 다른 것도 인정해야된다”, “이 경쟁에서 이긴 친구의 정보가 많이 전달되는 것이 그렇게 불공정한 경쟁은 아니다”.

 

‘경쟁’의 틀을 제작진이 짜고, 경쟁에서의 ‘성취’를 방송사측이 선별해 보여줌으로써, ‘국민프로듀서’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손님 먹고 싶은대로, 드시라’ 하지만, 기본 상차림과 반찬의 배열자체가 ‘그들 취향’,‘그들의 전략’ 대로라면, ‘손님’의 자율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프로듀스101은 오는 16일 최종 멤버를 뽑는 마지막 한 회만 남겨두고 있다. 일주일간의 온라인 투표 결과와 생방송 문자 투표를 합산해 최종 데뷔조인 11명 멤버가 결정된다. 이들은 ‘국민프로듀서’ 선택의 결과물일까. ‘담당프로듀서’의 결과물일까

 

손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