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품절입니다” 미디어 속 탈꼰대 모먼트

[라이프]by 시티라이프

‘라떼 이즈 홀스 Latte is horse’라는 말은 기성세대가 찬란했던 본인의 과거를 그리는 잔소리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유행어다. 최근 ‘라떼’가 절로 ‘꼰대’라는 이미지를 연상시키곤 하지만, 무조건 선배 세대라고 해서, 또는 옛날을 그리워한다고 해서 꼰대로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최근 젊은 세대보다도 트렌디한 모습으로 화제가 된 이들이 있다. 탈꼰대를 꿈꾸는 이들이 보고 배울 만한 그들의 애티튜드를 살펴보자.

▶“윤며들었다”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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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온 것처럼 선이 딱 분명해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진 꼰대, 여기까진 꼰대 아닌 사람, 이렇진 아니잖아요. 사람이기도 하니까, 어떨 때는 꼰대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나이 먹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겠죠.”

“‌인생이 계획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나도 존경받고 편안하고 인내심 많은 선배가 되고 싶겠죠. 근데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 나는 그냥 나대로 살다가, 느끼는 건 후배들의 몫이죠. 그거까진 강요할 순 없어요. 지도 편달은 안 하고 같이 놀고 싶어요.”(-Jtbc ‘비정상회담’ 中) 

☞ 윤여정은 스스로를 ‘옛날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꼰대라고 평했지만, 우리는 그녀를 꼰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일까. 대개는 우리가 보고 듣고 겪어온 ‘꼰대’란, 자신이 꼰대인지 모르고 타인을 향한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까칠 언니’라는 이미지에 대해서 ‘날더러 까칠하다고 그래서 까칠한가 보다 그러고 있죠, 뭐’라고 쿨하게 대답하고,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수용하는 윤여정의 모습에선 꼰대보다는 으레 사이다 같은 면모가 부각되기 마련이다.

“‌60이 돼도 인생을 몰라요.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내가 알았으면 이렇게 안 하지. 처음 살아보는 거기 때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계획을 할 수가 없어. 그냥 사는 거야. 그나마 하는 거는 하나씩 내려놓는 것,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는 것.”(-tvN ‘꽃보다 누나’ 中)

“생계형 배우니까, 쉴 때 쉬고 골라서 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날이 65~70세에 온 거 같아. 그게 내 사치에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할 수 있고, ‘돈 못 준다’ 그러는데,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도 그냥 내가 좋아서 했고. 그런 게 사치죠.”(-스브스뉴스 유튜브 콘텐츠 ‘문명특급’ 中) 

☞ ‘윗사람’, ‘아랫사람’이란 단어에서 우리는 보통 상하적인 관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쉬이 실천하지 못하는) 이성적인 관계는 윗사람이 나이나 권위로 아랫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먼저 경험해보고 걸어온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이정표 같은 역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길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누구나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여정은 ‘정답’ 대신 인생을 먼저 경험한 끝에 얻은 공감 어린 조언을 건넨다. 한발 더 나아가 뒤 따라오는 이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여유는 덤이다. 우리는 그를 보며 깨닫는다. ‘존경’이란 요구하는 것이 아닌,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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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속 윤여정(사진 판씨네마), 배우 윤여정 (사진 오스카 홈페이지), (사진 tvN '꽃보다 누나'), (사진 Jtbc '비정상회담' 갈무리)

(외국인 손님이 “오징어 먹물을 먹어요? 혹시 오늘 밤 저희 독살하시려는 건 아니죠?”라고 농담으로 묻자) “오늘은 아니에요. 내일이나. 체크아웃 후에는 장담 못 하고.”(-tvN ‘윤스테이’ 中)

“‌모든 상은 의미가 있지만, 이번 상은 고상한 체하는(snobbish)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소감 中)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고 제 이름은 윤여정입니다. 유럽인들 대부분은 저를 ‘여영’이나 또는 ‘유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오늘밤만큼은 여러분 모두를 용서하겠어요.”(-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소감 中)

☞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미국배우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에서도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특히 해외 굴지의 영화 시상식에서 그녀의 위트 있는 인터뷰들 또한 화제가 됐다. 이는 그녀가 과거 13년간 미국 생활을 해왔기 때문도 있지만, 완벽한 문법 대신 타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겸손하면서도 여유로운 태도에서 나온 소감이라 듣는 이들에게 더욱 와닿았다는 평이다. 특히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으로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한다고 말한 장면은, ‘한국의 메릴 스트립’, ‘K-할머니’ 등 각종 수식어가 아닌 오직 윤여정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알리기 충분했다.

“‌서진이가 메뉴를 추가하자고 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센스가 있으니 들어야죠.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이 있잖아요.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어요.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니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되죠.”

“나는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어서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는 전문가와 젊은 사람들의 말도 들어요. (…) 난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요.”(-tvN ‘윤식당 시즌1’ 인터뷰 中) 

☞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은 윤여정을 필두로 톱 배우들이 해외에서 한식당을 차리고 가게를 운영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시즌1에서는 인도네시아 해변에서 가게를 오픈해 사장을 윤여정, 배우 신구가 서빙 아르바이트생을 맡아 60~70대 대표적인 ‘선생님’급 배우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줬던 바. 특히 시청자들이 가장 선호한 부분은 두 배우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새로운 것은 배우고, 후배들의 얘기에 귀를 열고, 칭찬과 고마움은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서진의 태도 역시 주목해볼 만하다.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되 상대를 배려하고 선을 지키는 모습에서 불편함 대신 유쾌함을 선사했다. 아마 윤여정이 말하는 ‘세대 간 소통’이 이런 것은 아닐까.

▶‘놀면 뭐하니?’ MSG워너비 별루-지(지석진)&김정수(김정민)

“‌내가 팔짱을 꼈네요?” “나를 묶어! 묶어놔요, 그냥” “협조할 마음이 100%입니다.” 

☞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야호(유재석)가 제작 중인 남성 보컬 그룹 MSG워너비. 지난 방송에선 Top8 멤버들이 두 팀으로 나눠 4:4 경연을 펼치며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맏형인 별루지(지석진)와, 김정수(김정민)의 모습은 주목해볼 부분. 각각 55, 52세인 두 사람은 MSG워너비에 선발돼, 20대 멤버인 이상이, 원슈타인, 박재정과 한 그룹에 속하며 예상치 못한 케미스트리를 선보이고 있다.


팀 결성 전, 유야호는 지석진과 ‘시무 20조’를 정하기도 했는데, 세부 내용으로는 ‘실망한 기색 역력히 드러내지 않기’ ‘쓸데 없이 재산 공개하거나 부동산 얘기하지 않기’ ‘가수 출신인 거 어필하지 않기’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짝다리 짚지 않기’ 등이 포함돼 있었다. 요컨대 멤버 간 세대 차이를 줄이기 위해 맏형의 ‘라떼’를 사전에 방지한 것. 이에 지석진은 다소 억울해 하면서도 뭐든 수용하겠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해 짠내나는(?) 그룹 생활을 예고했다. 더불어 ‘내가 지석진님 노래 들으러 매일 (유튜브 영상을 보러) 올 줄이야’라는 시청자의 댓글을 보고 행복해 한다는 별루지를 위해 네티즌들이 적극적으로 응원 댓글을 다는 등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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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진(사진 MBC ‘놀면 뭐하니’ 화면 갈무리), 김정민(사진 MBC ‘놀면 뭐하니’ 화면 갈무리)

“‌저는 연습하는 과정에서 한번도 제가 뭘 주장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면, 이분들은 가수 활동을 하면서 쭉 걸어온 길이 있잖아요. 거의 30년 전에 데모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면서 가수 준비해서 가수가 됐는데, 노래를 놨다가 대단한 가수들과 입을 맞춘다는 게, 저는 영광이잖아요.”(지석진) 

☞ MC이자 방송인으로, 또 최근에는 각종 SNS를 활용하며 재치 있는 아이디어 영상을 선보이거나, 젊은 세대들과 꾸준히 소통해 ‘인싸 아저씨’로 화제가 된 지석진. 그런 그가 가수와 노래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몇십 년 만에 도전에 나섰다. 특히 그는 노래 연습 과정에서 팀 리더인 KCM의 말에 힘을 받쳐주고, 막내 라인인 원슈타인, 박재정에게 끊임없이 칭찬을 하거나, 새로운 도전에 설레는 모습을 보여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렇게 맏형 지석진을 비롯해 8명의 멤버는 순위나 서열 대신 음악적인 조합과 행보를 보여주었고,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의견이 더해져 보컬 그룹 ‘MSG워너비’를 완성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너희가 딱 밥상 차려놓고 숟가락만 얹었는데, 한 20년 만에 내 목소리를 다시 귀 기울여 주시더라고. 내가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너희들이야.”(김정민) 

☞ MSG워너비 경합전에서 한 팀을 이룬 김정민, 사이먼 도미닉, 이동휘, 이상이 네 사람은 연습 기간은 물론, 평상시에도 ‘단톡방’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며 팀으로서 화합을 다져갔다. 팀 경합 무대를 마친 뒤 “어렸을 때 ‘가요톱10’에서 보다가, 같이 노래했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이먼 도미닉의 말에, 김정민은 오히려 무대에 대한 공을 후배들에게 건넸다. 더불어 카리스마 록커의 모습 뒤로 ‘(단톡방)메시지를 받으면 뭉클뭉클하다’는 감성적인 모습과, 8명의 합격이 결정된 이후 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손길로 축하를 건네는 김정민을 본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한 시대의 탑이었고, 여전히 멋있다’ ‘노래 앞에 겸손해하는 모습이 감동이다’ ‘2021년도 치트키’ 등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것.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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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경(사진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갈무리), 홍진경(사진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갈무리)

“‌내가 수학을 못 푸니까 수학 시간이 괴로운 거야. 날 시킬까 봐. 못 알아 듣는 거 얼마나 고통이야 못 푸는데. 최소한 내 새끼가 그런 ‘나는 못해 어차피 못 해’ 이런 생각, 그리고 그렇게 자신감 떨어져서 못난 소리 하는 것만 안 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절대 1, 2등 안 바래.” 

☞ “드디어 제가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습니다. 배움의 때를 놓쳐… 지식을 향한 타는 목마름으로 나이 마흔다섯에 공부 콘텐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 진지합니다. 한번만 도와주세요 여러분….” 1993년, 10대 고등학생 신분으로 슈퍼모델로 데뷔한 홍진경. 성공한 방송인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그녀가 다시금 펜과 교과서를 들었다. 딸에게 재미있는 공부법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학업에 나선 것. 영어, 수학, 역사 공부까지 교과목을 가리지 않고, 홍진경이 직접 다양한 공부법을 배우며 원리를 깨우쳐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묘한 희열과 동질감을 느낀다. 특히 공부를 계속 미루거나, 공부에 앞서 책상 정리부터 하다가 문구점을 찾고 급기야 서울대학교까지 찾아가는 ‘공부 준비’ 에피소드는 더욱 공감을 자아내는 부분. ‘학창 시절’ 하면 공부하라고 힘들게 잔소리하시던 부모님의 모습 대신, 하나의 놀이로써 웃으며 배울 수 있는 공부 채널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게 된다.


(구독자 1000만 명 vs 라엘이 서울대와 탄탄대로 인생 중에서 고르라면?) “나 이 와중에 못 고르겠어, 나 너무 힘들어!(웃음)”


☞ 홍진경에겐 그녀의 딸 라엘이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그녀는 “(문제를 푸는 것에 있어서) 못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때 포기하는 대신, 틀려도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딸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 때문에 홍진경 스스로도 공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더 쉬운 공부 방법을 찾기 위해 꾸준히 문제를 풀어나간다. 물론 라엘의 학업 성취도와는 별개로, 시청자들 사이에선 ‘홍진경 심은 데 홍진경 난다’는 반응을 통해 유쾌한 웃음 또한 재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글 이승연 기자 사진 매경DB, tvN, MBC, 오스카 홈페이지, Jtbc, 판씨네마,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화면 갈무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84호 (21.06.22) 기사입니다]

2021.07.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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