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사생팬 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컬처]by 데일리
아이돌 사생팬 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사진: tvN '응답하라 1997'

살면서 단 한 번도 연예인을 좋아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까? 아주 드물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삶의 중심은 아이돌 그룹이었다. 하루 종일 오빠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스케줄을 줄줄이 꿰고 있는 것은 기본, 오빠들이 출연한 방송은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봤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든가 오빠들이 유난히 재치 있는 입담을 가진 것도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바라만 봐도 좋다는 게 이런 건가.

 

열심히 팬질을 하던 당시에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류가 있었다. 바로 사생팬이다. 오빠들을 사랑하는 만큼 오빠들의 자유를 존중해야지, 왜 그렇게 숙소 앞에서 밤을 새우고, 늦은 새벽 택시를 탄 채 오빠들의 밴을 졸졸 쫓아다니는지. 그들의 어긋난 팬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종종 사생팬들이 "오빠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줬다", "오빠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라고 말할 때마다 어린 마음에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편법을 쓰지 않는 성숙한 팬이 되어 먼발치에서 오빠들을 항상 응원하겠노라 다짐했다. 그 마음은 오빠가 9시 뉴스에서 사건사고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와장창 깨져버렸지만.

아이돌 사생팬 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사진: tvN '응답하라 1997'

연예인을 좋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연예인을 좋아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사생팬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사생팬이란 특정 인기 연예인의 사생활 및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내기 위해 밤낮으로 연예인의 뒤를 쫓아다니는 극성팬을 지칭한다. 심지어 이들의 발이 되어 연예인의 차량을 쫓아가는 '사생택시'도 있다. 잘못된 팬 문화를 돈벌이에 악용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연예인들이 유명세로 먹고사는 직업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 물론 연예인들이 팬들의 사랑과 사람들의 관심을 바탕으로 유명세를 얻고, 일반인들의 월급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사생활 침해까지 감내하는 것이 과연 응당한 일일까. 만약 당신이 유명 연예인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연락을 주고받는지 팬들이 모두 알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심지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집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을 발견했다면, 그래도 "연예인이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사생팬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세대 아이돌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유난스러운 극성팬들의 악행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몇몇 아이돌들은 사생팬의 도 넘은 행위를 지적하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렇다면 사생팬들의 잘못된 표현 방법은 어떤 것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사생팬들의 도 넘은 행동

아이돌 사생팬 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사진: 토니 안 인스타그램

몇 년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돌 그룹 멤버의 개인 정보가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안겼다. 집 앞에서 밤새 기다리고, 하루 종일 스케줄을 따라다니는 것도 모자라 연예인의 주민등록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비롯한 개인 정보를 일정 금액에 거래하고 있던 것이다.

 

1세대 아이돌 그룹 H.O.T.의 멤버 토니 안은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팬에게 받은) 가장 충격적인 선물은 착용했던 속옷"이라고 말했다. 한 사생팬이 착용했던 속옷을 빨지 않은 채 간직해달라며 토니 안에게 보낸 것. 또한 그는 Mnet <비틀즈 코드2>에 출연해 "H.O.T. 숙소 생활 시절, 팬들이 현관문 렌즈를 깨고 목욕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어느 날 렌즈를 통해 밖을 보는데 투명해야 할 렌즈가 까맣더라"라며 "알고 보니 숙소 안을 보고 있는 팬의 눈동자였던 것"이라고 말해 출연진을 경악하게 했다.

아이돌 사생팬 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사진: 김재중 인스타그램

사생팬이 많기로 유명한 그룹 JYJ는 기자회견에서 사생팬의 악행을 낱낱이 밝혔다. 멤버 김준수는 "스타로서 감내해야 할 고통이라 생각하며 참아왔지만 우리의 신분증을 이용해 (복제 폰을 만들어) 통화 기록이 모두 노출되고, 자동차에 GPS를 장착해 계속 쫓아다니고, 빈번히 (집에) 무단 침입해 개인 물건들을 촬영하고, 자고 있는 내게 키스를 시도했으며, 내 얼굴을 보기 위해 일부러 택시로 접촉사고를 냈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박유천은 "누군가 매시간 나를 감시하는 것은 마치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다"라고 전했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JYJ 사생팬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모아 놓은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당 글에는 '생리혈 모아서 오빠들에게 선물하기', '멤버 가방 속에 속옷 넣기' 등 엽기적인 행각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신인 아이돌 그룹 워너원도 사생팬의 악행으로 고통받고 있다. 워너원 소속사 YMC엔터테인먼트가 밝힌 사생팬들의 만행은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멤버들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수차례 전화하는 것은 물론, 일부 멤버의 비공개 스케줄까지 따라다니고 있다. 특히 자동차에 GPS를 달아 멤버들의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공포감까지 조성하고 있다. 또한 소속사 직원에게 멤버들의 안위를 빌미로 협박 및 허위사실을 전달하는 등의 일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워너원 멤버 라이관린은 Mnet <스타라이브> 대기실에서 촬영용 마이크 전원이 켜진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집에 찾아오는 사생팬의 차량 번호를 외치며 "우리 집 밑에 그만 와, 밑에서 뭐 해?"라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다.

아이돌 사생팬 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사진: 워너원 인스타그램

사생팬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

아이돌 사생팬 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사진: JTBC '연예특종'

대체 사생팬들은 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사생팬들의 만행을 그저 '오빠들에 대한 사랑을 어긋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도 사생팬을 꺼려 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반 팬들은 사생팬을 범죄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생팬은 그러한 시선을 "부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일반 팬들이 사생팬들을 질투하고 시기해서 싫어하는 것일까.

 

사생팬들의 도 넘은 행동은 과시욕과 애정결핍에 기인한다. 연예인의 머릿속에 자신을 '수많은 팬들 중 하나'가 아닌 '특별한 존재'로 각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연예인의 기억 한 편에 어떻게든 남기 위해 튀는 행동을 한다. 설령 그것이 부정적인 기억일지라도 말이다. 수만 명의 팬들 중에서 연예인이 나를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내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널 챙겨 주겠니?'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행동을 사랑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연예인이 더욱 빛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연예인에게 애정을 쏟은 만큼, 그에 맞는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보상심리를 가지고 있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 사랑과 관심을 투자했으니 네가 어디서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연락하는지 등 너의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는 그런(일반 팬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애정결핍형 사생팬들의 잘못된 사랑 표현은 연예인들로 하여금 불쾌함을 느끼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예인들은 사생팬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소유욕과 집착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결국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더 성숙한 팬 문화가 조성되어야

아이돌 사생팬 문화, 이대로 괜찮을까

사랑은 '얼마큼' 사랑하는지 보다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애정의 크기가 크다고 해도 매일같이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싶어 한다면, 부담을 느낀 상대방은 결국 이별을 고할 것이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팬심이라고 포장해도, 그들의 사생활까지 위협하는 행동들은 애정이 아닌 범죄다. 일반 팬들은 사생팬을 '관음증 환자' 혹은 '스토커'라고 지칭한다. 연예인의 집에 몰래 침입하고, 그들의 모든 생활을 감시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상품이 아니다.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팬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고, 사람이기 때문에 안전 등의 이유로 팬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누군가가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정말 연예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응원한다면, 조금 더 가까이에서 그들을 보고 싶어 하는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충족시키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그들을 응원하는 성숙한 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 : 안혜선 press@daily.co.kr

2018.04.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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