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향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자유의 상징, 위험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모터사이클. 역사부터 종류, 그리고 안전하게 즐기는 법까지 — 진짜 라이더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알면 알수록 애정은 깊어지는 법. 나만의 애마를 찾기 전에, 모터사이클에 대해 알고 가자.
1970년대 핀란드의 전설적 모터사이클 레이서 야르노 사리넨의 레이싱 © alamy |
모터사이클의 길고 긴 역사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등재된 ‘오토바이’라는 단어는 일제의 잔재다. 그러므로 ‘모터사이클’이라 지칭하는 것이 옳다.
모터사이클의 역사는 유럽에서 시작된다. 1884년 무렵 영국에서 만들어진 엔진 달린 자전거가 모터사이클의 시초다. 제1차 산업혁명 이후 귀족이나 타고 다니는 매우 고가의 물건이었다. 이때 돈 많은 집 자제들이 카페에서 눈이 맞으면 다른 카페까지 경주를 벌였다고 해서 ‘카페레이서’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당시 노턴(Norton), 트라이엄프(Triumph) 등이 가장 고품 질 모터사이클로 꼽혔다.
중년 남성의 로망으로 유독 한국에서만 비정상적으로 인기가 있는 모터사이클이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이다. 1903년 할리와 데이비슨이라는 두 창업주 일가가 만든 모터사이클 기업인데, 문제는 품질로만 따지면 당시에도 정말 형편없었다. 할리데이비슨은 툭하면 고장 나고, 진동이 너무 심한 탓에 나사가 빠져 오일이 줄줄 흐르기까지 했다.
할리데이비슨으로 루트66을 횡단한 라이더를 정비사로 인정해야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오히려 현재 국내에도 유통되는 인디언(Indian)이라는 브랜드가 미국 모터사이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 오너들은 철학이나 감성 등을 매력으로 꼽는데, 특유의 ‘고동감(엔진의 진동을 체감하는 기분 좋은 감각)’을 빼면 공학적으로 할리데이비슨은 뛰어난 모터사이클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이 고동감이 남자들의 혼을 뺀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할리데이비슨 스포스터 883R 오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납한 할리데이비슨 © alamy |
할리데이비슨은 부도로 한 번 망했다가 부활했다. 그 사이에 일본 모터사이클 브랜드가 성장해 좋은 제품을 내놓았다. 일본 모터사이클은 영국 것을 복제하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일본 모터사이클은 점점 영국 모터사이클 기업의 시장을 잠식해 갔다. 이런 성장세로 1970~1980년대 일본은 전 세계 모터사이클 시장을 확고히 장악했다.
BMW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모터사이클을 만드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클래식을 지향하는 할리데이비슨과는 달리 첨단 전자장치로 무장하고 본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BMW 자동차의 명성에 힘입어 최고급 브랜드로 자리 매김했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지나치게 높은 국내 출시 가격과 수준 이하의 A/S 정책으로 오너들 사이에 원성이 높다.
운송수단의 역사를 바꾼 슈퍼커브
1958년 일본 모빌리티 기업 혼다(Honda)에서 C100이 개발됐다. 혼다의 스테디셀러 슈퍼커브(Super Cub)의 모태로, 흔히 스쿠터로 대표되는 언더본 모델의 시조 격이다. 30년 전 배달 문화가 막 발전하던 시기, 대중이 추억하는 DH88, CITI100 등의 모터사이클 역시 슈퍼커브가 원조다.
1958년 출시된 슈퍼커브 C100 © Honda |
지금은 흔히 접할 수 있는 기종이지만 이 모델은 전 세계 교통 문화를 바꿨다고 할 만큼 혁명과도 같은 모터사이클이었다. 어마어마한 내구성과 효율 높은 연비, 정비하기 쉬운 단순한 구조인 데다 뭐니 뭐니 해도 값이 저렴했다. 당시 출시하던 영국제 500cc 모터사이클은 웬만한 부유층이 아니고는 꿈도 못 꿀 정도로 비쌌다. 그런데 슈퍼커브 출시 이후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운송수단이 등장한 것이다.
3층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엔진오일 대신 식용유를 넣어도 시동이 걸릴 만큼 압도적인 내구성을 자랑하며, 원심 클러치가 적용된 반자동 기어로 언덕길에서도 힘차게 오를 수 있다. 1L만 주유해도 45km는 너끈히 달릴 정도로 연비가 우수하고, 가격까지 저렴하다. 인기가 없는 게 이상하리 만치 제품력이 뛰어났다. 언더본 모델은 주로 짐을 싣고 나르는 배달용, 상업용으로 주로 사용되었는데,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며 2030세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가지각색 매력, 모터사이클의 종류
원래 모터사이클은 자전거(사이클)에 엔진(모터)을 달아 만든 물건이다. 그 지점에서 출발해 지형과 환경에 맞게 진화한 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환경을 기준으로 굵직하게 구분하자면, 산악 등 거친 노면에서 탈 수 있는 오프로드(Off-Road)와 포장도로에서 탈 수 있는 온로드(On-Road)로 구분한다.
두 카테고리만 해도 다양한 모터사이클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모터사이클 세 가지를 소개한다.
스포츠 바이크(Sport Bike)
두가티의 스포츠 바이크 파니갈레 V4S © Ducati |
높은 속도와 기술력이 강점인 모터사이클로, 레플리카(Replica)라고도 부른다. 레플리카는 ‘복제품’이라는 뜻이다. 온로드 레이스 머신을 도로 주행에 맞게 복제했다는 뜻이다. 레플리카는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전면부에 큰 방풍 커버를 장착한 것이 특징이다. 엔진도 최대한 가볍고 높은 출력을 내도록 설계했다. 대부분 모터사이클 브랜드에서는 레플리카 제품에 기업의 첨단 기술을 집중해 생산한다.
시속 200km 이상의 고속 주행에서는 공기저항 여부가 관건이다. 레플리카 라이더의 운전 자세가 낮은 이유다. 이는 속도 측면에선 장점이지만 장거리 도심 주행에서는 오히려 피로감의 원인이 된다. 최근에는 도심지에서도 운전 자세가 편하고 편리성을 강조한 포사이트(Foresight) 계열 모터사이클도 많이 생산된다.
레플리카와 포사이트는 각각 첫 알파벳을 따 ‘R차’, ‘F차’라고도 부른다. 필자 역시 30대까지는 레플리카를 즐겼지만 50대에 접어들면서 목, 허리, 어깨 등 신체의 피로감 때문에 멀리한다.
듀얼퍼포즈(Dual Purpose)
BMW의 듀얼퍼포즈 R 1300 GS 어드벤처 © BMW Motorrad |
온로드와 오프로드 구분 없이 달릴 수 있는 겸용 모터사이클이다. 초장거리 여행 시 노면의 불규칙성과 온·오프로드의 혼합 주행을 위해 출시됐다. 어떤 길이라도 주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델이라는 의미지만, 70% 이상은 온로드 주행을 고려한 설계다.
듀얼퍼포즈 모델 엔진은 대부분 강력한 최대출력보다는 내구성과 편하고 일정한 출력 상승을 위주로 설계된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하며, 먼지와 악천후에도 장거리 주행을 지속하기 위해서다. 장거리 주행을 위해 시트 높이가 약간 높고 라이딩 자세 자체도 높다. 타이어도 온로드 전용과 오프로드 전용을 혼합한 제품을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듀얼퍼포즈 카테고리의 라이더층이 적고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공사 구간, 언덕길, 과속방지턱 등이 많은 국내 도로에 가장 적합한 모터사이클이라고 생각한다.
크루저(Cruiser)
할리데이비슨의 크루저 스트리트 글라이드 © Harley Davidson |
높은 핸들과 낮은 시트로 대표되는 모터사이클로, ‘아메리칸(American)’이라고도 부른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할리데이비슨과 인디안이다. 대부분 300kg이 넘는 고중량으로 연비가 좋지 않고 배기량에 비해 출력도 낮은 편이다. 그러나 강력한 토크, 모터사이클의 원초적 디자인을 표방해 마니아층이 탄탄하다. 그나마 기계식 카뷰레터 방식에서 전자식 인젝션 방식으로 바뀌며 과거에 비해 연비가 상당히 좋아졌다.
크루저는 장거리 여행을 위해 출시된 모델로, 장거리 직선 주로를 달리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그 때문에 주행 안정감이 우수하고 피로감이 적지만, 높은 속도를 내거나 험로를 달리기엔 부적합하다.
크루저이면서 스포츠성을 강조한 모델도 있지만 프레임이나 서스펜션, 브레이크 등이 본격적인 스포츠 모델에 비해 명확한 한계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만세’ 자세로 핸들을 장착하는 장르는 크루저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직선 주로만 세 시간씩 달려야 하기 때문에 어깨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4인치 정도로 핸들 길이를 늘려 튜닝하기도 했다.
그러다 당시 미국 갱단들이 위협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핸들 길이를 점점 길게 하다 보니, 만세를 하듯 우스꽝스러운 라이딩 자세가 나오게 된 것이다. 참고로 핸들이 높으면 장거리 라이딩에선 어느 정도 피로도를 줄여 주지만, 과하면 안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터사이클은 복어다
복어는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좋은 생선이다. 하지만 1g만 먹어도 사망에 이를 정도로 인체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모터사이클을 복어에 비유한 이유다. 모터사이클은 오롯이 모터사이클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과 자유를 선사한다. 그러나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기도 하다. 바퀴가 두 개뿐이라는 것, 또 신체를 보호하는 어떠한 장치도 없다는 것.
대한민국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다. 하지만 모터사이클 안전 문화는 여전히 후진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와 동시에, 대중의 인식이 모터사이클을 여전히 ‘무조건 위험하다’고 인식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륜차 안전교육 개선 등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부적절한 운송수단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0년 넘게 라이딩을 해왔지만 필자는 여전히 아무 문제없이 라이딩을 즐긴다.
인류는 복어 자체를 안전한 식재료로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복어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복어의 독을 제거하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모터사이클도 마찬가지다. 도로 위에서 안전하게 라이딩을 즐기려면 제대로 된 운전면허 시험체계와 교육·관리체계 마련, 그리고 인식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종화(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denmagazine@mcircle.biz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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