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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오래전도 아닌데…
이걸 알면 옛날 사람?

by동아일보

‘옛날사람 테스트’ 콘텐츠 인기… 혹시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걸까?

 

“솔직히 1990년대생들은 뭐랄까. 좀 ‘옛날사람’ 같아요. 제가 2001년생인데, 저처럼 21세기에 태어난 애들하고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하고 괴리감이 들어요. 일제시대가 연상 되잖아요.같은 1900년대 사람들이기도 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인생의 낭비’라는 ‘아재’ 세계관을 가진 에이전트 28(조윤경).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당돌한 밀레니엄 세대의 폭로에 뒷목을 잡고 말았다.

 

28은 줄곧 스마트폰은 메신저와 전화 기능만 잘되면 괜찮다고 생각해왔다.

 

‘옛날사람’ 취급에 충격을 받은 28이 걱정이 된 에이전트 0(김민)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이 먹는 게 슬픈 것만은 아냐. 사람들은 이미 나이 드는 걸 소재로 삼아 즐기고 있다고. 넌 너무 한쪽만 보고 있어.” 0은 노트북을 열었다.

오래전도 아닌데… 이걸 알면 옛날 사

왼쪽 사진부터 브라운관(CRT) 모니터에 사용했던 유리로 된 보안경. LCD 모니터가 보급되면서 사라졌다. 톰과 제리의 양면 색종이. 1990년대 문구점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6장에 100원.

혹시 내가 시대에 뒤떨어졌나?

0은 28의 어깨를 두드리며 “네가 느끼는 ‘옛날사람이 됐다’는 불안감, 그게 바로 이런 콘텐츠를 보게 만들지”라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신조어 능력평가’. 모의고사 시험지를 본뜬 웹페이지에는 신조어 16개가 나열됐다. ‘팬아저’(팬이 아니어도 저장하는 사진), ‘갓띵작’(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 사람에 따라 다르다), ‘ㅇㅈ’(인정), ‘비담’(비주얼 담당), ‘인구론’(인문계 90프로가 논다), ‘시강’(시선 강탈)…. 듣도 보도 못한 외계어가 난무했다. 28이 알고 있는 단어는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쁜) 등 5개뿐이었다.

 

영어권 미디어 ‘바이스(vice)’에 접속했다. 바이스는 캐나다의 언더그라운드 잡지로 시작해 3조 원대의 가치로 성장한 온라인 영상 중심 매체. 0이 클릭한 ‘2017 슬랭 가이드’ 영상에는 20대 바이스 직원 3명과 인턴 1명이 등장했다. 이들은 ‘Lit(화끈하다)’부터 ‘FR(정말·For Real)’까지 11개의 은어를 2017년에도 써도 좋을지를 평가했다. “‘Lit’는 엘런 디제너러스쇼(대중적 인기를 끄는 미국의 토크쇼)에 등장하는 순간 생명이 다했다”거나 “‘FR’는 키패드로 입력하기는 편하지만 실제로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식이다.

 

28은 더 불안해졌다. 정말 ‘옛날사람’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온라인으로 신조어를 공부하며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팩트 폭력’ 뒤에 숨은 공감대 형성

오래전도 아닌데… 이걸 알면 옛날 사

왼쪽부터1991∼94년 제작된 비디오테이프에 담겨 있던 ‘불법 복제는 호환 마마 전쟁보다 무섭다’는 내용의 영상.마우스 바닥에 공을 넣고 사용했던 볼마우스. 광마우스가 등장하며 자취를 감췄다. 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캡처

0은 28에게 또 다른 ‘옛날사람’ 시리즈를 보여줬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거 알면 옛날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이 꾸준히 올라왔다. 그중 하나를 클릭하자 거울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남자아이의 이미지가 보였다. 스크롤을 내리자 아래의 글귀가 적혀 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비디오를 시청해 비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비디오테이프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한 경고 영상이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사용된 이 영상은 어릴 적 비디오를 빌려본 사람은 기억한다. 직장인 이성훈 씨(28)는 “회식 때나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이거 알면 옛날사람이래’라며 대화 소재로 삼기 좋아 이 시리즈를 자주 본다”고 말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경험한 세대만이 갖는 ‘공감대’를 즐기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브라운관(CRT) 모니터, 플로피 디스크, 볼마우스 등의 사진을 올리고 ‘옛날사람 인증’을 하는 식이다. 직장인 황지원 씨(30)는 “아주 어릴 때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엄청난 변천사를 경험한 세대들만의 유머 코드”라며 “알고 보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물건들인데도 지금 보면 너무 옛날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너희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

오래전도 아닌데… 이걸 알면 옛날 사

공감대와 유머에 용기를 얻은 28에게 0이 또 다른 옛날사람 콘텐츠를 보여줬다. 버즈피드, 허프포스트 같은 영어권 온라인 미디어에 ‘당신이 너무 나이 들었다고 느껴질 때’라는 제목의 시리즈가 잔뜩 있었다. 그중 ‘당신이 배낭여행 하기엔 너무 나이 들었다고 느끼는 13가지 증거’를 클릭했다. ‘밤에는 편히 자고 싶다’, ‘모든 것을 예약해놔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 어린 시절 배낭여행할 때는 멋모르고 견뎠던 것들이지만 이제는 좀 더 안락해도 좋지 않을까.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가 28에게 속삭였다. “‘이게 유행인데 모르냐’며 강박하는 분위기가 줄어들었습니다. 나이 든 사람도 ‘너희가 부럽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할 거야’라고 말해도 괜찮은 시대가 된 것이죠.”

 

김민 kimmin@donga.com·조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