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클린턴은 반역자”… 트럼프 지지자들 사로잡는 ‘의문의 Q’

[이슈]by 동아일보

황당한 음모론 인기몰이

“오바마-클린턴은 반역자”… 트럼프

지난달 31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집회에서 ‘QANON’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CNN 취재진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뉴스라고 비난하는 매체다. 탬파=AP 뉴시스

“우리가 바로 Q다(We Are Q).”


지난달 31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벌어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유세에 일부 트럼프 지지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음모론을 지칭하는 표현이 등장했다. ‘Q’ 혹은 ‘Q ANON’이라고 불리는 이 음모론은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은 ‘악마 숭배자’이자 국가 반역 집단으로 곧 사법 처리될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트럼프는 ‘구국영웅’, 反트럼프는 ‘악마숭배’?

지난해 10월 말, 익명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유명 커뮤니티 ‘4chan’에는 힐러리 클린턴과 그의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존 포데스타에 대한 추방 및 체포 작전이 이미 실행되고 있다는 글이 ‘Q’라는 작성자의 명의로 올라왔다. Q는 미국 에너지부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기밀을 취급할 수 있는 등급이다. 이 작성자는 자신이 트럼프 행정부 내부인이라고 주장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위대한 나라를 찾아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후 ‘anonymous(익명)’란 이름을 사용하는 작성자는 Q와 거의 비슷한 문체로 클린턴과 그 측근들, 그리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이 모두 러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연계된 반역 행위를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anonymous’는 트럼프 대통령 이전 대통령은 전부 범죄자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심어놓은 지도자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지금의 갈등 구도가 “민주당 대 공화당이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 이른바 ‘딥 스테이트’(그림자정부를 의미하는 음모론 용어)로 불리는 반역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이에 열광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Q의 주장에 살을 붙여가며 ‘위대한 깨달음’이라 불리는 거대한 음모론을 완성시켰다. 이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검과 사실은 같은 편인데 민주당의 악행을 폭로하기 위해 갈등이 있는 것처럼 연극을 벌이며 특검을 유지시키고 있다. 클린턴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 등은 이미 체포된 신세로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곧 ‘폭풍’처럼 이들을 기소해 감옥으로 보낼 계획이다. Q의 진짜 신원은 1999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케네디 주니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트럼프 지지자 ‘현실도피’ 욕구 자극”

인터넷 매체 복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이 희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황당한 음모론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뮬러 특검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은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비밀병기로 뮬러 특검을 이용하고 있다는 마치 꿈같은 이야기가 일부 지지자를 매료시켰다는 것이다.


음모론을 직접 퍼뜨리기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이 지지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자신부터가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그가 트럼프타워를 도청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쳐 왔다”고 비판했다.


음모론 신봉자들이 유혈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2016년엔 클린턴과 포데스타가 워싱턴의 한 피자집에서 인신매매를 자행하고 있다는 ‘피자게이트’ 음모론이 퍼져 같은해 12월 한 남성이 음모론의 표적이 된 피자집에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2018.08.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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