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제발 금메달, 야구는 제발 은메달?

[이슈]by 동아일보
축구는 제발 금메달, 야구는 제발 은

1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야구대표팀 기자회견에서 선동열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축구는 제발 금메달, 야구는 제발 은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은메달을 기원합니다.” 얼핏 들으면 금메달은 힘들어 보이니 은메달이라도 따내길 바란다는 응원 같다. 하지만 이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한국 야구대표팀에 쏟아지고 있는 비아냥거림이다. 야구대표팀 관련 기사의 댓글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번지고 있는 ‘#은메달을 기원합니다’란 문구는 저주에 가깝다.


특히 누리꾼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야구대표팀의 두 선수는 과도한 인신공격까지 받고 있다. 1990년생인 두 선수는 지난해 상무 야구단, 경찰 야구단(이상 만 27세 이하 지원 가능) 입단을 포기하고 소속 프로팀에 남았다. 올해 아시아경기 금메달로 병역(兵役)을 해결하겠다는 계산에서다.


국가대표로 뽑힐 만한 기량을 갖춘 당사자 입장에선 확률 높은 선택이었다. 야구가 아시아경기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4년 히로시마 대회부터 2014년 인천 대회까지 한국은 총 6회 중 4차례나 우승했다. 게다가 프로선수 출전이 허용된 1998년 방콕 대회부터는 한 차례(2006년 도하 대회 동메달)만 빼고 금메달을 따냈다. 일본이 실업팀 선수로만 대표팀을 꾸려 출전하고 있는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 불법적인 병역 면탈은 분노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잣대가 태극전사들에게는 관대한 편이다. 온 국민에게 기쁨과 감동을 안겨준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아시아경기 우승자의 병역 면제에 큰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아시아경기 야구대표팀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합법적인 병역 해결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직전 대회인 2014년 인천 대회 야구대표팀이다. 최종 선수 엔트리 24명 중 13명이 병역 미필자였고 그중 두 명은 당시 나이 29세까지 군 입대를 미룬 상태였다. 그런데 그 두 명 중 한 명이 부상 사실을 숨긴 채 대표팀에 합류했고, 결과적으로 ‘무임승차’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게 드러나 거센 비난을 샀다.


그런데 야구와 달리 이번 아시아경기에 출전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금메달을 기원하는 국민적 열망은 엄청나다. 아직 병역 미필인 손흥민(26·토트넘) 개인에 대한 관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축구가 반드시 우승해 손흥민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대세다.


프로야구가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이건만, 오히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뭘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종목의 인기 여부와 상관없이 선수 레벨이 다른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손흥민은 해외무대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선수인 반면 국내 리그에서 뛰고 있는 ‘논란’의 야구선수 두 명은 팀 내에서도 대체 가능한 선수다.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병역 면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손흥민은 그 저항감을 넘어설 수 있을 만큼의 심리적 보상을 국민들에게 해주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곽 교수의 진단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 추신수와 류현진이 각각 아시아경기와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 면제를 받았을 때도 환영 일색이었다.


이번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야구는 대회 3연패에, 축구는 대회 2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우승해야 본전’인 야구는 대표선수 선발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기에 성적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 대표팀 24명 전원이 프로선수인 객관적 전력상 일본, 대만보다 우위라고는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축구도 2014년 인천 대회 우승이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28년 만의 우승이었을 정도로 금메달은 녹록지 않은 목표다. 실제로 한국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1-2로 덜미를 잡혀 조 2위에 그치는 바람에 16강전에서 난적 이란을 넘어서야 하는 등 우승까지는 가시밭길이다.


아시아경기 금메달리스트에게 병역 혜택이 주어지는 현행 규정상 우승이 유력한 남자 단체종목의 대표선수 선발 논란은 4년마다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팬심(Fan+心)을 모두 수용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엔트리 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야구대표팀이 23일 오후 장도에 오른다. 그런데 그즈음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예보다. 만약 항공편이 결항된다면 야구대표팀은 컨디션 조절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세상사 모든 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래저래 지금은 조롱보다 격려와 응원이 필요할 때다. 질책은 ‘결과’가 나온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

2018.08.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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