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원 어린이집, 흘린 밥 먹이고 꼬집어 피멍… “신고말라” 회유

[이슈]by 동아일보

툭하면 아동학대… 불안한 부모들

동아일보

22일 낮 12시경 인천의 A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식판을 반납하는 5세 아동의 팔을 꼬집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왼쪽 사진). 그러자 아이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팔을 감싸 쥐고 있다. 5세 아동의 엄마는 이날 아이의 팔에서 피멍을 발견했다(오른쪽 사진). 어린이집 CCTV 캡처

10일 오후 7시경 김모 씨(24·여)는 아들(5)의 옷을 갈아입히다가 왼팔에 피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 어쩌다 생긴 멍인지 물었는데 아이는 “친구가 그랬나”라며 얼버무렸다. 김 씨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는 2시간쯤 지나 잠들기 직전에 “사실은 이거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랬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거짓말을 한다고 여겼다.


“선생님이 바닥에 떨어진 밥을 주워 먹으라고 해서 먹었는데 주사 맞아야 돼?” 22일 김 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던 중 아이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가 바닥에 떨어졌던 밥에 세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아동 학대를 직감한 김 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옷을 벗기고 몸 곳곳을 확인했다. 이번엔 오른팔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김 씨는 바로 다음 날 경찰의 도움을 받아 아들이 다니는 인천의 A어린이집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아들이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모습과 보육교사가 아이의 팔을 꼬집는 장면이 모두 담겨 있었다. 김 씨는 약 2주일 전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 그냥 넘겼던 일이 엄청난 후회로 밀려왔다고 한다.


김 씨는 “아이가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며 “아이 입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말들로 선생님을 벌주고 싶어 하고 매일 밤 자다가도 몇 번씩 놀라 깨곤 한다”고 말했다. 23일부터 A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아이는 다른 어린이집에도 가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 씨는 “아이에게 ‘다른 어린이집에 가자’고 하면 ‘다른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프게 할 거다’라고 대답한다”고 전했다.


김 씨는 어린이집 측이 아이를 학대한 사건을 무마하려 한 정황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인천지역 구의원 B 씨가 운영에 관여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이 어린이집은 23일 김 씨가 CCTV를 확인할 당시 B 씨가 “수사가 들어오면 어린이집 정부 지원금이 낮아져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며 경찰 신고를 막으려 했다고 한다. B 씨는 또 “심성은 착한 선생님인데 딱 한 번 실수한 것”이라며 학대 보육교사를 감싸는 듯한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학부모는 “학부모들은 B 씨를 사실상 어린이집 원장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에 해당돼 학대 사실을 알게 되거나 학대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즉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신고하지 않으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진다.


인천 논현경찰서는 A어린이집에서 일했던 30대 여성 보육교사 C 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29일 밝혔다. C 씨는 아이의 신체 부위를 상습적으로 꼬집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으라고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어린이집의 최근 두 달 치 CCTV 영상을 확보해 다른 아이들에게도 학대 행위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A어린이집 측은 “사실을 인정하고 해당 보육교사를 해임 조치했다”며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

2019.04.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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