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 멸종 사건, 범인은 호모사피엔스

[테크]by 동아일보

78만 년 전 기후 데이터 수집… 시뮬레이션으로 이동 과정 분석

기후변화-이종교배 영향 미미… 현생인류와의 자원경쟁서 밀려

동아일보

인간의 먼 친척뻘인 네안데르탈인은 멀게는 40만 년, 가깝게는 20만 년 전부터 유럽과 시베리아에 널리 퍼져 살았다. 도구를 만들고 집단생활을 하며 장신구를 만들어 멋까지 부리는 등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약 4만 년 전 지금의 스페인 지역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극히 일부가 현생인류와 짝짓기를 하고 후손(현대인)의 게놈(유전체)에 자취를 남겼을 뿐이다.


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이유를 두고 다양한 가설을 세웠다.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졌다거나 기온이 빠르게 오르내리는 변덕스러운 기후로 멸종했다는 가설이 지금까지 제기됐다. 현생인류와의 이종교배로 자연도태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악셀 티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28일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시대의 옛 기후 데이터를 이용해 과거 환경을 복원하고 이들이 확산하는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추정한 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티머만 단장은 약 78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와 지구 자전축 변화 데이터를 수집해 과거 유럽 기후를 정교하게 재현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지구 자전축과 공전궤도는 2만∼10만 년마다 바뀌는데 그 결과로 지구 기후가 바뀌고 아프리카에 머물렀던 인류가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약 11만 년 전부터 2만3000년 전 사이에 1470년 주기로 온도가 급격히 오르락내리락하는 변덕스러운 기후(단스고르외슈거 이벤트)도 재현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수만 년간 환경 변화에 따라 어떤 지역으로 이동하고 사라졌는지 반영한 ‘인류확산모형(HDM)2’를 적용해 분석했다. 이를 표현한 모델 개발과 분석에는 지난해 4월부터 대전 유성 IBS 본원에 도입한 슈퍼컴 알레프가 활용됐다. 티머만 단장은 “기존에도 이 주제를 다룬 연구가 있었지만 복잡한 장기 기후변화 효과를 다루지 않았고 지질학적 특성이나 인류의 공간적 확산을 다루지 않아 지나치게 단순했다”며 “이들을 고려해 포괄적이고 정량적으로 이 문제를 다룬 사실상 첫 사례”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세 가지 가설에 나타난 조건을 넣어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은 자원을 둘러싼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도태된 것으로 나타났다. 티머만 단장은 “사냥 기술, 병에 대한 저항성, 출산 능력 등 여러 요인이 경쟁력 격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중부 유럽과 북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지는 시점을 500∼1500년 앞당기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대세’를 바꿀 만한 원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티머만 단장은 “네안데르탈인은 40만 년 전부터 살아오면서 멸종 시기(4만 년 전)보다 더 급격한 기후변화에도 적응했다”며 “추위를 현생인류보다 잘 견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생인류와 섞여 사라졌다는 가설 역시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티머만 단장은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가 확산하는 시기에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이번 시뮬레이션 연구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이 우리가 행한 최초의 주요 멸종 사건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를 더 확대해 식생과 문화, 바이러스 등 병원체를 반영한 새 모델을 연구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질학 분야 국제학술지 ‘신생대 제4기 과학 리뷰’ 6월호에 발표됐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2020.06.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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