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센 언니… 여성 캐릭터, 욕망의 대상서 주체로 변신

[컬처]by 동아일보

드라마-영화서 ‘여성 서사’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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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강태(김수현)의 목을 끌어당겨 얼굴을 보는 문영(서예지). 강태가 감정 통제 자가치료법인 ‘나비 포옹법’을 알려주기 위해 뒤에 서자 문영은 “뒤에서 이러는 건 내 스타일 아냐. 트라우마는 이렇게 앞에서 마주 봐야지”라고 말한다. CJ ENM 제공

“예쁘네. 탐나.”


이달 20일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성공한 동화작가 문영(서예지)은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강태(김수현)를 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정신 병동 보호사로 일하며 자폐증을 앓는 형을 보살피는 강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는 문영은 그 욕망을 표출하는 데 거침이 없다. 외모와 재력을 갖춘 남자 주인공이 힘든 상황에 처한 여주인공에게 구애해 사랑을 쟁취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와 정반대다. 팬 사인회에 나타난 강태의 모자를 벗기며 “모자 쓰지 마. 예쁜 얼굴 안 보여”라고 ‘돌직구’를 던진다.


과거에 부와 외모, 능력까지 모든 걸 갖춘 남성이 등장해 캔디형 여성 주인공을 구원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류였다면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의 욕망과 판타지도 달라지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의 이야기 구조는 여성의 시선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된 ‘미투’ 열풍으로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후 이 같은 흐름은 문화계의 꾸준한 움직임으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영화 제작사는 콘텐츠의 주 타깃인 20∼4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지난해 영화계에서는 여성 감독의 작품,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다. ‘벌새’ ‘메기’ ‘82년생 김지영’ ‘윤희에게’는 극장 시장의 비수기에 개봉했음에도 여성의 서사를 섬세하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는 이 같은 흐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왔도 꿋꿋이 개봉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시작으로 ‘결백’ ‘초미의 관심사’ ‘프랑스 여자’ ‘야구소녀’ 등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여성 서사를 다룬 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드라마 속 여성 서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여성의 직업적 욕망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방영한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는 사회적인 성공이 최대 목표인 여성 ‘워커홀릭’들의 삶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SBS ‘하이에나’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형사, 정치인, 법조인 등의 직업군에서 남성 주인공이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고 여성은 보조적 역할을 했던 기존의 드라마 문법에서 벗어났다는 호평을 받았다. ‘충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 정금자(김혜수)는 승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부사 기질을 지녀 상대편 변호를 맡은 윤희재(주지훈)를 꼬셔 정보를 몰래 빼내는 악랄한 모습도 보인다.


이영미 문화평론가는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은 대개 정의롭다. 대장금이 대표적이다. 장금이는 온갖 모략이 판치는 남성 사회에서 직업적 전문성을 무기로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더욱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그려지고 있다. 정의로움, 욕망, 따뜻함 등을 모두 가진 복합적인 여성 캐릭터로 변화하는 건 필연적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단편적인 여성 캐릭터가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는 건 시청자들의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김은숙 작가의 2년 만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된 SBS ‘더 킹: 영원의 군주’는 평균 시청률 8%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시청률 견인의 핵심적 역할을 했던 김은숙표 ‘신데렐라 스토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평범한 형사 정태을(김고은) 앞에 백마 ‘맥시무스’를 타고 나타난 대한제국 황제 이곤(이민호)이 “자넬 황후로 맞이하겠네”라고 고백하는 장면에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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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을 꿈꾸는 고교 여자 야구선수 주수인(이주영)의 분투를 그린 영화 ‘야구소녀’는 여성 서사라는 한계를 넘어 사회적 통념과 벽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싸이더스 제공

앞으로는 ‘여성’이라는 범주화를 넘어서는 것이 과제라는 의견도 있다. 프로팀 입단을 꿈꾸는 고교 야구의 여성 선수를 연기한 ‘야구소녀’의 주연 배우 이주영은 “여성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지만 여성을 위한 영화만은 아니다. 높은 벽에 도전하는 모두가 뭉클한 감동을 느끼는 작품”이라고 영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여성’의 이야기로 전면에 나서는 움직임과 더불어 지난해 개봉한 영화 ‘돈’처럼 여성 감독이 여성이 아닌 소재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례에도 주목해야 한다. 관객들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도록 ‘여성’이라는 범주를 넘어서는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현 baltika7@donga.com·김재희 기자

2020.07.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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