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건 살인” 이춘재 처벌 못하지만…‘살인의 추억’ 30여년 만에 수사종결

[이슈]by 동아일보

“23건 범행 확인, 14명 연쇄 살해·9건 성폭행”

“욕구해소 위해 가학적 범행, 사이코패스 성향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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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인 이춘재에 대한 경찰 수사가 30여년 만에 마무리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일 오전 브리핑을 열고 사건 재수사 배경과 과정, 결과, 수사의 의의 등 사건 전반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이춘재가 저지른 14건의 살인사건 및 9건의 강간사건은 이춘재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연쇄범행을 한 것임을 확인했으며 검찰에 송치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더라도 지난 2006년 4월 2일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이춘재는 다시 재판이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


윤 모씨(53)가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했으나 뒤늦게 이춘재의 범행으로 드러난 8차 사건과 관련해서는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경찰관 및 검사 등 8명을 직권남용 감금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원활한 재심절차 진행을 위해 지난 2월 우선 송치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은 불가능하다. 다만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 씨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또 이춘재가 추가 자백한 화성 초등생 김모양 살해사건과 관련해 당시 수사 참여 경찰관 2명도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하여 송치 예정이다. 이들은 김 양이 실종되고 5개월 뒤 김 양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일부를 발견하고도 감춘 혐의를 받는다.

자백한 살인 14건 모두 확인…강간은 34건 중 9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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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자백한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에 대한 시신찾기 수색작업 현장. 2019.11.1/뉴스1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총 14건의 살인사건(1986~1991년)을 모두 그의 범행으로 판단했다.


사건은 모두 이춘재가 군을 전역한 이후부터 발생했다. 또 출생·학교·직장 등 연고가 확인되는 지역에서 발생했다.


특히 5건의 살인사건은 30여년이 지났지만 증거물에서 DNA가 검출됨으로써 이춘재의 범행임이 명백했다.


DNA가 검출되지 않은 9건의 살인사건도 자백의 임의성과 신빙성이 충분히 인정되는 가운데 그동안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 잡거나 당시 간과하였던 현장 상황을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게 하는 등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진술 내용의 핵심적인 부분이 과거 수사기록과도 부합했다.


다만 이춘재가 자백한 34건의 강간사건에 대해서는 발생시기와 지역이 연쇄살인의 시기·지역과 일치하고 범행수법의 유사성으로 보아 연쇄살인과 묶여진 일련의 범행으로 보이지만, 입증 자료가 충분한 9건만 그의 범행으로 결론내렸다.

이춘재, 욕구불만 표출이 범행으로…전형적 사이코패스

경찰은 프로파일러들의 면담과 심리검사, 진술 및 행동특성 분석, 사이코패스 평가 등 모든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춘재의 심리특성 및 범행동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춘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성취감과 주체적인 역할을 경험하게 됐고, 군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의 상태에서 상실된 자신의 주도권을 표출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성범죄와 살인을 지속하면서도 죄책감 등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 살해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졌다. 점차 범행수법도 잔혹해졌으며 가학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또 이춘재는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하여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범행과 존재감을 지속적으로 과시하고 언론과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등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수사 초기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며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건강 및 교도소 생활만을 걱정하는 등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찰, 당시의 강압·부실수사 인정 “머리 숙여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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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 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마치고 과거 당시 경찰의 수사와 유가족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있다. 2020.7.2/뉴스1

경찰은 8차 사건 당시 윤 씨를 임의동행한 후 구속영장 발부 전까지 3일간 법적 근거 없이 경찰서에 대기시키며 조사하는 등 부당하게 신체를 구금했다고 인정했다.


또 조사과정에서 폭행 및 가혹행위을 통해 허위자백과 허위의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고 조서 작성시 참여하지 않은 참고인을 참여한 것처럼 허위의 공문서를 작성한 사실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살해 사건과 관련해서도 경찰이 실종된 피해자의 유류품을 발견했으나 유족에게 알리지 않고, 피해자의 유골 일부를 발견하고도 은닉한 혐의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당시 이춘재에 대해 총 세 번의 수사가 진행됐으나 입증할 증거를 제대로 찾지 못해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됐다며 반성했다.


경찰은 “지난 9개월여 동안 30여년 전의 수사기록과 자료, 기억 등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했다”며 “그 과정에서 밝혀진 경찰 수사의 문제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하며, 이춘재 범행의 피해자와 유가족, 윤모씨 등 경찰 수사로 피해 입은 모든 분들게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김진하 동아닷컴 기자 jhjinha@donga.com

2020.07.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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