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지주의 초상

[컬처]by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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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게인즈버러, 앤드루스 부부, 1750년경

토지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다. 권력자들은 늘 땅을 소유했고 대물림했다. 지주들에게 땅은 계급 강화와 영속화의 수단이었다. 토머스 게인즈버러가 그린 이 초상화는 18세기 영국 대지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의 고교 친구인 로버트 앤드루스와 그의 부인 프랜시스 카터다. 이들은 1748년 결혼했는데 당시 각각 22세, 16세였다. 실패한 사업가의 아들이었던 게인즈버러가 고교 졸업 후 신분이 낮은 견습화가가 됐을 때, 앤드루스는 옥스퍼드대에 진학했다. 앤드루스 집안은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부농이자 선주로서 식민지 무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찌감치 땅을 사주고 대지주 집안과 사돈을 맺었다. 더 넓은 토지 확보와 효율적 관리를 위해 정략적으로 맺어진 혼인이었다. 부부의 표정이 왠지 냉랭해 보이는 이유다.


결혼 당시 앤드루스는 이미 1200만 m²의 땅을 소유한 대지주였고, 그림 속 배경도 실제 그의 사유지다. 우아한 로코코풍의 드레스를 입은 부인과 달리, 그는 사냥복 차림이다. 사냥은 상류층 남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신분 과시용으로 선택된 의상이다. 다산의 상징인 곡식 더미와 정절을 암시하는 개, 힘과 영속성을 상징하는 참나무 등 그림은 결혼과 관계된 다양한 상징으로 채워져 있어 부부의 결혼 기념 초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인의 손은 미완성인데, 이는 책이나 사냥한 꿩을 그리려다가 태어날 후손을 위해 일부러 비워둔 듯하다.


풍경화가였던 게인즈버러는 사실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이 초상화를 그렸다. 화가는 무릇 의뢰인을 만족시켜야 하는 법. 옛 친구지만 신분 차에 대한 씁쓸함도 컸을 터다. 초상화에 취약했던 그는 자신 있는 풍경화 속에 부부를 그려 넣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초상과 풍경을 결합한 그만의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 냈다. 지주 계급에 대한 화가의 냉정한 시선을 담고 있음에도 이 그림은 주문자에겐 대만족을, 화가에겐 최고의 명성을 안겨주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2020.08.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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