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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홍지혜의 속보이는 미술이야기

'달과 6펜스'로 읽는 고갱

by이코노믹리뷰

2015년 한 해 동안, 미술품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작품은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1892)이다. 영국의 언론 <가디언>에 따르면 스위스 개인 수집가가 소장하던 이 작품은 카타르 수집가에게 3억달러에 팔리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등극했다. 이번 거래 기록이 바뀌기 전까지 최고가 거래 작품으로 꼽히던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에 이어, 카타르 왕가가 또 다시 기록을 세운 셈이다. <언제 결혼하니?>는 타히티의 소녀들을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태생인 고갱은 왜 타히티 소녀를 그렸을까.

'달과 6펜스'로 읽는 고갱

폴 고갱, '언제 결혼하니?', 캔버스에 유채, 1892 ⓒwikipedia

“더 이상 당신하고 같이 살 수 없소. 나를 찾지 마시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안정적인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홀연히 떠나며 아내에게 남긴 편지의 내용이다. 남편이 낯선 여자와 사랑에 빠졌을 거라 생각한 아내가 수소문 끝에 발견한 스트릭랜드는 허름한 여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소설가 서머싯 몸이 실화에 기반해 쓴 소설 <달과 6펜스>의 실제 주인공은 고갱이다. 증권회사 회계원이던 고갱은 35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돌연 전업작가가 되기를 선언했다.

'달과 6펜스'로 읽는 고갱

국내에 보급된 소설 '달과 6펜스' ⓒkyobobook

2015년 최고가 미술 기록을 세운 고갱이지만, 생전 그의 전시는 상업적인 면에서 매번 실패했다. 고갱은 산업문명으로 세속화된 파리를 벗어나 문명의 흔적이 거의 없는 곳을 찾았다. 고흐와 함께 지냈던 아를, 조용한 시골동네 퐁타방을 거쳐 1891년에 정착한 곳은 타히티의 마타이에아섬이었다. 그곳에서 고갱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13살 소녀 테하마나를 만나 함께 살면서, 2년간 60여 점이 넘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이번에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 <언제 결혼하니?>도 이 시기에 그려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타히티에 있는 동안 작품을 한 점도 팔지 못했고 빈털터리가 되어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에서의 전시도 완전히 실패하자 고갱은 1895년, 다시 타히티로 들어가 남은 삶을 보냈다. 1903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가난과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는 등 음울한 인생의 말년을 보냈다.

 

작가로서 가난한 삶을 살았던 고갱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열린 회고전에 방문한 젊은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에 의해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타히티에서 사망한 은둔 예술가의 일생에 호기심을 갖고 타히티를 직접 방문해 고갱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고갱의 일생을 소재로 한 소설 <달과 6펜스>는 발표와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고, 문명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고갱의 전설을 확립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머싯이 타히티 체류 시 400프랑을 주고 산 고갱의 그림이 반세기 뒤에 1만7000달러로 가격이 껑충 오른 것은, 자칫 우리가 잊고 지나칠 수 있었던 고갱의 삶을 알려준 작가에 대한 고갱의 선물일지 모른다. 

 

홍지혜 오픈갤러리 디렉터&큐레이터  |  expert@econov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