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탄압도 이겨낸 '세병관', 한민족 '혼' 되새기다

[여행]by 이데일리

경남 통영 역사 기행

통제영의 핵심 시설 '세병관'

군수품과 진상품 만든 '12공방'

이순신의 영정 모신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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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미륵산(461m) 정상까지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스카이워크 전망대 오르면 통영 시내와 바다 등 탁 트인 풍경을 둘러볼 수 있다.

경남 통영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었다. 조선 수군의 근거지인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들어서면서다. 통영이라는 지명도 통제영의 준말에서 나왔을 정도다. 과거 ‘충무’라는 지명도 이순신의 시호 ‘충무공’에서 따온 이름임을 미루어 보면 그 역사적 배경 또한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통영이라는 도시는 조선 선조 36년(1603년) 제6대 통제사였던 이경준이 통영성의 중심이었던 지금 자리로 옮겨오면서 시작했다. 지금도 당시의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세병관’(洗兵館)과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忠烈祠)가 대표적이다. 일제가 통제영의 시설을 거의 철거·훼손했을 당시에도, 지켜낸 우리 민족의 ‘혼’이다.

국난 극복의 상징 ‘세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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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삼도 수군통제영의 핵심 객사건물인 ‘세병관’

문호동 여황산 기슭에 선 ‘세병관’(국보 제305호). 삼도수군통제영의 핵심 객사 건물이다. 세병관에 간다는 말은 곧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에 간다는 말과 같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지금으로 치면 해군 총 사령부 격이다.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6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조선 후기 건물치고는 기교의 치우침이 없고, 간결하다. 세병관 앞에서 서면 조선 수군의 본영다운 당당함이 느껴진다.


세병관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洗兵馬) 중 마지막 구절 ‘정세병갑장불용’(淨洗兵甲長不用)에서 빌여온 것이다. ‘병기를 닦아 다시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으로, 안녹산의 난 때 적군에게 포로가 되는 등 전쟁에 시달렸던 두보의 바람이 담긴 시 구절이다. 전쟁에 대비해 평화를 열자는 유비무환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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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 출입문인 ‘지과문’. 그칠 지(止) 전쟁 과(戈), 즉 전쟁을 멈추는 문이다. 두 글자를 합치면 굳셀 무(武)가 된다. 이 문을 지나면 비로소 세병관에 이른다.

세병관은 하루 두번 종을 쳐 시간을 알리던 ‘망일루’를 지나 출입문인 ‘지과문’을 거쳐야 한다. 망일루 누각에는 한여름 더위를 식히고 있는 관광객과 마을 주민이 가득하다. 누각에 서면 강구안부터 동피랑, 서피랑, 미륵산까지 통영의 주요 관광지가 한눈에 담긴다. 이어 가파른 계단을 올라 출입문인 지과문을 지난다. 그칠 지(止) 전쟁 과(戈), 즉 전쟁을 멈추는 문이다. 두 글자를 합치면 굳셀 무(武)가 된다. 이 문을 지나면 비로소 세병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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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

세병관은 웅장하다. 기둥은 군대의 행렬처럼 정연하게 배열했다. 단순하면서도 절도 있는 강한 힘이 느껴진다. 마루 한가운데에 3칸 정도 높게 단을 올린 ‘전패단’(殿牌壇)은 군통수권자인 임금에게 장계를 올리고 어명을 받는 곳이다. 나머지는 넓은 마루 공간으로 사방이 벽없이 뚫려 있다. 서울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224호)와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함께 바닥 면적이 넓은 조선 목조건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창호 문 위쪽에는 사군자와 옛날 군인들의 전투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통제사들의 이름과 통제사 휘하의 직제 등도 적혀 있다. 천장은 궐패가 놓이는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등천장이다. 겹처마는 팔작지붕이다.


넓은 마루에 올라 기둥에 몸을 기대면 시원한 바람과 산새소리에 스르르 눈이 감긴다. 한껏 달아오른 폭염도 잠시 쉬어갈 정도다. 그래서인지 통영 시민들도 자주 찾아와 더위를 식히고 가는 숨은 피서지다.

통영의 역사를 보여주는 심장 ‘12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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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역사를 보여주는 심장인 ‘12공방’.

세병관 왼쪽 뒤쪽으로 난 문을 지나면 ‘통제영 12공방’과 백화당이다. 조선 수군 최고의 핵심 군사시설이었던 통제영은 전국의 물산과 장인이 몰려들었다. 조선시대 군영과 읍성에는 공방이 있었다. 이들은 군수품 생산은 물론 조정에 보내는 진공품과 중국 사신의 헌상품까지 조달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12공방’이다. 12공방에서는 부채·목가구·나전제품 등을 전문적으로 제작했다. 그렇다고 12개의 공방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온갖 장인들이 모인 수많은 공방이라는 수사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시기나 유행에 따라 새로운 공방이 생기고, 없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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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영 12공방에서 나전 체험을 하고 있는 관광객

통영 12공방에서 만든 공예품은 하나같이 수준 높고, 질이 좋아 최상품으로 통했다. 대체로 부채·옻칠·장석·그림·가죽·철물·목가구·금은 제품·갓·자개 등을 다뤘다. 지금은 부채·대발·나전칠기·소목(가구)·두석(금속)·소반 등 일부 공방만 남아 있다. 부채를 만드는 ‘미선방’, 목가구를 만드는 ‘소목방’, 금은 제품을 만드는 ‘은방’, 자개를 붙여 나전제품을 만드는 ‘패부방’ 등이다. 일제강점기 후 민간으로 흘러들어간 장인들은 꾸준히 기술을 전수하며 맥을 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통영 장인들이 만든 갓·소반·장석·부채·가죽제품·나전 등은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힌다.


지금은 조선 최고의 공예품을 만들던 통제영 12 공방의 명맥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장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체험까지 할 수 있어 더욱 뜻깊다. 더불어, 국가무형문화재를 비롯해 다양한 공예 장인의 작품 제작 시연과 해설도 들을 수 있다. 갓일·나전·소목·두석·소반·대발 등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우리나라 최고의 장인들이다.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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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황산 기슭에 자리한 충렬사

여황산 기슭에는 충렬사도 자리하고 있다. 충렬사는 이순신의 사당이다. 조선 선조 39년(1606년), 7대 통제사로 온 이운룡(1562~1610년)이 왕명에 따라 지었다. 이후 현종 4년(1663년)에 사액 받았다. 같은 해에는 강당과 동·서재를 갖췄다. 이후 통제영이 해체될 때까지 무려 291년간 삼도수군통제사는 봄·가을에 어김없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충렬사 입구는 2층 누각의 강한루다. 강한루를 지나면 굵은 동백나무들이 눈에 띈다. 양쪽에 늘어서 있는 나무 중 가장 오래 된 이 동백나무는 본래 네 그루였는데,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았다. 수령은 400년 정도다. 충렬사의 역사와 함께한 것이다. 꽃이 유난히 붉고 탐스러워 이곳 마을 처자들이 명정샘에서 물을 길어가며 꽃잎 띄우기를 즐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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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강한루

이곳을 지나 올라가면 외삼문이다. 외삼문 좌우로 비각 여섯 채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 이들 비각 안에는 광해군 7년(1615년)에 이항복이 짓고 송시열이 쓴 충렬묘비를 비롯해 모두 11기의 비가 들어 있다. 외삼문을 거쳐 중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이 승무당, 왼쪽이 경충재다. 마당을 거쳐 중문으로 들어서면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있다. 이곳을 지나 내삼문(內三門)으로 들어가면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나타난다. 내삼문의 돌기둥 아랫부분 신방석에 새긴 해태의 표정과 모습이 고졸하고 익살맞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맞배지붕을 한 자그마한 건물이다. 이 안에 충무공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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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이순신 장군 영정

충렬사에는 진귀한 보물이 있다. 바로 ‘명조팔사품’(明朝八賜品)이다. 명조팔사품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우러 왔던 명나라 수군 도독 진인으로부터 이순신의 빼어난 전공을 보고받은 명 황제 신종이 이순신에게 보냈다는 8가지 보물을 말한다. 도독인 하나와 호두령패 한 쌍, 귀도 한 쌍, 참도 한 쌍, 독전기 한 쌍, 홍소령기 한 쌍, 남소령기 한 쌍, 곡나팔 한 쌍으로 이루어졌다. 신관호가 이를 8폭의 그림으로 그린 ‘명조팔사품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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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식당 멍게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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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미륵산(461m) 정상까지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스카이워크 전망대 오르면 통영 시내와 바다 등 탁 트인 풍경을 둘러볼 수 있다.

여행메모

  1. 가는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통영에 가려면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대전까지 간 다음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통영나들목에서 빠져 도심으로 들어선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나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4시간15분 정도 걸린다.
  2. 가볼곳 : 미륵산(461m) 정상까지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다. 1975m의 길이로, 이동하는 길과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통영 시내와 바다 등 탁 트인 풍경을 둘러볼 수 있다. 상부 승강장에서 내려 나무데크 길을 따라 10분쯤 오르면 정상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섬들이 옹기종기 떠 있는 파란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멀리 대마도까지 보인다. 통영 ‘스카이라인 루지’도 인기다. 리프트를 타고 출발지점으로 올라간 뒤 특수하게 제작된 썰매를 타고 내리막을 질주하는 레포츠다. 꼬불꼬불한 길을 스릴있게 내려오면서 통영시와 바다, 주변 섬이 조화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3. 잠잘곳 : 최근 통영에 스탠포드호텔앤드리조트가 새로 생겼다. 246개 객실 모두 전용 테라스를 갖추고 있어 탁 트인 전망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만끽할 수 있다. 객실에 누워 일몰과 일출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통영=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2019.08.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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