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쓰면 잘 쓸 수 있을까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은 삶의 대척점이 아니라 삶이 반드시 마주해야 할 일부분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죽음 앞에 있는 세일즈맨의 삶이 궁금해진 까닭도 같은 이유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주인공인 세일즈맨 윌리는 죽음을 보고 삶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는 평생 보험료를 내기 위해 돈을 벌었다. 자신의 위상이 흔들린다고 느낄 때는 화려한 장례식을 상상하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는 흡사 죽음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25년동안 주택 할부금을 갚으려 일을 계속 했지만 정작 온전히 그의 것이 된 집에서 그는 하
문서 작업을 하다 보면 실수로 엑스 버튼을 누를 때가 있다. 아차 싶은 순간보다도 빠르게 당신은 문서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컴퓨터는 한 번의 기회를 주며 의사를 되묻는다. “정말 종료하시겠습니까?” 예 또는 아니오를 누르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인생에도 팝업창이 뜬다면 과연 나는 취소 버튼을 눌렀을까.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다보면 ‘그때로 돌아가면 그렇게 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현재 상태를 저장하시겠습니까?”에 아니오를 누르고 다시 처음의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 말이다. ‘환도열차’
“우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소?” 명성황후는 아련한 목소리로 호위무사에게 물었다. 호위무사는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머뭇거리는 그의 뒷모습은 무언가를 감추는 듯 하다. 이마 위로 바싹 묶어 맨 머리띠의 장미 문양은 명성황후를 향한 사랑과 헌신을 묘사하듯 강렬하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아니다. 창작 20주년을 맞은 뮤지컬 명성황후의 한 대목이다. 그런데, VIP석에 앉아서 공연을 본다 한들 배우의 눈동자와 떨리는 뒷모습까지 느낄 수 있을까? 배우의 의상까지 자세히 살펴보는 건 더욱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SAC on Screen
새해가 밝았다. 이맘때면 늘 그렇듯 올해의 운세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재미로 한 번 들여다봤다가도 별 것 아닌 한 문장에 마음이 들렸다 내렸다 한다. 하지만 본인의 미래는 스스로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고, 현재는 미래의 자화상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의 미래가 궁금할수록 시야를 넓게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되곤 한다.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중인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베이컨까지’는 그런 점에서 올해 관람할 첫 전시로 추천할 만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1세기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 당대를 빛냈던 화가
무대엔 4개의 책상이 놓여져 있다. 책상을 오가는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장면이 연출되고 이야기가 흘러간다. 장면과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역할은 바로 스탠드다. 스탠드가 켜지는 책상이 무대 안의 무대가 된다. 한 책상에서의 장면이 끝나면 배우는 스탠드 불을 끄고 다른 책상의 불을 켠다. 그리고 거기서 이야기가 연결된다. 클라우디오라는 17살 학생이 문학 선생님 헤르만의 지도를 받으며 멈추지 못할 소설을 써나가는 것이 연극의 골자인데 무대에서 보여지는 것이 현실인지 혹은 소설 속 내용인지를 분간하는 데 유일한 힌트가 되는 것은 초
서필훈 대표는 올해로 11년 째 커피를 하고 있다. 정말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고 지난 10년 동안 커피에만 빠져 지냈다.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도 10년의 시간 정도면 질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커피가 싫증난 적이 없냐고 묻자 그는 1초도 안되어 자신 있게 답했다. “아니요. 한 번도 없어요.” 나도 매일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한 잔의 여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커피의 어떤 점이 그렇게 특별했던 걸까. 필 : 제가 콤플렉스 같은 게 진짜 없는 인간이에요. 근데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다면 제가
달이 맨 처음 뜨기 시작할 때부터 준비했던 여행길을 매번 달이 차오를 때마다 포기했던 그 다짐을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워어어어어어 워어어어어어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 있는 가사다. 달을 보며 다짐했지만 지키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지새우고'를 만났을 때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두 자매는 20대의 나이에 쉽게 할 수 없던 결정을 했고 지새우고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달이 점점 차오르는 모양이 박힌 명함에는 본인들을 '지새우는 자매'라고 소개했다. 자매가 하고 있는 일은 나도 한
시간에 맞춰 도착한 마르쉐@혜화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어리둥절 하면서도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들어왔다. 염탐을 하던 우리에게 옆에 있던 봉사자 한 분이 넌지시 충고를 던졌다. "저 집 케이크가 정말 맛있어요 꼭 드셔보세요." 우리는 당장에 마르쉐@에서 빌린 그릇과 포크를 들고 'PPURI'의 케이크를 맛보려는 대열에 합류했다. PPURI는 채식주의자 부부(강대웅,이윤서)가 운영하는 가게의 이름이자 그들의 브랜드이다. 몸에 좋은 건 맛이 없다는 통념을 깨고 '맛도 좋은' 건강식들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