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먹어치우는 상상, 연극 '맨 끝줄 소년'

[컬처]by 계란비누

무대엔 4개의 책상이 놓여져 있다. 책상을 오가는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장면이 연출되고 이야기가 흘러간다. 장면과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역할은 바로 스탠드다. 스탠드가 켜지는 책상이 무대 안의 무대가 된다. 한 책상에서의 장면이 끝나면 배우는 스탠드 불을 끄고 다른 책상의 불을 켠다. 그리고 거기서 이야기가 연결된다.

현실을 먹어치우는 상상, 연극 '맨

클라우디오라는 17살 학생이 문학 선생님 헤르만의 지도를 받으며 멈추지 못할 소설을 써나가는 것이 연극의 골자인데 무대에서 보여지는 것이 현실인지 혹은 소설 속 내용인지를 분간하는 데 유일한 힌트가 되는 것은 초록색 스탠드 불이다. 불이 켜진 책상에서의 상황은 현실, 불이 꺼진 책상에서의 상황은 소설. 하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부터 분간이 어려워지고 불이 켜진 책상에서의 상황이 진짜인지 불이 꺼진 책상에서가 진짜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현실과 상상의 분간을 잃어가는 건 헤르만과 클라우디오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그럴수록 연극은 더욱 강력하게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혔어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처럼.”

 

-박윤희 (헤르만 역)

현실을 먹어치우는 상상, 연극 '맨

왼쪽부터 김동현 연출가, 배우 박윤희(헤르만 역), 배우 전박찬(클라우디오 역)

사실 연극 ‘맨 끝줄 소년’은 후안 마요르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인 더 하우스’라는 영화로 2013년 국내에서도 개봉했었다. 영화 같은 시나리오니까 영화가 훨씬 잘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동현 연출가는 영화와 연극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영화와 연극은 근본적으로 달라요. 극장성, 무대에 대한 인식, 극장의 이야기를 봤으면 하는 거에요. 사실은 무엇이고 보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연극의 고유성’에 집중하는 거죠.”

“제 연극은 영화보다 재미가 없어요. 어렵죠. 근데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김동현 연출가

클라우디오는 헤르만이 문학시간에 내준 일기 과제에서 헤르만의 눈에 띄게 된다. 클라우디오가 일기로 쓴 것은 자신의 일상이 아닌 같은 반 친구 라파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는 클라우디오의 일기를 보며 불쾌하다고 연신 화를 내지만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작문력에 강하게 끌린다.

현실을 먹어치우는 상상, 연극 '맨

헤르만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있었지만 끝내 자신의 한계에 굴복해버렸다. 그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아내를 비아냥 거리며 마지막 남은 자신의 고집을 지키려 애쓴다. 아내를 무시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키워가던 헤르만 이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서 비롯한 결핍은 결코 해소되지 못했다. 그건 결국 클라우디오에게 투영되어 욕심이 되었고 파멸의 씨앗이 되었다.

“작품 속 헤르만이 딱 저 같더라고요. 굉장히 집요하고 독선적인 사람이에요. 자기 생각만 하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주위 것들은 잘 보지 않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연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박윤희 (헤르만 역). ‘위험한 글쓰기' 속 현실과 상상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클라우디오는 헤르만의 욕망에 끌려가지만은 않는다. 어쩌면 처음부터 헤르만을 기만하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대범한 인물일 수도 있다. 글을 쓰는 것에 흥미가 커질수록 클라우디오는 라파의 가족에게 더욱 깊이 침투하고 글을 쓰기 위해 갈등을 만들려고 까지 한다.

“후안 마요르가의 원작을 읽고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어려운 점이 많아요. 인물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극중에 등장하는 허수와 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도 따로 공부했어요.”

 

-전박찬 (클라우디오 역)

현실을 먹어치우는 상상, 연극 '맨

글의 전개를 위해 라파의 가족에게 갈등을 유발하려는 클라우디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라파의 엄마에게 접근한다.

클라우디오는 자신이 쓴 소설(일기로 시작했던 라파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허수’라는 제목을 붙이길 원한다. 중상류층에 속하는 라파 가족의 불완전성에 대한 조롱이 담긴 제목이다. 허수는 ‘가짜’를 붙잡아 놓기 위한 형식적 ‘진짜’이다. 실체의 반대말이지만 허수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직 상상으로 채워질 뿐. 클라우디오가 글의 힘을 빌려 그것에 실체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그가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에는 처음처럼 4개의 책상이 덩그러니 남았다. 하지만 더 이상 무대는 휑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105분 동안 쉼 없이 자극된 상상력은 무대를 온통 채웠다. ‘맨 끝줄 소년’은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판으로 무대와 객석의 선을 넘게 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는 맨 끝줄 이었고 관객들은 어느새 클라우디오가, 헤르만이, 되어 있었다.

“위대한 연극, 가장 좋은 연극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

글 계란비누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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