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찍는 '종이의 집'을 습격하라…화폐 만드는데 돈 얼마들까?

[비즈]by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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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베를린, 도쿄, 헬싱키…."


우리 8명은 도시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신원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는다. 왜냐고? 마드리드 조폐국을 털기 위해서다. 몇 달간 숙식하며 '교수'의 작전을 배우고 훈련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가면과 총을 나눠 가진 뒤 조폐국으로 향한다. 단순히 돈을 터는 게 아니다. 이곳을 장기점거하면서 24억 유로(약 3조2966억 원)를 찍어 이를 나눌 계획이다. 우린 성공적으로 계획을 마칠 수 있을까.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 '종이의 집' 내용 일부다. 종이의 집은 시즌 1에서 마드리드 조폐국에 이어 시즌 3에서는 스페인 국립 준비은행 지하 30m에 보관된 95톤의 금을 털려고 한다. 기존에 은행에서 돈을 훔쳐 달아나는 강도들과는 규모가 다르다. 액수도 어마어마하다.

"은행을 털어라"…국내외서 발생한 '현실판' 종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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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국내에서 화폐를 발행하는 곳은 '한국조폐공사'다. 아직 무모하게 이곳을 털려고 침입한 사람은 없다(그래서도 안 된다). 그 대신 은행강도는 종종 일어난다. 종이의 집처럼 돈 일부라도 가지고 가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 곧바로 체포돼 법의 심판을 받는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지난해 12월, 40대 회사원이 서울 도봉구에 있는 한 금융기관 지점에 들어가 흉기를 꺼내 들고 돈을 뺏으려고 했다. 같은 은행에 있던 시민이 의자를 집어 들며 저항하자 도주했지만, 며칠 뒤에 경찰에 붙잡혔다.


2018년 경북 영주의 한 새마을금고에서는 흉기를 든 복면강도가 침입해 4300여만 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복면강도는 은행원 2명에게 검은색 여행용 가방을 내밀며 돈을 담으라고 요구했다고. 돈이 담긴 가방을 받자마자 은행이 있는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옆 건물 담을 넘어 인근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났다. 하지만 이들 역시 경찰에 붙잡혀 특수강도 등으로 기소됐다.


해외에서도 은행강도는 이따금 발생한다. 2018년 12월, 아문센 등 북극 탐험가들의 전진 기지로 사용됐던 지구상 최북단 도시인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의 롱위에아르뷔엔에 있는 은행에 강도가 침입해 돈을 강탈해 달아났다. 이곳에서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강도는 얼마 안 돼 시내에서 체포됐다.

은행 아닌 '돈 찍는' 조폐국 노린 종이의 집…화폐 만드는데 얼마나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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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한국은행(박서준 인턴기자 yahoo1221@)

종이의 집에 나오는 강도들은 은행이 아닌 조폐국을 노린다. 조폐국은 말 그대로 돈을 직접 만드는 곳이다. 강도들의 뜻대로 된다면 많은 돈을 찍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추적도 어려워 '한 방'을 노릴 수 있다.


국내는 한국조폐공사가 있다.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량을 결정하면 거기에 따라 화폐를 직접 만드는 국내 유일의 제조공기업이다. 우리가 쓰는 돈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뿐만 아니라 기념 화폐, 수표, 증권과 채권 등 유가증권, 백화점 상품권, 재래시장에서 쓰는 온누리 상품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이 발행하는 지역사랑 상품권 등도 만든다. 기념 메달과 기념주화, 올림픽 시상 메달, 정부가 수여하는 각종 훈장과 포장 등도 제조한다.


'돈을 찍는 곳'이지만 이를 위해서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1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화폐 제조를 위해 쓰였다. 이 기간에 발행한 화폐 금액은 179조6272억 원이다. 2018년에는 화폐 제조 비용이 역대 최소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체크카드와 'OO페이'의 보급으로 현금 사용량이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폐기되는 화폐량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찢어지거나 더러워져서 폐기한 화폐는 6억1400만 장으로 4조3516억 원이 폐기됐다. 이를 낱장으로 쌓으면 총 높이가 65.2km에 달한다. 이는 롯데월드타워 높이의 117배, 백두산의 24배,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의 약 7배 수준이다. 폐기한 동전만 추산해보면 약 2600만 개로 약 24억 원에 이른다.

한국조폐공사 보안 수준, 청와대와 대등…금 보관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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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는 '특급보안'을 자랑한다. 이곳은 국가보안시설(가급)로 청와대나 정부종합청사 등과 대등하다. '국가 중요시설 지정 및 방호 훈령'에 따르면 적에 의해 점령 또는 파괴되거나 기능 마비 시 광범위한 통합방위 작전 수행이 요구되고, 국민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설은 가급으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지도의 위성 사진에도 나오지 않는다. 경북 경산시에 있는데 현지 주민들도 잘 모른다고.


'캐시리스 사회'가 도래하면서 한국조폐공사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폐공사는 기념주화 제작, 위·변조 기술의 민간기업 확대, 해외시장 공략 등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여권, 주민등록증 등 국가 신분증도 주축 사업이라 이곳이 사라질 가능성은 작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원하는 공기업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말도 있다.


드라마 '종이의 집'의 두 번째 목표물인 '금'은 어디서 보관하고 있을까. 2019년 2월 기준,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47억9000만 달러(약 5조7877억) 수준이다. 무게는 104.4톤, 금괴 개수로는 약 1만 개다. 그런데 이 금은 국내에 없다. 모두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대담하게(무모하게) 금괴를 노릴 사람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영국에 있는 금을 털러 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그것이 아니더라도 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드라마, 영화와 우리 인생사는 다르다. 두 번 반복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투데이/홍인석 기자(mystic@etoday.co.kr)

2020.06.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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