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위한 안드로이드 고, 우리에게도 좀.

[테크]by 김국현
인도를 위한 안드로이드 고, 우리에게

안드로이드는 벌써 20억 명의 손안에 들어 있다. 안드로이드에게는 “다음 10억(Next billion)”이 목표. 그렇다면 이제 소득 피라미드의 하단을 공략할 차례인데, 이들이 알차게 모여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인도다. 그래서인지 구글은 요즈음 인도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저 조직 상층부에 인도인이 많아서만은 아니었었다.

 

“Google for India”라는 연례행사를 개최하고, 인도의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를 하기도 한다. 배달 등 심부름을 하는 위치 기반 업체에 투자한 것으로 보아 IT의 힘으로 인도인의 생활을 제대로 바꿔 보겠다는 심산 같다. 아예 구글이 직접 인도에 특화된 지도앱이나 결제앱(Tez)을 직접 내놓기도 한다. 인도의 온라인 인구는 벌써 4억 명. 굉장한 속도로 증가 중인데, 이 정도 인구 규모의 삶을 안드로이드가 지탱하고 싶은 것.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아직은 폰도 인터넷도 너무 비싸다는 점. 지난주 초경량 OS, 안드로이드 고(Go)의 오레오 버전이 바로 인도에서 세계를 향해 발표되었다. 안드로이드 고 구상은 이미 올봄의 구글 IO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드디어 그 첫 번째 실물이 등장한 것.

 

그나저나 고(Go)라는 단어를 구글은 애용하기 시작했는데, 프로그래밍 언어 고에서 알파고, 그리고 포켓몬고까지 그 용법과 용례는 참으로 가지가지다. 잘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어째 가볍게 한 번 가보자는 뜻인가 보다.

 

얼마 전 베타를 마감한 유튜브 고도 그중의 하나. 초경량 버전의 유튜브 앱으로 비디오를 화질별로 다운로드할 수도 있고, 그걸 또다시 친구에게 블루투스로 보낼 수도 있는 등 데이터가 귀한 상황에서는 탐나는 기능이 가득하다. 하지만 인도나 인도네시아 등의 개발도상국에서만 공개하고 있으니, 고의 비전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명백히 알 수 있다.

 

고의 타겟마켓은 인도처럼 염가형 하드웨어를 찍어내 보급해야 할 동네들이다. 512MB에서 1GB 램 메모리를 지닌 저가 기종은 이미 한국에서는 종적을 감춘 지 오래이지만, 단돈 만 원이라도 단가를 낮춰 박리다매해야 하는 시장에서는 남다른 절약 정신이 필요하다.

 

이번 ‘오레오’ 고(Go)의 기본 용량은 전작인 ‘누가’의 풀 용량에 비해 같은 기종 기준으로 반 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 유튜브 고처럼 다양한 구글 순정앱 들을 반절 용량으로 줄인 특별판 고 앱들을 동시 제공한다. 앱의 용량 다이어트는 궁핍한 폰일수록 그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예컨대 저장 용량이 8GB밖에 없는 기종의 경우 고 버전에서는 실사용 공간이 2배로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플레이스토어도 고 버전으로 나와서 각종 경량 앱들을 먼저 노출해 줄 모양이다. 또 크롬에서 그간 봐 왔던 데이터 세이버 기능을 OS 전체에 확대 적용하게 되어 본격 짠돌이 라이프를 구가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그저 기능을 덜어낸 것만은 아니다. 구글 어시스턴트 등 최신 기능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고 버전의 목표. (구글 어시스턴트는 그간 최소 램 사용량이 1.4GB나 되는 무거운 앱이었다)

이에 찬동하듯 퀄컴이나 미디어텍 등 칩 업체들이 공식 지원을 발표하는 등, 개발도상국 시장에 최적화된 저가 단말은 양산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미니멀리스트적 접근이 필요한 것은 지갑 여유를 떠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지만, 한국에서 유튜브 고가 막힌 것만 보아도 모두에게 활짝 열어줄 것 같지는 않다. 여유 있는 이들은 데이터든 단말값이든 펑펑 써주기를 기대할 테니까. 늘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을 것 같은 한국인의 일상에는 유튜부 고 대신 유튜브 레드 홍보가 어울린다 생각한 듯하다.

 

안드로이드 고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책상 서랍에서 잠자고 있는 1GB 미만의 구형 폰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골동품에 안드로이드 고가 깔릴 수 있다고 낙관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아직 그저 기대일 뿐이다.

 

안드로이드는 윈도우와는 달리 먼지 좀 털어서 CD 넣고 깔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는 각각의 기종에 맞게 제조사가 조율을 충분히 해줘야 비로소 탑재가 가능한 제품.

 

하지만 윈도우와는 또 다른 안드로이드의 특성이 여전히 희망을 주기는 한다. 안드로이드는 바로 오픈소스, 즉 AOSP(Android Open Source Project)로 바로 공개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 여러분의 구형폰 기종을 소지한 이들 중 한가로운 독지가가 있다면 AOSP를 활용한 안드로이드 고 커스텀 롬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 일이다.

 

최신폰에 비하자면 몇 분의 일의 성능과 용량밖에 안 되는 간소한 폰을 쥐어보자. 지금은 없을 테니 그럼 상상해 보자.

 

비좁지만 텅 빈 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란 것도 또한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고(Go)... 

그러한 미니멀리즘의 열반으로 가자는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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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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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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