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득하고 쫄깃한 키보드의 추억

[테크]by 김국현
쫀득하고 쫄깃한 키보드의 추억

오는 20일 삼성전자의 신형 폰들이 등장한다. 대화면 폰의 원조답게 예상대로 5.7인치의 큼지막한 화면으로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아이폰 6+보다 0.2인치 크지만 가로가 짧아 손에 잘 잡힌다는 것.

 

그러나 예측 가능한 선형적 발전은 화제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더 빨라지고 넉넉해졌겠지만 지금 폰들은 대부분 충분히 빠르고 유복하다.

 

시장의 관심은 어떠한 돌연변이가 일어났느냐로 향할 수밖에 없다. 진화란 결국 유익한 돌연변이가 천천히 쌓여간 것. 시장에서의 유익한 돌연변이란 곧 혁신. 그리고 그 유익한 돌연변이는 시장의 모방이라는 유전에 의해 후세에 전해진다. 폰들은 살아남기 위해 커지고 있다. 아니 커진 폰들만 살아남은 것이다.

 

그런데 사라진 것으로만 여겨졌던 ‘키보드’라는 형질이 폰에 다시 발현되고 있다. 우선 이번 삼성의 발표에서 화제가 된 것은 순정 액세서리. 삼성이 직접 쿼티 키보드 커버를 발매하기로 한 것. 써드파티에서 블루투스 키보드 등이 외장형으로 나오는 일이야 흔했지만, 순정 액세서리로 주력 제품 런치와 동시에 라인업을 이루는 일은 처음이다. 게다가 번잡한 블루투스도 아니라 키를 누르면 화면 밑을 대신 눌러 주는 역발상 구조라 배터리도 필요 없다.

 

우리가 아는 전화기에는 숫자키나 쿼티 등 키보드가 언제나 달려 있었다. 수업중 책상 밑에서 또는 운전하면서 화면도 보지 않고 문자를 보내는 몹쓸 짓의 추억도 바로 이 키보드 덕분이었다.

 

블랙베리는 이 키보드 문화의 정점에 있던 기업이었다. 지나고 나니 좋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아이폰의 등장과 큰 화면 중시의 트렌드 덕에 이 쿼티종들은 멸종에 이르렀다. 하지만, 쫀득하고 쫄깃한 그 손맛을 그리워하고 또 잊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삼삼오오 호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그리고 풍요 속에 포화되어 버린 스마트폰 시장, 무엇이 혁신인지 가물가물해지는 이 시기이기에 이 손맛의 그리움에 호소하려는 전략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요즈음 심심하던 LG전자는 숫자 텐키형 플립스마트폰의 수출을 시작했다. 더 심심해하고 있던 블랙베리는 슬라이드형 쿼티 안드로이드폰 ‘베니스’를 하반기에 투입한다는 풍문이다. 게다가 블랙베리로서는 사운을 건 고사양 주력제품이다. 두근두근한다.

 

천편일률적인 스마트폰 시장, 곧 변화의 바람이 불까? 천편일률 스마트폰 시장을 만든 장본인인 아이폰도 다른 식으로 동참할지도 모른다. 아이폰 6S에 ‘탭틱(Taptic)’ 엔진이 탑재된다는 뉴스에 키보드 애호가들은 새로운 손맛을 줄지도 모른다고 마음대로 기대하기 시작했다. 신형 맥북의 트랙패드에 탑재된 이 탭틱 기능은 고정된 유리를 누름에도 딸깍 눌려진 듯 착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화면위의 키보드에도 이 느낌을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마우스 클릭과 키보드는 엄연히 다르니 섣부른 기대는 금물.

 

아하!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타자‘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여하튼 퇴화인지 진화인지 지금 손맛을 둘러싼 돌연변이가 다시 한 번 시작되려 하고 있다.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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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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