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의 미래학

[테크]by 김국현
셀카의 미래학

요즈음 스마트폰의 최대 차별화 포인트는 셀카인 듯싶다. 아이폰 X이나 갤럭시 S9는 말할 것도 없고, 통칭 셀카폰으로 다크호스가 된 중국의 오포(Oppo)는 더 본격적이다. 인공지능 뷰티 센서가 탑재되어, 성별·연령·피부톤 등을 분석해서 미안(美顔) 보정을 해준다. 눈 크기나 윤곽 등까지 자연스러운 성형이 화면상에서 이뤄지는데, 과연 인공지능답게 저지능 앱들처럼 주변부가 왜곡되어 티가 나는 일도 없다. 사진이란 역시나 현실에 대한 작가적 해석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브랜드를 건 작가적 해석 덕에 오포는 이 셀카폰의 명성을 등에 업고 글로벌 5위의 업체가 되었다. (4위였다가 최근 샤오미에게 밀렸다.) 이 성공 사례 때문인지 한국에서의 아이폰 X 광고는 오로지 셀카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정작 그 셀카 모드는 아시아인에게는 효과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셀카는 어느새 폰에서 가장 중요한 스펙 중 하나가 되어 버렸음을 알 수 있는 일화들이다.

 

그도 그럴만하다. 구글 포토가 지금으로부터 2년여 전, 당시 탄생 1주년을 맞아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출시 1년 만에 업로드된 셀카의 수가 무려 240억 장이었다. 인류는 자기 자신을 찍는 것을 이렇게나 좋아했었다.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우리는 매달 24장의 셀카를 찍는다고 한다. 어린 밀레니얼 세대가 전체 중 절반 넘는 셀카를 양산하고 있지만, 40대의 X세대도 20% 넘게 차지한다. 오히려 이쪽이 놀라운 수치다. 40대 아저씨들도 꽤나 셀카를 찍어 대고 있었다.

 

사실 승인욕구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남들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며 정보를 공유하는 일 중 셀카란 가장 간편한 방식 중의 하나다. 마치 사진에 낙관을 찍듯, 풍경 사진에 굳이 없어도 되는 자기 얼굴을 박아 넣는 인증샷은 아저씨들의 페이스북에 차고 넘친다.

 

셀카. 이 정도면 거의 인류적 신드롬이다. 

 

셀카 유행에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집착이나 과대평가의 심리가 작용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현실을 깨닫고 이 심리에 브레이크가 걸릴 즈음에는 SNOW 등 성대하게 꾸밀 수 있는 앱을 동원하여, 현실을 감추고 이상의 외모로 즉각 수정해 갈 수도 있다. 일종의 버추얼 화장술인데, 특히 각종 아이템으로 코를 가리기만 해도 인상은 많이 달라진다. 현실에서 타인을 만나는 일보다, 온라인상에서 ‘프사’로 만나는 일이 많은 21세기, 셀카란 일종의 거울이자 화장이 된다.

 

그러다 보면 역효과가 나기도 하는데, 셀카에 비치는 내 모습에 탐닉한 나머지, 셀카야말로 곧 나 자신의 상징이라 생각해 버리고 이에 감정이 흔들리는 것. 

 

30cm 거리에서 셀카를 찍으면 코가 30%나 커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셀카가 주는 불만을 가지고 성형외과를 찾는 이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 미국 성형외과협회의 최근 조사다. 거리와 각도에 따라 피사체의 왜곡이 일어난다는 것이 광학의 상식이지만, 내 마음은 상식보다 내 눈에 보이는 내 얼굴의 단점에 더 흔들린다. 

 

피사체의 왜곡은 역이용되기도 한다. 가장 셀카가 잘 찍히는 각도와 조명, 그리고 앱에 의해 찍어내는 버추얼 화장술 덕에 인스타그램의 미남·미녀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 덕에 개성과 다양성이 확산되는 대신 미의식의 균질화와 동조압력이 커진다. 그리고 이로부터의 편차만큼 자기를 부정하고, 이를 수정하려는 집착이 늘어난다. 적당히 거울을 보는 일은 명상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거울로 둘러싸인 방안에 감금된다면 정신을 붙잡고 있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사진으로라도 나를 기록하고 싶은 욕구는 일기를 쓰는 것처럼 건전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우리는 객관적인 시점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찍는 방법을 모색해 갈 듯하다.

 

우선 도구가 필요한데, 셀카봉은 그저 팔이 길어졌을 뿐, 시점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확실히 달라지는 것은 셀카 드론이다. 최근 공개된 MIT 출신 벤처기업 Skydio의 R1 같은 제품은 나를 기억하고 자율 비행으로 쫓아다닌다.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그 엔비디아 칩이 들어간다. 마치 생활 예능 속 연예인을 전담 마크하는 카메라 스태프들처럼. 이제 제3자적 시점은 주관적인 기억이 아닌 객관적인 기억으로 추억을 재구성해줄 것이다.

 

한편 나는 요즈음 거리 곳곳에 도포된 CCTV를 셀카 대용으로 쓸 수는 없는가 공상하고 있다. 이미 집 밖만 나서면 촬영되고 있는 세상. 저 안에 찍힌 피사체가 나라면, 피사체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 CCTV 밑에 QR코드가 찍혀 있다면 이로 접속하여 특정 일시의 내 모습을 공유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일종의 클라우드 셀카랄까. 

 

CCTV 앞에서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 10주년을 맞아 10년 전 그 장소의 추억을 함께 보는 일도 할 수 있다. 어색하게 팔과 셀카봉을 들고 억지 표정을 짓는 대신, 타인의 눈에 비친 진짜 나를 다운로드한다. 그리고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아니라, 무심히 걸어가는 쓸쓸한 나의 뒷모습을 보고 나를 사랑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는 법이다. 인스타그램 속에서만 완벽한 내가 아닌, 현실에 뒤엉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담긴 그 풍경을 사랑하는 날, 마치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추억 속 한 컷을 보내오듯 동사무소가 추억 속 CCTV 컷을 보내올 수도 있다.

 

셀카가 유비쿼터스해지는 날 전면 카메라는 이제 원래의 용도로 되돌아간다. 자아의 과시가 아닌 타인과의 대화를 위한 장치로. 전면카메라는 나를 보는 순간 내 안색을 살핀다. 의료의 문턱이 낮아져 누구나 주치의를 클라우드에 두는 시대. 셀카가 말해 주는 정보는 많다. 심지어 동공의 움직임이나 팽창 여부로 상대방의 심리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내 얼굴 밑에 나의 심리가 자막으로 깔리게 되는 날, 서로의 오해는 줄고 더 열린 세상이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날의 셀카 문화란 이렇게 모두가 모두를 새로운 방식으로 기억하게 될 세계의 시작점에서 벌어지는 과도기적 현상일 것이라는 점이다.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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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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