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시청각보다 촉각에 투자할 때입니다

[테크]by 김국현
그렇다면 시청각보다 촉각에 투자할 때

시청각의 시대다. 시각적 자극을 얻기 위해 그 작은 화면에서 조금도 눈을 떼지 못하고, 정보와 음악에 집착한 나머지 귀에 늘 무언가를 꽂고 있으려 한다. 비단 현대적 현상만도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자극하기 위해 만든 모든 것들, 심지어 예술도 오로지 시청각에만 의존해 왔다.

 

더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후각이나 촉각 등에서 영감을 찾는 일을 우리는 덜 미적(美的)이라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이를 예술이나 미디어 산업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기술이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궁극의 명품을 나타내는 조건으로 질감과 향기를 빼놓지 않는 것을 보면, 시청각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자극과 쾌감이란 여실히 존재하는 법이다. 구강점막의 예민한 촉각으로 사물을 확인하고자 뭐든지 입으로 가져가는 영아의 행동을 보면 인간이라는 생명체도 어쩔 수 없는 촉각의 동물이다.

 

아무리 이 시대가 촉각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처럼 시청각 정보를 쏟아내고 여기에 탐닉해도 어딘가 아쉽다. 스크린 너머에서 깜빡이는 말풍선 속 친구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은 것 같지만, 이에 익숙해질수록 정작 두 손을 잡고 이야기할 일은 줄어든다.

 

아직 스마트 기기를 신체 기관으로 삼을 만큼 진화하지 못한 인간의 신체가 그리워하는 것은 “터치”이건만, 우리 시대에 터치라는 단어는 유리를 만지는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유리를 터치하는 일은 기분 편한 촉각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種)이 그런 것을 기분 좋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아직 세월은 흐르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런데도 유리를 터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첨단이라고 주장이라도 하려는 듯, 이 유행은 심지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생활 가전에도 점점 퍼져서, 현관문 번호키, 밥솥, 보일러, 전자레인지 등 안 퍼진 곳이 없다.

 

그 결과, 물 묻은 손이나 장갑을 끼면 터치가 안 되고, 또 그나마도 한 번에 안 되어 몇 번을 누르게 만드는 절망적 인터페이스를 양산하고 말았다. 신제품과 함께하는 집안일 도중, 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종래처럼 버튼으로 누르고 다이얼로 돌리는 차진 손맛이 벌써 손끝에 그립다. 다이얼이나 버튼에는 기계라는 역사적 전통이 주는 익숙함이 있다. 누르는 일 돌리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손은 기억하고 있다. BMW 등 고급차에 왜 여전히 다이얼이 남아 드드득 손맛을 주는지 생각해 보면, 운전처럼 동물적 운동 신경에 가까운 활동에 있어 촉감 없는 터치 인터페이스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지난 10년 스마트폰은 전화기에서 버튼과 다이얼을 성공적으로 없애버렸다. 하지만 촉각이라는 원천적인 감각마저 잊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시청각으로 현실을 대체하려는 다양한 시도는 결국 촉각을 흉내 내는 일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아무리 우리가 유리를 어루만지는 일에 익숙해져도 여전히 가끔은 공허해지는 탓은 이 차가운 소재에는 하물며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도 느낄 수 있는 포근함도 생동감도 없기 때문이다.

 

VR을 보자. 시청각만으로도 우리는 쉽게 몰입하고 멀미까지 하지만, 완전한 환각의 지경에 다다르지는 못하는데, 여기에 더하려는 비전의 조미료가 바로 촉각이다. 이제 촉각도 비디오나 사운드처럼 가상으로 만들어진다. 촉감이란 소재의 절대적 정보가 아닌 결국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라서다.

 

우리 표피에는 초고도 촉각 센서들이 풍성히 탑재되어 있다. 바로 메르켈 세포라는 것으로, 피부가 눌린 압력은 물론 닿은 부분의 굴곡 등의 형태까지 느끼는 세포다. 하지만 센서들이란 결국 전기·기계적 자극으로 속일 수 있는 일. 우리 피부에 적당한 압력과 진동을 생성해 이에 반응하는 여러 종류의 센서 세포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촉착각의 연구는 그 역사가 깊다. 벨벳 핸드 일루젼(VHI)이라는 현상은 철사 두 세 줄을 팽팽히 한 후 양손을 포개 쓸어내리면 벨벳을 만지는 착각을 말한다.

 

이러한 환각(일루젼)을 산업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햅틱(Haptic, 촉각적인)’ 분야인데, 진동으로 소재의 질감을 표현하고, 압력을 변화시켜 딱딱함을 표현하는 등, 압력, 진동, 온도, 정전기 등 세포를 속일 자극을 실시간으로 프로그래밍해 생성한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노트북의 탭틱엔진(Taptic=Tap+Haptic이라는 애플의 조어(造語))은 분명 고정된 유리판을 누르는데도 꾹 클릭한 듯한 기분을 준다.

 

이제 아예 노트북을 상하 2 화면으로 만들어 유리를 두드리게 할지 모른다는 예측이 루머로 흘러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그런데 노골적인 시청각 환각 장치인 컴퓨터 중 유일하게 아날로그 감성으로 손을 잡아주던 촉각의 영역마저 가상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허하다.

 

촉각은 추억과도 같다. 촉각을 나타내는 무수한 언어를 떠올려 보자. 끈적끈적, 미끈미끈, 구덕구덕, 말랑말랑. 다양한 의태어와 의성어들은 우리의 감성을 풍성히 한다. 또 촉각을 시청각으로 표현하여 그 신체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언어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서걱서걱, 몽실몽실. 촉각은 이처럼 우리의 표현력을 시험해 왔다.

 

이제 모니터나 스피커 등 시청각 장비에 투자하는 만큼이나, 촉각 장비인 키보드나 마우스·트랙패드에 투자해 보자. 번들번들해져 버린 번들 멤브레인 키보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정전용량무접점식 키보드의 키감을 말할 때 애호가들은 ‘초콜릿을 부러뜨리는 키감’이라며 뿌듯해 한다. 또 각종 기계식 키 스위치의 무게를 55g, 45g, 35g로 낮춰가며 구름 위를 치는 느낌을 애써 찾으려 하기도 한다. 키의 재질 또한 그것이 ABS인지 PBT인지에 따라 손끝의 만족도가 달라질 정도니, 최고의 키보드를 향한 열정은 오늘도 많은 이들의 용돈을 탕진하게 한다.

 

이러한 촉각의 역사와 조예를 그냥 몇 가지 강도의 진동이나 효과음으로 단순화하려 한다면 속상한 일이다.

 

만약 요즈음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의 설렘이 예전 같지 않다면, 가슴 뛰는 촉감을 잊어서인지 모른다. 지갑이라도 더듬어야 할 때다.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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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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