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19에 등장한 사족보행차. 우리는 왜 사족보행에 끌리는가?

[테크]by 김국현
CES 2019에 등장한 사족보행차.

올해도 돌아온 가전전시회 CES 2019. 현대차는 성공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현대가 선보인 것은 엘레베이트(Elevate)라는 이름의 UMV(Ultimate Mobility Vehicle) 컨셉카였다. 차체에 웅크리고 있던 관절이 펴지면서 네 다리를 가진 자동차로 변신한다. 포유류와 파충류 어떤 걸음걸이도 흉내 낼 수 있다고 하니, 길이라도 아니라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차가 막히면 옆으로 빠져서 지하철이라도 기어 내려갈 수 있을 자세다.


컨셉은 어디까지나 컨셉일 뿐이겠지만, 이 컨셉은 꽤 강렬했다. 최근 좋은 소식이 별로 없던 현대차로서는 우리 아직 죽지 않았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에는 충분한 기획이었다. 이런 물건은 보는 순간 서늘한 느낌이 강렬히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족보행의 ‘물체’라니 경계심인지 호기심인지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감정을 우리는 처리하기 바쁘다. 우리 안의 태고의 본능은 네발로 움직이는 생물에 반응하게 되어 있나 보다. 그것이 맹수이든 먹잇감이든 네발이란 먹고 먹히는 삶과 연관된 것. 관심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족보행 로봇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완성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자동차가 네 발로 걸으려 하니 당황스럽다.


최근 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관심은 직립보행 로봇인 듯 이제 재주넘기까지 잘도 한다. 직립보행은 우리와 닮은 활동이기에, 아장아장 걷는 아기곰과 펭귄처럼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들을 귀엽다고 느낀다. 인간의 정의를 영장류 중 유일하게 직립보행하는 종이라고 말할 정도로 서서 걷는 일은 인간적이다. 하지만 서서 걷는 로봇은 여전히 어딘가 위태로운 것이 사족보행의 안정감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TV 다큐멘터리에서 사족보행을 하는 터키의 가족이 소개된 적이 있다. 일종의 유전병으로 퇴행이 일어난 것인데, 직립보행이 진화의 과정이었음을 반영하는 사례라 분석되곤 했다. 그 가족은 서서 걷는 것보다 엎드려 네 발로 걷는 것이 더 편한 시절로 돌아갔다는 것.


침팬지나 고릴라는 주먹을 짚고 걷는 너클 보행(knuckle walk)을 한다. 진화에 관한 최신 가설은 인간은 너클 보행을 거치지 않고 사족보행에서 바로 이들과 갈라져 따로따로 진화했으리라는 것인데, 직립보행은 어중간하게 팔을 짚고 걷는 고릴라의 그 비효율적인 걸음걸이에 비해 1/4 만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효율은 대자연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사활문제였을 것이다. 또 서서 걸을 수 있으면 두 손이 자유로우니 물건을 옮기기도 편하다. 침팬지도 급하면 양손에 과일을 들고 입에도 물고 직립보행을 한다. 한정된 자원을 독점하려 할 때 이보다 편리한 자세는 없는가 보다.


그러나 진화란 그저 변이일 뿐,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는 직립보행이 원인이 된 병들도 함께 찾아왔다. 추간판탈출증, 무호흡증후군, 어깨결림, 심장병, 요통, 치질, 무릎관절염은 물론 난산까지도 인간이 갑자기 벌떡 서게 되면서 심해진 질병들이다.


구석기인처럼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며 한때 인기를 끌었듯이, 사족보행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볼더링(bouldering, 암벽타기), 호보법(虎步法, 호랑이 걸음 운동) 등 모두 코어와 전신 근력을 늘려 주는 운동 들이다.


진화 이전, 태고의 움직임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 거북목 ‘스몸비(스마트폰 좀비)’로 진화해 가는 21세기형 우리 몸을 조금이라도 붙잡는 길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그렇고 그 현대차는 어디에 쓰일지 궁금했다. 홍보영상은 어떠한 재난 현장에도 접근 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지구 최후의 날에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으로 나를 구하러 올 듯했다. 사족보행의 물체라니, 역시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한 법이다.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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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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