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상과 튜링법, IT와 LGBT

[테크]by 김국현
올해도 튜링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노벨 컴퓨터상'이라고도 불리는 영예의 상. 올해는 딥러닝의 선구자 3인에게 수여되었다. 수학의 필즈상 등 다른 모든 과학적 영예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한국인 수상자는 없다. 


튜링상은 그 이름처럼 현대 계산 과학의 시조, 알란 튜링을 기리며 만든 상이다. 실은 튜링상 뿐만 아니라 튜링법이란 것도 있다. 튜링은 단지 남성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죄목’으로 1952년에 유죄판결을 받는데, 수감되는 대신 동성애를 '치료'받는 처분을 선택한다. 그렇게 화학요법으로 피폐해진 그는 청산가리 묻은 사과를 깨물고 만다. 겨우 41세, IT를 만들어낸 천재는 그렇게 이름만 남기고 떠나갔다.


그는 2013년이 돼서야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사후 특별 사면되는데, 이를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유죄를 받고 고인이 된 수만 명에게도 사면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이 튜링법은 2017년에 시행된다. 하지만 애초에 죄가 아닌데 어찌 사면을 이야기하느냐며, 사면이 아닌 사죄를 원한다고 당사자의 유족들은 씁쓸해하고 있다. 


LGBT, 즉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등 성소수자들의 권리는 이러한 핍박의 역사를 거쳐 만들어져 왔다. 그나마 IT업계는 나은 편이라, 자유를 숭상하는 문화가 편견과 차별을 배제하고 마이너리티가 수용되는 집단을 만드는데 선봉이 되어 온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LGBT 평등 지수에 있어 17년간 100점 만점을 받아온 애플, 미국 대기업 역사상 첫 공개 게이 CEO가 이끄는 기업이니만큼 뛰어난 LGBT 리더쉽을 보이며 선배 기업의 본을 보이고 있다. LGBT의 인식을 바꾸는데도 적극적이어서 이미 4년 전의 iOS 8.3부터는 이모지에서조차 아이와 함께 있는 동성 부부 가족을 준비해두고 있다.


흥미롭게도 늘 점수가 좋던 구글은 이번에 보류되었는데 그 이유는 구글 플레이에서 ‘전환 치료(동성애는 치료로 전환 가능하다는 주장)’ 앱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이 사실만으로도 강한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은 앱을 내리고 말았다.


사실 이러한 치료 요법을 둘러싼 발상의 위험함을 튜링이라는 이름이 상징하고 있다. 동성애는 교정이 가능하다는 주장, 나아가 오히려 그걸 방치하는 것이 아동학대라는 주장은 여전히 다수의 상식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치료를 어린 시절에 받을수록 트라우마만 남기게 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들려줘도, 비당사자로서는 그렇게 태어나 보지 않았기에 영원히 알 수 없는, 알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일이라 어느 사회에서나 공회전 중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LGBT는커녕 인종, 국적, 종교, 성별, 장애 유무 등 더 기초적인 다양성조차 보장하지 못한 채, 획일화된 기업 전사를 육성해 왔다. 혁신의 주인공인 모난 돌이나 튀는 인재가 등장하지 못하는 원인이 이러한 집단주의에 있고, 이를 LGBT와 같은 포용력이 완화한다는 점 또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IT업계만 봐도 피터 틸 같은 억만장자 연쇄 창업자는 게이, 카라 스위셔와 같은 유명 테크 저널리스트는 레즈비언, ARM 명령셋을 처음 설계한 소피 윌슨은 트랜스젠더 여성이었다. 너무 많아서 이런 식으로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현재 거대 기업의 임원진에도 자연스럽게 포진 중이라서 호명하는 것이 무색하다. IT 기업이 가족에게 주는 혜택만큼이나 LGBT에게 주는 혜택 또한 충실하지만, 그보다도 IT는 끊임없이 현실 너머를 조준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를 꿈꾸는 이들이 모여서일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 유명한 프로게이머 사샤 호스틴도 트렌스젠더 여성이다.


이 분야 1등 애플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바로 애플의 로고다. 애플의 한입 베어 문 사과가 튜링이 자살할 때 먹었던 그 사과라는 설이다. 초기 애플 로고는 또 무지개 모양이었으니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009년 그 로고의 진짜 디자이너가 해명에 나선다.


그렇지 않다고.


실은 깨물어 먹은 한 입(bite)이 바이트(byte)를 나타낸 것도 아니고, 그저 다만 이 과일이 체리가 아닌 사과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고. 오리지날 애플 로고의 형형색색 줄무늬도 그냥 당시의 최신 유행 컬러TV의 컬러 줄무늬를 의미한 것뿐이었다고. 이런, 애플의 그 로고가 이브의 선악과도 튜링의 사과도 아닌 그냥 사과라니 이렇게 싱거울 수가. 세상의 전설 중에는 그냥 해명이 안 되는 편이 좋았을 듯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애플도 이 도시 전설을 싫어하지는 않았었던 듯,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는, “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했었다고 한다.


튜링과 튜링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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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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