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가 뭐길래. 갤럭시 폴드와 5G의 세계 최초 대소동

[테크]by 김국현
그 어떤 평행우주에서는 지금쯤이면 갤럭시 폴드가 팔리고 있을 것이다. '사실' 세계 최초는 아니지만(중국 벤처 플렉스파이(FlexPai)가 이미 작년 11월에 예약판매를 시작) '사실상' 세계 최고라고 홍보되며 얼리어댑터들의 손에 들어간 그 폴더블 폰이. 200만 원을 낼 수는 없는 나와 같은 이들은 마치 다가올 미래라도 엿보는 듯 곁눈질하거나 혹은 사지도 않을 거면서 대리점에서 들어가서 만지작거리곤 할 것이다.


지난달 말 미국에서 벌어진 리뷰 사태로 인해 갤럭시 폴드는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처음에는 이 사태를 리뷰어의 과실로 치부하려 했지만,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져 나온 문제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수리업자의 분해기사에서는 설계적 결함이 설득력 있게 주장되기도 했다. 물론 아이픽스잇(iFixit)이 보통 업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세계 최대 휴대폰 업자의 설계 능력이 수리 업자에게 보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듯해 어지간히 체면을 구긴 것이 아니었다.


물 샐 틈 없이 빈틈을 막는 것이 현대 폰의 트렌드. 아무리 굽혀져야 하는 특성 탓이라고는 하지만 먼지가 들어가는 구조였다면 사달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애플의 버터플라이 키보드 사태도 세계 최초를 향한 서두름 탓이었는지, (아마도) 먼지 때문에 고전 중이다.


이 사태 후 리뷰어들은 삼성 사내에서 아무도 테스트를 하지 않은 것이냐며, 나와서는 안 될 제품이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보호막을 뜯지 말라는 안내문이 일부 리뷰어에게 빠졌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보호막 가장자리가 언젠가는 들려 올라갈 듯 손톱을 넣어 떼어 보고 싶게 만든 생김새였다. 디자인은 결국 사용자의 행동을 부른다.


사내에서 누군가는 이 상태로는 릴리스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이 품질이 아닌 출시일의 경쟁을 위해 달리고 있다면 손들고 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히려 노트7 발화 사건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몇 번의 리뷰나 테스트로는 발견할 수 없는 물리·화학적 결함이니까. 하지만 이번 갤럭시 폴드는 수리를 가정해 뜯어봤으면, 실제로 일주일만 써봤으면 드러날 문제였다. 서두른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왜 이리 조바심을 냈을까?


실지에 있어서 출시일을 향한 경쟁은 흔한 일이다. 최초 경쟁은 우선 판단이 쉽다. 시계가 고장 나지 않은 한,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 명백하니까, 조직에게 목표로 부여하기도 쉽다. 실적을 보도 자료화하기도 쉽고 이를 받아쓰게 해 기사화되기 쉽다. 언론에서도 기꺼이 다뤄주니 이제 정말 이보다 달콤한 마케팅은 없다.


비슷한 일이 최근 세계 최초 5G 출시 경쟁에서도 벌어졌다. 미국 버라이즌이 예정보다 1주일 빨리 5G를 출시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소문으로부터 겨우 6시간 뒤에 한국은 민관합동으로 5G를 일제히 기습 개시한다. 버라이즌의 개시 시간보다 1시간 전이었다. 약이 오른 버라이즌은 한국이 최초라는 언론 발표에 맹렬히 반발하면서, 자기가 진정한 최초라고 주장했다.


이 최초라는 타이틀은 위신의 문제와 이어지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 최초' 의미는 대한민국 표준이 세계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며 강조했다. 트럼프는 이 경주에 대해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나는 미국이 가능한 한 빨리 5G, 심지어 6G 기술을 도입하길 바란다."며,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6G에 대해 트윗하기도 했다. 정치마저 이리 쉽게 '최초'와 같은 타이틀에 집착하니 이제 정말 이보다 달콤한 마케팅은 없다. 최초로 달에 가게 한 대통령처럼 기억되고 싶은 법이다.


이처럼 최초를 향한 집착은 정부나 기업에게는 끊기 힘든 버릇일지 모르지만, 시민이나 소비자에게는 어떨까? 첨단 제품에도 유통기한이 있기에, 먼저 사서 먼저 쓰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얼리어답타적 소비생활도 가능하고 또 그렇게 살아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점점 기술이 대중화되고 결국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업계로 이행할수록, 소프트웨어나 응용 분야와 같은 패션이 차별화 요소가 되는 날이 찾아온다.


한국이 세계 최초였던 MP3의 역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애플은 MP3플레이어를 아이팟으로 그리고 아이폰으로 뒤늦게 내놓았다. 아이폰은 지금도 OLED 등 각종 요소 기술도 늦장으로 채택하고, 5G폰도 빠르면 내년에나 나올 처지다. 3G나 4G도 1년이나 뒤늦게 태연히 나왔다.


사실 최초 경쟁은 소비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최초의 상품이 최고의 상품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면 바로 역전되는 것이 패션이다.


첨단 제품에도 유통기한이 있기에, 먼저 사서 먼저 쓰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얼리어답터적 소비생활도 가능하고 또 그렇게 살아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치 아침에 일어나 수도관의 침전물과 불순물을 잠깐 내려보내듯이, 첫 물은 잠시 거르는 것도 좋다.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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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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