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가 내 취향의 거울이 되는 날.

[테크]by 김국현

액정이 참 흔한 세상이다. 일본 파칭코의 중고 액정을 들여다가 전자 제품을 만들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액정 패널은 이제 귀한 몸이 아닌지, 패널 가격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왕좌를 차지했던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도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와 수익성 악화에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 미래의 디스플레이 수요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는 미래의 벽지이자 피부가 될 것이라서다.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이 미래를 꿈꾸는 듯 표면이라는 뜻의 ‘서피스(surface)'라는 제품이 있었다. 지금은 태블릿 PC가 그 브랜드를 가져가 버렸지만, 원래는 책상이나 벽에 디스플레이를 바르고 그 위에 물건을 놓기도 하고 어루만지면서 하는 컴퓨팅을 말했다. 우리 주변에 디지털 ‘표면’이 스며들 구석은 돌아보면 여전히 꽤 많다.


문제는 그 표면을 뭘로 채울지였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표면을 디스플레이로 만들어 번쩍이게 하는 것은 돈을 쓰기만 하면 되지만, 의미 있는 내용을 넣는 것은 기획력이 소진되는 피곤한 일이라서다. 따라서 대개의 표면 컴퓨팅은 어린이 박물관처럼 억지 기획이라도 가능한 곳에나 들어가는 정도에서 보통 그치고 말았다.


더욱이 이미 손 안의 디스플레이에 시선이 고정된 사람들은 굳이 그 표면을 보지도 않았다. 콘텐츠는 사용자 취향대로 취사선택하는 하이퍼 개인화의 시대에 공용 공간의 디스플레이는 광고판 같았다.


그런데 만약 일상의 표면들이 그 앞에 선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면 어떨까. 자기주장 강하게 콘텐츠를 밀어내려는 화면이 아니라 겸손하고 조용하게 있다가 부름을 받는 사용 모델을 채택하면 사람들은 거북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쳐다볼 가능성이 있다.


‘미러링' 기술은 이에 앞서 퍼져 나가고 있다. HDMI 케이블을 무선으로 대체하려는 가장 유명한 시도는 미라캐스트다. 와이파이 얼라이언스 책정의 규격 미라캐스트는 안드로이드 4.2 이후, 그리고 윈도 8.1 이후부터 표준 지원되므로, 단말은 준비 완료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순정 미라캐스트 무선 디스플레이 어댑터를 팔고 있고, WiDi라는 인텔 전용 규격도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지속되었으나 대승적으로 미라캐스트를 지원하며 그 자리를 양보했다.


와이파이 다이렉트라고 1:1 무선 통신이 원조 기술로 같은 기술을 이용하므로, 낯선 곳에서도 무선랜에 접속할 필요 없이 디스플레이에 붙어 H.264 코덱으로 압축 송출한다.


멋진 기술이다.


그래서 전 세계는 미라캐스트로 통일되었습니다.



와 같은 일은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표준이란 결국 누구도 참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나 어설픈 상태로 참여하다 보니 상호운용성이 중시되는 이와 같은 체험의 전체적 사용성을 하락시키곤 한다. 될 것 같은데 어딘가 잘 안되고 불편한 일이 종종 벌어지고, 이와 같은 소비자의 좌절감은 쌓여서 편견이 된다.


이를 걱정한 이들은 다름 아닌 애플과 구글이었다.


먼저 애플은 미라캐스트를 외면한다. 대신 흡사하지만, 독자적인 전송 규격 에어플레이(AirPlay)를 자기들끼리만 사용하고 있다. 애플에게는 사용성에 대해 나름의 집착이 있었는데, 애플이 주장하는 화면 공유란 단말의 화면을 그대로 복제하는 데에만 있지 않았다. 동영상 플레이 시 콘텐츠는 내보내지만, 조작 인터페이스는 TV에 보내지 않는 식으로, 화면과 조작을 분리하는 일이 중요했고 미러링은 부차적이었다.


이 방향으로 한 발 더 들어가 미러링에서 탈피한 것이 구글의 크롬캐스트다. 크롬캐스트와 이를 지원하는 앱들은 크롬캐스트 동글에게 어떤 콘텐츠를 틀라고 지령만 내린 후 빠질 수 있다. 비디오를 보면서 아예 다른 짓을 하거나 꺼 놓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대화면은 다르다. 같은 콘텐츠라도 박력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이제 이를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만 갖추면 되는데, 이것이 어째 좀 복잡하다. LG는 “SmartShare”, Samsung은"AllShare Cast” 등 미라캐스트를 나름 브랜딩 한 것 같은데 소비자는 헷갈린다.


TV는 또한 펌웨어 업그레이드에 인색하다. 인텔 WiDi 까지 지원하지만 미라캐스트는 지원하지 않는다거나, 미라캐스트는 지원하지만 에어플레이는 지원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이 당연시된다.


특히 애플 에어플레이는 삼성은 2018년, LG는 2019년 이후의 신제품에서만 가능하다.


물론 이 모두를 지원하는 중국산 에어플레이·미라캐스트 HDMI 동글 들을 설치할 수도 있지만, HDMI 입력 소스를 미리 선택해야 하는 번잡함은 '스위칭 욕구'를 시들게 한다.


무선이 유선에 비해 지닌 가장 큰 잠재력은 스위칭의 편리함이다. 블루투스 키보드의 잠재력이 폭발하는 순간은, 여러 단말을 함께 페어링해 두고 단축키로 순간 스위칭이 가능한 제품을 쓰는 경우다. 순간적으로 폰에서 PC로 태블릿으로 널 뛰듯 타이핑하는 맛이 무선의 가능성이다.


마찬가지로 얼마나 편하게 원하는 화면을 띄울 수 있는지, 입력 소스 스위칭의 편의성은 그 디스플레이의 활용도를 한층 더 커지게 한다.


55인치 TV를 30~40만 원에 살 수 있는 시대이지만, HDMI의 개수만큼이나 무선 접속을 어떻게 지원하는지 구매 시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미래 어느 날 모든 표면은 화면이 되고, 나의 시선에 따라 내 취향과 생각이 투사되는 날도 찾아올 터이다. 물론 그 날에는 지금의 무선 디스플레이에서 느낄 수 있는 약간의 지연도 느끼지 못한 채, 온 세상은 전파의 물결로 가득 차 있을 터이다.

20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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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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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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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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