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블랙베리, 스마트폰의 쫄깃했던 청춘

[테크]by 김국현
안녕 블랙베리,  스마트폰의 쫄깃했던

블랙베리는 현지시각 지난 9월 28일, 스마트폰 생산 중지를 발표했다. 얄궂게도 국내에서 3년 만에 돌아온 신제품 블랙베리 프리브가 판매를 개시한 다음 주의 뉴스다. 프리브는 원래 1년 묵은 구형폰이니 있을 수도 있는 어쩔 수는 없는 일이라지만 이 바닥은 정말 다음 주 일도 알 수 없다.


작년 이맘때쯤 프리브가 시장에 등장할 무렵 블랙베리의 CEO 존 첸은 “수익이 안 나면, 블랙베리는 단말을 더는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협박 같은 조크를 한 적이 있는데, 말이 씨가 되어 버렸다.


잘나가던 블랙베리가 아이폰 쇼크를 만나 어떻게 우왕좌왕했는지 교훈 삼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모두 강한 척했더라도 아이폰의 등장에 충격을 먹지 않은 이들은 없었다. 아이폰이 독점 공급된 통신사는 미국 AT&T. 경쟁사 버라이즌도 당연히 충격에 빠졌다. 이들은 ”아이폰 킬러“를 만들어 달라며 블랙베리에 접근한다. 그도 그럴 것이 때는 바야흐로 블랙베리의 황금기. 하지만 문제는 블랙베리도 이미 내부적으로는 당황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블랙베리는 한때 노키아에 이어 스마트폰 2위의 업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폰 킬러가 꼭 아이폰과 비슷해야 할 필요는 없었는데, 블랙베리의 상징인 키보드가 빠진 터치 기기를 만들어 버렸다. 마케팅적으로 엄청나게 밀어줄 버라이즌의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이미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었다.


버라이즌은 정말 전폭적으로 밀어주었고, 단기간에 버라이즌을 통해 백만 대나 팔려나간다. 하지만 무리하게 삼키면 체하기 마련, 급하게 만든 제품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버라이즌은 이 백만 대를 거의 다 교체해 줘야만 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작금의 갤럭시 노트 7 사건과 비견될 규모인데, 당시 계상된 손해는 약 5천억 원 정도.


황금기의 블랙베리는 안 아픈 척 초심으로 돌아가 블랙베리 본연의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듯했다. 블랙베리 볼드 등 명품도 이때 등장하고, 또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가 애용하던 블랙베리였기에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마음 상한 버라이즌은 이미 진짜 아이폰 킬러로 구글을 점찍게 되었고, 삼성전자는 그 틈에서 반사 이익을 얻게 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다 잘 아는 이야기다.


블랙베리의 하드웨어는 명품이었지만, 소프트웨어는 그렇지 못했다. 애플도 구글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는데, 쿨하지 못하게 구태의연한 자바의 모바일 버전을 고집한 것이 일례다. 뒤늦게 QNX라는 플랫폼 기업을 인수하며 자바에서 탈피하고, 블랙베리 개발자 컨퍼런스 등에 힘을 쏟는 등, 생태계 재건에 힘을 썼다. 블랙베리 OS 10으로 과거와 결별하며 아예 플레이북이라는 태블릿 모델까지 출시하며 부활을 꿈꿨지만 블랙베리 앱월드(마켓)는 구글 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처럼 북적이지 않았다. 블랙베리에서의 개발이 얼마나 재미있는지에는 자신이 없었는지, 플레이북이 아이패드보다 세배나 빠르다고 자랑하는 등 엉뚱한 소리만 했다. 블랙베리 앱을 만드는 이들은 별로 없었고, 앱을 쓰려고 블랙베리를 사는 일도 그 후로는 없었다.


2011년에만 블랙베리의 주가는 4분의 1토막이 난다. 롤러코스터와 같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블랙베리 내부에서는 키보드가 본질이라는 파와 이미 세상은 터치스크린이라는 파가 나뉘게 되고, 또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야 하는지 하드웨어가 본질인지 옥신각신하게 된다. 블랙베리는 메신저(BBM)가 본질이니 이를 오픈플랫폼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넓게 보면 모두 맞는 말들이다. 흥미롭게도 이 정체성의 혼돈은 단말 생산을 중지한 오늘까지도 여전히 지속중인 것 같다.


존 첸의 최신 인터뷰를 보면, 블랙베리는 단말을 만들지는 않지만, 파트너십을 통해 또 다른 키보드 단말이 등장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아아 블랙베리, 아아 쿼티 단말.


스마트폰 역사의 쫄깃했던 청춘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2016.10.04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